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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리기사 이야기
전영준 | 승인 2014.09.21 02:25

대리기사들, 택시값 아끼려고 눈비 맞으며 몇 km를 걸어 다니며 패자부활전을 하고 있어

[전영준 푸른한국닷컴 대표]지난 19일(금) 저녁에 시흥사거리 후배 모임에 참석했다. 얼굴 본 지 오래됐다며 투덜대는 후배의 말에 또다시 핑계대지 못하고 늦게 합류했다.

맥주한잔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하며 정담을 나누고 유쾌한 마음으로 후배가 알선해준 대리기사의 도움으로 귀가했다.

차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귀가 중 대리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많이 그들에게 묻는 말이 ‘왜 대리기사를 하게 됐느냐’는 것이라고 본다.

대리기사라는 직업은 저녁에 시작해 새벽녘에 끝나는 고단한 비정규직 직업으로 다른 사람과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힘든 직업이기 때문이다.

대리기사들은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직업 차원에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가 급박한 호구지책을 위해 뛰어든 사업에 실패한 분들이다.

필자도 가끔 대리기사들에게 ‘왜 하게 됐느냐’는 묻는다. 그러나 왜 실패에 이 직업을 택했는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실패이후 삶의 변화가 궁금해서다.

필자도 IMF 시절 사업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어 그들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 동병상린을 느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는 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사업에 실패하면 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자식들과의 헤어짐 그 후유증으로 생긴 정신적 고통 육체적 질병과의 싸움 등으로 일하는 그 자체가 힘들다.

필자의 그날 대리기사는 불과 1년 전만에도 씨앗을 수입해서 농가에 파는 어엿한 서울의 명문 Y대 생물학과 출신의 사장님이었다.

대학 때 전공을 살려 종자업에 오랫동안 근무도 하고 사업도 했지만 결국 한 순간 자신의 고객인 농가가 망해 같이 망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바로 일어섰다. 낮에는 씨앗 판매에 몰두했으며 밤에는 가사에 도움이 되기 위해 대리기사를 병행했다.

하루에 평균 버는 수입은 알선업체에 내는 수수료,교통비 등을 제외하면 7만원에서 10만원 그나마 비가오고 눈이 오면 더욱 힘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황금의 금요일인 이날 새벽2시까지 번 돈은 일진이 안 좋아 4만원이었다. 그러나 필자에게 힘들고 짜증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필자가 “사업에 실패했는데 가족과는 같이 사냐”고 묻자 그는 “그럼요, 집 사람이 이해하고 하나 있는 아들도 잘 자라고 있읍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 질문을 한 내가 되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비롯 사업에 실패했지만 딴 짓 안하고 더욱 열심히 살려고 하니 아내와 아들이 더욱 격려를 해준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는 “아내는 벌어다 주는 돈을 액수에 관계없이 두 손으로 받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며 아들은 아버지의 힘을 덜어주겠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계속했다.

이어 “아들은 아버지가 졸업한 Y대 ROTC에 지원해 등록금의 부담과 돈을 벌어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눈물겨운 말도 건넸다.

이 대리기사의 말에 더욱 고개 숙여지는 것은, 2남2녀의 막내로 모 대학의 부총장으로 있는 누나 등 형제들이 잘 살지만 손을 벌리지 않는다는 강한 생활력이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집에 도착했다. 새벽 3시였다. 그는 콜을 잡을 시간은 지났다며 새벽 4시 반 첫차가 나올 때까지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겠노라고 말했다.

필자는 그 분의 삶이 아름다워 음료수라도 마시며 기다리라고 주머니에 있는 5천원을 빼내 더 주었다.

사실 필자도 좋은 형편은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화통(?)한 기부를 했다.

내가 경험한 대리기사들은 비단 이 기사뿐만 아니라 모두가 재기를 위해 열심히 사는 분들이었다. 심지어는 수 백명의 종업원을 두고 일했던 사장님도 계셨다.

남의 눈물 흘리다 망한 사람들은 아마 힘든 대리기사보다는 한방을 위해 지금도 전국각지를 누비고 있을 것이다.

여자와 술,도박에 빠져 망한 사람들은 술집과 도박장을 기우거리며 과거의 영화를 다시 누리고자 헤메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택시값 아끼려고 눈비 맞으며 몇 Km를 걸어 다니며 패자부활전을 하고 있는 대리기사들은 이 사회를 다시 이끌고 갈 잠재적 역군들이다.

얼마 전 세월호 침몰 단원고 유가족대책위 임원들이 심야 피크시간에 황금 같은 30분을 대기시키고도 모자라 대리기사를 집단폭행 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사과는 커녕 “너 국정원 직원이냐”고 되레 어거지를 부리며 덤튀우기를 씌우려 했다.

이런 불행한 사태는 이념과 세대, 계층으로 구분하여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세상사 사는 경우의 문제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침몰 유가족들 억울하게 자식을 잃어 마음의 상처 가득하겠지만 대리기사들도 하던 사업 망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먹고 살려고 뛰어 다니다 폭행당한 대리기사의 아내와 자식들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겠는가.

임원들이 설사 누군가에 몇 대 맞아 이가 뿌려졌다 한들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서 고통의 열매를 따려 노력하는 대리기사에게 백번 사과에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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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dugs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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