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한국닷컴 정재학 칼럼니스트]

강아지를 데리고 풀숲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진드기가 붙는다. 외출 후 박박 긁는 강아지 목덜미를 살펴보면, 납작한 진드기가 반드시라 할 만큼 붙어있다.

그뿐만 아니라 필자(筆者)는 가을 어느 날 사마귀가 날다가 툇마루에 떨어지기에 살펴보니, 사마귀 뱃속에서 긴 기생충 한 마리가 기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여름 내내 그 기생충은 사마귀 몸속에서 자라고 있다가, 가을이 되어 성충이 되자 숙주(宿主)를 죽이고 나온 것이었다.

그뿐이랴? 가오리나 갑오징어 같은 바다생물에도 기생충은 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곳, 생명이 숨 쉬는 모든 곳과 약동하는 생명 곁엔 반드시라 할 만큼 기생충이 있기 마련이다.

축구계가 승부조작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필자(筆者)는 이 가슴 아픈 사건을 바라보며 마음을 졸이고 있다. 기생충으로 인해 숙주(宿主)가 죽어가는 가을날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세계를 향해 도약하는 우리의 축구. 한때는 우리의 희망으로, 우리의 뜨거운 함성으로, 때로는 한탄과 눈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늘의 천국과 땅의 지옥을 넘나들던 대한민국 축구.

태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던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 우리의 심장에 불을 붓던 영광의 골(Goal)들. 그리하여 축구는 우리의 꿈이었다.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는 축국(蹴鞠)에서 비롯된다. 서양의 풋볼이 현대식 축구라면, 축국은 동양의 고대 축구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당(唐)나라 때 신라 ·고구려 ·백제에 전해져 일본에까지 퍼졌다고 한다. 우리의 축국은 삼국시대부터 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김춘추와 김유신이 축국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축국의 경기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왕운정(汪雲程)의 축국도보(蹴鞠圖譜)에 의하면, 구장(球場)에서 하는 축국과 구장이 없이 하는 축국, 양쪽에 골문을 설치한 축국 경기 등이 있다.

일정한 구장이 없이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축국에는 1~9인장(人場)까지 있다. 혼자서 차는 것을 1인장, 두 사람이 마주서서 차는 것이 2인장, 세 사람, 네 사람이 마주서서 차는 것을 3인장, 4인장이라 하며, 그 이상이 순서대로 서로 번갈아 돌려가며 차는 경기로서 공을 땅에 떨어뜨리는 사람이 진다. 오늘날의 제기차기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인장 놀이가 나중에 제기차기로 변해서 ‘재물보(才物譜)’에는 축국을 ‘제기’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나 신라 때는 공을 차는 경기였으므로 김춘추와 김유신이 한 축국은 2인장 축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골문을 세워서 한 축국의 기록은 없고, 조선시대에 2인장이나 3인장 같은 축국을 한 기록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전한다.

“젊은이들이 축국 놀이를 하는데 공은 대포알만하고 위쪽에 꿩털을 꽂았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번갈아 차는데 땅에 떨어뜨리지 않아야 잘한다고 했다. 겨울부터 시작하여 설날에 많이 한다”고 쓰여 있다.

필자(筆者)도 어린 시절에 돼지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어 공을 만든 뒤, 동무들과 공차기를 한 기억이 있다.

동네 타작마당 같은 공터에는 일감이 사라지는 늦은 가을부터 겨울 내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서 여자아이들은 사방치기나 고무줄놀이를 하고, 우리는 공을 차며 놀았다. 새끼줄을 뭉쳐 만든 것도 좋았고, 돼지오줌보도 좋았다.

하늘 높이 차고 뛰어놀며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좀더 높이 차기를, 좀더 멀리 차기를 바라면서….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축구공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꿈을 생각한다. 그리고 경기가 있을 때마다 우리 태극전사들이 조국을 위해 달리는 푸른 그라운드를 열 띤 눈으로 바라본다.

날밤을 새면서 응원하고, 기쁨으로 충만한 아침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너나없이 같은 민족, 같은 형제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대한민국 축구여, 지금 비록 아픈 일을 겪지만, 시련을 이기고 오늘보다 더 강하고 오늘보다 더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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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news1@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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