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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사망,불법과격시위와 공권력확보 대결에서 비롯된 희생
서원일 | 승인 2016.09.25 20:40
 
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사진@주동식 기자
농민 백남기씨(69)가 끝내 사망했다.
 
[서원일 기자=푸른한국닷컴]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농민 백남기씨가 25일 오후 1시58분쯤 사망했다.
 
백남기씨는 지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으나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을 찾지 못하다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했다.
 
당시 시위에서는 청년좌파, 민중총궐기 대학본부, 알바노조 등 청년단체들이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국민사퇴식’을 열고 주민등록증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벌여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또한 경찰이 물대포를 쏘기전 경찰은 경찰차를 끌어내려는 불법과격시위대들에게 해산을 하라고 수차례 경고를 했지만 시위대들은 계속 집회를 이어가 종로일대 도심지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따라서 백남기씨의 죽음은 과격불법시위로 인해 공권력을 확보하려는 경찰의 대응에서 비롯된 희생이라 본다.
 
경찰은 백씨가 사망한 서울대병원 본관 중환자실을 비롯해 장례식장 주변과 병원후문 농성장에 경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보도등을 종합해 보면, 백남기씨는 전남 보성출신으로 1968년에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을 했다가 박정희 정부시기에 2회 제적을 당해 천주교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교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1980년 5월초까지 계속 민주화운동을 벌였지만 5·17 쿠데타로 비상계엄이 확대되면서 계엄군에 체포되기도 했다.
 
가석방 후 고향으로 귀향해 1986년에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밀(우리밀)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광주‧전남본부에서 활동했다.
 
유족들은 사망 직후 장례식장 3층에 있는 1호실에 빈소를 마련했으며 조문은 오후 6시 10분쯤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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