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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대표는 사과하고 국민은 용서해야
이종부 | 승인 2010.12.27 21:14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함으로서 가정 형편이 무척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낸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약력이다.

마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입학
서울대학교 2학년 재학 중, 학생운동에 투신
서울대학교 3학년 재학 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부회장에 선출
1965년 6월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6·3 항쟁 당시 단식농성에 참가
1966년 삼성 이병철의 사카린 밀수사건 성토대회에 참가, 성토대회 주모자로 정학
1967년 여당의 6.8 국회의원 부정선거 의혹 규탄시위에 참여, 재판에 회부

1975년 사시 합격되었으나 학생운동 연루로 검사발령 되지 않다가 전주지검 발령
1985년 3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밝힌 뒤 검사직 사퇴
1996년 신한국당의 총재였던 김영삼에 의해 발탁,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 입문

안상수대표는 명진과 보온병에 이어 "자연산"발언으로 현재 비난을 받고있다.

*

대한민국 근대사의 비극인 광주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전두환은 대통령이 된다

민주화 세력쪽 정치인이나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함으로서 유신헌법이 폐기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인단"이라는 거수기들에 의하여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 정권의 단임 약속을 의심했고, 대통령 선거를 역시 체육관 선거로 치뤄 재임을 하거나 자신들 세력 중 누군가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않나 우려를 한다.

1985년 2.12총선 이후 야당과 재야세력은 체육관 선거로 선출된 제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의 정통성을 비판하면서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였다. 1986년 2월 각계 각층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중점으로 하는 민주헌법쟁취투쟁이 확산되었고, 1000만 개헌 서명운동에 돌입하면서 개헌 논의는 더욱 확산되었다.

당시 대통령선출과 임기에 관하여 개헌을 할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이후 계속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을 뽑을순 없지않나? 따라서 같은 해 7월 30일에는 여야 만장일치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발족하였다 .

그러나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개헌을 하되 의원내각제를, 야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함에 따라 개헌 논의는 난관에 부딪혔고, 이는 당시 중대한 정치적 사회적 대 충돌과 논쟁과 이슈가 되었다(이 개헌 논의가 얼마나 격렬했고, 여당의 내각제 개헌에 저항이 심했던지 전두환 대통령은 위기를 느껴 모든 개헌논의를 중단하라는 "4.13 호헌 조치"를 내리기 까지 한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의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 소재파악을 위해 공안당국은 서울대생 박종철을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하여 조사한다. 그러나 박종철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경찰은 폭행과 물고문을 하여 사망하게끔 한다.

경찰과 정권은 이를 덮으려 했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했다. 치안본부장은 발표하기를 자백을 하라고 책상을 "탁~"치니 박종철이 "억~"하고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임명이 된 정호용 내무부 장관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때리냐?"며 역시 거짓말을 하여 이 사건을 덮으려 한다.

그리고 경찰은 "가족들과 합의를 끝냈으니 박종철을 화장 하겠다"고 검찰에 승인을 요청한다. 사체를 태워버려 증거를 인멸....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을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경찰의 화장요구를 승인하지 않고 조사할것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전두환이라는 정권에서 검찰은 그야말로 죽을 각오를 하고 결심을 한것이다.

검찰은 경찰의 화장 요구를 "형사 사건이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원칙대로 부검을 해야 한다"고 가로막고 나섰으며, 이 사건을 당시 서울지검 형사 2부 안상수 검사에게 배당하게 된다.

당시 경찰은 기세가 등등했던 시기다. 대통령 전두환의 형이 경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검찰의 멱살을 잡아 흔드는 일도 벌어졌었다.

이러한 경찰의 저항과,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정권에게 박종철군 부검 허가를 안상수 검사는 간신히 받아내는데, 부검허가를 받아내기 까지 안상수 검사에게 가해진 정권의 회유와 협박과 압력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뿌리치고 한 안상수 검사의 부검 결정으로 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가 부검을 실시했고, 이 황적준 박사에게도 권력은 압력을 가했으나 역시 뿌리치고 사실대로 부검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한다. 결과는 물고문에 의한 사망이었다.

그리고 이를 동아일보가 연일 특종으로 보도를 하며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후 국민들의 시위는 더욱 격렬해져 1987년 6월 10일에는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렸으며, 이게 바로 6.10항쟁이다.

같은 달 26일에는 전국 37개 도시에서 사상 최대의 인원인 100만명 이상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전국이 시위장이었고 아수라장 이었으며 국민들은 불안해 해야만 했다.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전두환 정권도 어쩔 수 없이 4·13호헌조치를 철회하고, 29일에는 민정당 대표 노태우가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다 등 8개항목의 특별선언을 발표하였으며, 이 선언이 6·29선언이다.

전국을 뒤흔들던 항쟁은 6.29선언 직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일시에 가라앉았고, 사면복권 되어 정치활동을 할수 있게 된 김대중은 지금 잘 기억이 안나지만 "사람이 아름답게 보인다"??라는 식으로 말하며 감격해 하던것을 난 기억해 낸다.

이러한 6.10항쟁의 커다란 기폭제중 하나가 안상수 현 한나라당 대표다. 그러나 안상수 검사는 정권의 압력으로 사표를 내게 되며, 심지어는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도 못하여 지방에서 하게된다.

무시무시한 권력의 압력을 뿌리치고는 검사로서 검찰의 정신을 실천한 용기있는 사람이 안상수 검사였고, 중요한 고비에서 자칫 독재로 흐를수 있었던 역사의 험악한 물길을 현재로(대통령 직선제 및 민주화)잡아 돌리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했던 안상수 대표가 명진과의 악연에 이어 보온병...
그리고 "자연산"으로 추락의 위기에 서있다.

자연산 발언은 부적절 하다.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안상수 대표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볼때 그의 정치적 심성까지 이 "자연산"발언을 해야만 하도록 잘못되어 있지는 않다고 본다.

안상수 대표는 아무리 사석에서의 사적인 농담이지만 이 중대한 시기에 집권당의 대표로서 부적절 했다.고 국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국민들은 이를 대범하게 용서해 주어야 한다. 

12월 24일 조선일보 및 한나라당에 쓴 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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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부  jong520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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