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형상화」하기 때문이다.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특히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그 형상화가 굶고 뚜렷하면서 가파르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죽음으로 끝날 경우 독자로 하여금 계속 꿈속에 젖게 한다. 세익스피어의 희곡「로미오와 주리엣」에서 원수 가문(家門)사이인 로미오와 주리엣, 메리메의「카르멘 」에서 집시 여인 카르멘과 기병대 돈 호세,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다른 남자와 약혼한 롯데와 다정다감한 베르테르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면서 그들의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그런데 서양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던 사랑의「질풍노도」가 우리나라 그것도 엄숙하고 엄격한 조선시대에서 일어났다.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 고려시대의 인간본성을 노래한 가요들을 사리부재(詞俚不載), 즉 노랫말이 저속한 것은 문헌에 싣지 않음을 원칙으로 할 만큼 남녀유별이 심한 나라였다. 그러나 인간의 원초적 욕구는 강물 막기보다 더 어려운 법. 그것이 다산 정약용이 지은 형벌연구서이자 살인사건 실무 지침서라 할 수 있는「흠흠신서」에 실려 있는 것이다.

때는 서기 1814년, 조선의 23대 임금 순조 15년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 늦은 밤. 나주에 사는 서른다섯 살 먹은 평민 김점룡은 동갑나기 친구 나은갑의 집을 찾아간다. 달은 하현달이 비쳤지만 구름이 많아 사방은 어두컴컴했다. 친구를 찾은 김점룡은 다짜고짜 빈방이 하나 있으면 하룻밤만 빌려달라고 한다. 나은갑은 당황했지만 빈방이 하나 있으므로 허락하였고, 김점룡은 자기 집에서 가져온 나무로 아궁이에다 불을 때었다.

그때 구름사이로 달빛이 비쳤는데 언뜻 웬 낯선 여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동시에 그 여인은 쏜살같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분명 김점룡의 안식구는 아니었다. 나은갑은 그 두 사람의 사이가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였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뜨도록 인기척이 없고. 문틈으로 연기가 새어나오며. 문창호지가 젖어있는 것을 발견한 나은갑은 이상해서 급히 방문을 열어보았다.

방안에는 남녀가 꼭 껴안고 누운 상태로 타 죽어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팔을 베고 있었고, 여자의 발은 남자의 배위에 걸쳐있었으며,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얼굴들에서는 꿈을 꾸듯 행복하게 보였고, 옅은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나주 관아에서는 즉각 수사에 들어갔는데 가장 먼저 김점룡의 어머니를 소환하여 추궁을 하였던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15년 전. 아들 김점룡은 건넛마을에 사는 한씨 성을 가진 한 처녀를 몹시 사량했는데,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 다 그렇듯 그녀는 그때 이미 다른 사람과 정혼한 상태였다. 김점룡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5년 뒤 한씨는 홀몸이 되어 있었고 얄궂게도 김점룡의 이웃에 살게 되었다. 다시 김점룡의 마음은 한씨로 인하여 흔들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김점룡은 그때 3남2녀의 아버지였으며 아내와는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

그렇지만 그녀를 도저히 잊지 못하였던 김점룡은 우럭각지처럼 양식이나 땔감 등으로 아무도 몰래 한씨를 도와주었다. 그리곤 그 둘은 곧 요원(燎原)의 불길이 번지는 것처럼 사랑에 빠졌고, 단 한 번의 만남에서 그들은 죽은 것이다.

검험관(오늘날의 법의학자)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기이한 화재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옛날 중국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김점룡과 한씨의 죽음은 넘치는 정욕에 의해서라는 것. 즉 첫날밤을 보내게 된 두 사람이 아마도 지나치게 서로를 탐닉한 나머지 장기에 불이 나서 죽게 되었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게 된다.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을 욕화(慾火) 또는 음화(淫火)라고 하는데, 음탕한 교접인 남녀 신체간의 마찰에서 발생하며, 이 문지르기가 극도에 이르면 욕화가 세차게 일어나 갑자기 불꽃이 번져 몸이 불탄다는 것이다. 사람의 각 장기에는 동물의 기름 같은 황고(黃膏)라는 기름이 있는데 정욕이 치솟아 남녀의 몸이 극도로 뜨거워지면 황고에 불이 나서 장기를 비롯한 신체를 태워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배와 허리 쪽이 집중적으로 정념의 불이 탄데 비해 두 사람의 다리는 별로 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는 것이고. 그 불이 침상과 방을 태우지 못한 것은 그 불이 그냥 불이 아니라 욕정에서 생긴 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 김점룡은 얼마나 한씨를 안아보고 싶었을까. 아, 한씨도 김점룡에게 얼마나 안겨보고 싶었을까.

옛날 이상은이란 시인은「두 사람이 친밀하면 누군가 한 사람은 축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두 사람이 죽는 것은 몰랐을까? 옛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피는 한혈(恨血)이라 하여 땅속에서 3년이 지나면 영롱한 구슬이 된다는데 과연 이 두 사람의 죽음도 그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두 사람이 합일(合一)이 되었을 적 분명 우화등선(羽化登仙)했을 것이고, 선인이 되면 그 주검까지 모습을 감추고 의복만 남는다고 했는데 과연 그들은 선인(仙人)이 못된 것일까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문인 이옥은「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에 대한 관찰보다 더 오묘한 것이 없으며,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두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사랑」만이 세상의 처음이자 끝이며, 세상의 그 어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노자는「도(道)를 도(道)라 하면 도(道)가 아니다」.라고 했다. 필자는 사랑도 도(道)와 같거나 도(道)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부터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닌 것이다. 필자가 두 사람의 처연한 사랑의 이야기를 접하고 이리 저리 생각해 봤으나 결론은 역시 사람들의 상상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읽고 이 기이한 불과 두 사람의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릇「최고의 글」은 필자의 의견은 하나의 의견일 뿐, 독자가 결론을 짓게 만듭니다.

-끝으로 이 글에서 김점룡과 한씨의 이야기는 권순정님의「조선의 사랑」이라는 책에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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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위원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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