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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과 미선이·효순이 사건
전영준 | 승인 2017.04.03 07:17
미선이, 효순이 추모 촛불집회.사진@온라인커뮤니티
[전영준 푸른한국닷컴 대표]3일 제69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네번째 엄수된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각 정당은 이념과 시대적 상황을 떠나 모두가 하나된 4.3의 완전한 해결, 희생자 유족에 대한 배.보상 추진, 수형희생자 추가 진상조사, 희생자 유족신고 상설화 등을 약속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 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본 시위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야유를 보내며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그런데 경찰이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하여 시위대에게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발포사건의 전모를 모르던 미군정 당국은 이 발포사건을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정당방위로 주장하고 사건을 '시위대에 의한 경찰서 습격사건'으로 규래 행사 간부와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경무부에서는 3만여 시위군중이 경찰서를 포위 습격하려고 했기에 불가피하게 발포했다고 해명하면서 민심이 들끓었다.
 
이에 남로당은 이런 민심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조직적인 반경활동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전단지를 붙이는 일과 사상자 구호금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5.10선거 반대, 적화통일, 반미투쟁, 남로당 수호라는 목표를 위해 반체제 운동으로 변질되었다.
 
남로당 중심의 폭도 400여명과 협조자 1,000여명이 제주도내 12개지서와 우익을 공격했다.폭도들은 경찰과 우익을 닥치는대로 죽이면서 5.10선거를 반대하여 전국 선거구 중 제주도의 3개 선거구 중 2개만 무효가 되었다.
 
폭도들은 제주도민들에게 북한 건국 8.25선거 지하투표에 참여하게 하여 제주도민 52,000여명이 남한 선거는 반대하고 북한 선거에는 투표하였다.
 
제주 4·3 사건 폭도대장 김달삼은 보현산 제 3병단장이 되어 1949년 8월 4일 남로당 무장 게릴라 300여명을 이끌고 남도부(본명 하준수)와 같이 38선을 넘어 경북 양양군 일출산에 침투하였다.
 
6.25인민군 남침 초기 경북 청도군 운문산 지구로 침투하여 경남 신불산 전투에서 사살되었다.그의 묘는 북한 혁명열사묘역에 있다.
 
1948년 4월 3일-7월 20일 폭도들이 경찰 56명, 선거관리위원, 우파 인사 235명을 비참하게 죽일 때 교전 중 단 15명만 죽을 정도로, 폭도들의 세력이 압도적이었다.
 
폭도들이 이 정도에서만 끝났다면 제주도는 그토록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2대 폭도사령관 이덕구는 제주도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세우려고 1948년 9월 15일부터 폭동을 본격 재개하였으며,10월 24일에는 대한민국 정부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로 인해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에 동조한 제주 9연대 강의현 소위 외 80여명이 송요찬 연대장을 죽이고 반란을 기도하려다 실패하였고,제주 경찰 및 공무원 75명이 제주도를 공산화 하려다 실패하였다.
 
결국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제주 4·3 사건은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많은 진압을 편 후에야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제주 4·3 사건이 단선반대를 위하여 봉기했다고 진보좌파들은 주장하지만 당시 폭도들은 북조선 건국에는 목숨을 걸고 찬성했고, 대한민국 건국에는 목숨을 걸고 반대한 것이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미선이, 효순이의 우연한 죽음이 반미,반체제운동으로 변질된 것과 흡사하다.
 
미선이,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앞장 선 제종철씨가 싸늘한 시신으으로 발견됐다.
 
그의 죽음은 초기의 소규모 시위를 전국적인 촛불집회로 전환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경찰측은 제종철 씨가 철로 위에 누워 있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지었지만, 사회의 불의에 저항하고 앞장설 정도로 신념이 강한 제씨가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난 것에 의심이 고조되었다.
 
시신의 손상상태를 확인해 본 법의학과 교수는 “꼭 열차 사고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목뼈와 왼쪽 발목, 이 두 개의 뼈가 왜 골절이 됐을까 시신이 누워있는 상태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는 자동차 사고, 추락사고로도 가능하다” 고 사인에 대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결국 제주 4·3 사건처럼 폭도가 날뛰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반미운동,반체제운동으로 변질되어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확산되어 사회혼란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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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dugs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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