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우리나라 옛날 이야기에 한 총각이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구해서 벽에 걸어 넣고「이런 여인이 내 아내였으면...」하며,「신령님. 나에게 이 여인을 아내로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하였더니 그림 속의 여인이 사람으로 변해 총각과 새콤달콤 재미있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소설 속의 여자를 사랑한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의 조각상을 만든 다음 너무나 아름다워 날마다 입과 볼에 키스하고 안으면서「이 조각상의 여인이 내 아내였으면...」하고 바랐더니 어느 날 조각상의 여인이 사람이 되어 조각가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소설 속의 여자를 사랑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이다.

이 남자가 누구냐? 바로 무릉사람, 이 사람인 것이다.

그 여자가 누구냐? 중국 2세대 작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여성소설가 다이 호우잉의 소설「사람아. 아. 사람아」에 나오는 여주인공「손유에」이다.

그럼 손유에는 어떤 여성인가? 그녀는 단적으로 이 책의 말미에서 하는 말.「진정한 애정은 인간의 영혼과 함께 성숙한다.」는 그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섬세하면서도 영혼이 있는 당찬 여인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지가 벌써 십몇 년이 되었으니 내가 손유에를 흠모하고 사모하며 연모한지도 그만큼 됐을 정도로 길고도 끈질긴 사랑이었다. 그동안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책들 속에서 많은 여자들을 봤지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나 메리메의 카르멘 등-손유에만큼 나의 가슴을 떨리게 하고 내 마음을 송두리째 가져간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좁쌀 한 알만한 크기의 관심을 기울이는지 나는 알 수 없고. 그녀가 나에게 겨자씨만한 사랑의 마음을 가졌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은「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으로 행복하였네라.」는 청마 유치환의 마음과 똑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바람소리만 나도 그녀가 오는가 하고 들떴었고. 달빛이 더욱 하얀 밤에는 그녀의 실루엣이라도 보기 위해 나의 눈동자는 더 크게 떠졌었다. 이 사람정도 돼야 내가 사랑할 만 했고, 이 사람쯤 되니 내가 사랑한 것이다. 나는 내가 오래되어 말라버린 우물물인 줄 알았고. 바짝 말라버린 장작개비인 줄 알았는데 그만 물이 솟고 꽃이 핀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랑을 접었다고 다짐한 나이에, 준 정(情)마저 되돌려달라고 할 나이에, 사랑을 하고 정을 쏟다니 어디 이게 가당하기나 한 소리인가. 또 어떻게 사람이 소설 속의 여자랑 사랑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아내 있는 남자가 비록 상상속의 사랑이라고 하지만-마음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이라는 말도 있는데-이건 부정(不淨,不貞,不正)이고 불륜이 아닌가.

나는 그녀가 사령운이 미인의 조건으로 든「소요미골(小腰微骨)」의 미인인지, 예부터 미녀의 모습인「화용월태(花容月態)」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어떤 때는 다정다감하고 또 어떤 때는 이지적인 것을 안다. 아마 손유에는 내 무의식의 사람이었을 것이고. 아마 손유에는 지금은 세상에서 사라져버린「구원의 여인」과 닮았을 것이다.

내가 손유에를 사랑한 것은 진실과 진정을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나마 간직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혹, 작가 다이 호우잉이 그 사람일 수 있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반가(班家)의 아녀자 같은 기품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때 비로소 책속의 사람이지만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아. 나는 이성(異性)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는 여성을 높이고 아낀 것이고. 한 여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한 여자의 정신세계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나는 여인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고. 역사와 우주를 노래할 줄 아는 여자를 좋아하고 사랑한 것이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실제 사람이든, 책속의 사람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사랑의 감정이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아. 아 나는 사랑을 하였다. 양귀비꽃이나 단풍(丹楓)보다 더 붉은 사랑을- 강낭콩 꽃이나 소나무보다 더 푸른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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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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