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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사진@온라인커뮤니티 | ||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인 권력의 속성을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바로잡고 지도하는 사람도 바로 종교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서로마 제국이 망할 무렵 로마인들은 패닉에 빠졌다. 신이 사랑하는 나라라고 믿었던 로마가 이교도, 그것도 야만족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이때 로마인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준 사람이 있으니 우리에게는 성(聖) 어거스틴으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는「신국론」에서 땅위의 나라와 하늘나라와의 관계를 기술하고. 땅위의 나라는 망해도 하늘나라는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당시의 로마처럼 오늘날에도 정치와 종교관계는 아포리아(어려운 문제)에 속한다. 그러나 종교의 뿌리가 이 세상이고, 뿌리가 썩는데 몸통이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종교가 저 혼자 고고(孤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굳이 개인구원론은 소아적인 것이므로 사회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구원론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렇지만 사회구원론은 종교와 정치의 영역이 겹치므로 권력 카르텔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것을 넘어서는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이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암흑의 시대 중세(中世)를 깬 것이 이성의 빛이었던 것처럼. 그것은 로크의 사회계약설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고. 권력의 몰염치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로크는「자유로운 개인은 계약을 통하여 국가에 의무와 권리를 지닌다.」는 사회계약설을 주창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의 핵심인 권력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준수하지 않고 국민위에 군림할 때, 그 강대한 힘에 맞서 누가 견제자가 되고 누가 감시자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당연히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필요한데 그것이 종교인 것이다.
「한비자」나 이종오의「후흑학」을 보면「권력은 전쟁과 같아 속임수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예 권력에는 선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인의(仁義)의 군자라 일컫는 유비조차 그의 영토는 눈물로써 얻었다고 말할 정도이니 말이다. 또「투표는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몽테스키외는「권력자는 권력의 한계를 알 때까지 계속 남용한다.」고 했고. 칸트는「권력은 이성의 자유로운 판단에 방해가 된다.」고 하였으며. 마키아벨리는「권력은 오래되면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더 자세히는「권력자는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고
또「권력자는 그 본성이 조금 악하면 그저 득실을 따져가며 욕구를 채우는데 급급하고. 중간 정도 악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소불위로 권력을 행사하고. 아주 크게 악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도의에 어긋나는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한다.」하였다. 마키아벨리는 또 말한다. 권력은「진실」이 아니라「진실로 보이는 것」이라고.
이러한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인 권력의 속성을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바로잡고 지도하는 사람도 바로 종교인 것이다.「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는 말은 음모적일 수밖에 없고 타락할 수밖에 없는 권력을 종교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밀이기도 하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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