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준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2007년 3월8일 늦은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술집 앞에 검은색 차량 6대가 갑자기 줄지어 들이닥쳤다. 곧이어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십여명이 술집 안으로 난입한 뒤 종업원들을 위협해 한곳에 모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남자들은 종업원들에게 “오늘 새벽 이곳에서 발생한 폭행사건 가해자들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곧 가해자 신원이 밝혀졌다. 서울 북창동에 있는 유흥주점 임원과 종업원들이었다. 남자들은 보스인 듯한 중년 남자의 지시에 따라 몇 군데 연락을 취한 뒤 북창동 유흥주점 종업원 5명을 청담동 술집 ‘현장’으로 불러냈다.

저녁 8시였다. 일행은 다시 이들을 차량에 태운 뒤 청계산 자락에 있는 한 공사장 창고 건물로 끌고 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라이터 불을 켰다. 불은 건장한 남자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종업원 5명의 얼굴을 차례로 비췄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번갯불 같은 섬광이 일었다. 전기충격기였다.

라이터 불빛 너머로 양복 입은 남자들 손에 쇠파이프와 몽둥이 등 흉기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종업원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라이터 불빛 속으로 한 중년 남자가 불쑥 나섰다.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긴 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었다. ‘한국화약(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내 아들이 눈을 다쳤으니 네놈들도 눈을 좀 맞아야겠다”며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두 팔이 붙들린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 가격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한 종업원이 울기 시작했다.

“전 그냥 종업원인데, 우리 전무님이 가서 사과하고 대충 몇 대 맞고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에요. 살려주세요.”

자초지종을 캐물어 대강의 상황과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한 김 회장 일행은 곧바로 북창동 유흥주점으로 달려갔다.

술집은 저항 없이 순식간에 장악됐다. 선두에 선 선글라스 차림의 김 회장이 소리질렀다.

“다 나와, 이 자식들. 북창동을 다 없애버릴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다 여기서 무릎을 꿇을래, 아니면 가게 문 닫을래?”

이상은 2007년 발생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관련된 ‘북창동 술집 종업원 보복 폭행 사건’으로 한겨레는 2013년 4월5일자 기사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검찰은 그해 6월5일 자기 자식 때렸다고 북창동 술집 종업원 폭행한 김승연 회장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이후 공개법정에서 여유만만한 태도로 “권투하듯이, 아구를 몇 번 돌렸지”, “귀싸대기를 올려붙였지”, “내가 때리다 때리다 지쳐서 애들 시켜서 대신 때리게 했거든”, “검사 양반은 술집 한 번 안 가봤어요?” 등 보부도 당당한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2일 1심법원은 세간의 이목을 의식해 김승연 회장에게 집행유예 없이 ‘1년6개월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보부도 당당했던 김승연 회장은 선고 열흘만인 7월12일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아주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9월11일, 항소심에서 김 회장은 ‘징역 1년6개월 형, 하지만 그 집행을 3년 유예한다’는 집행유예 및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 받고 풀려나게 된다.

김승연 회장이 실형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지 딱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병원 입원 기간을 제외하면 사실 실제 교도소 수감 기간은 며칠 되지 않는다.

6년이란 시간이 흐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다시 영남제분 사모님과 같은 구속집행정지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난 8월2일 언론매체들 구석에는 계열사에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1)에 대한 구속집행정지가 한 차례 더 연장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일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오는 11월7일까지 연장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김 회장 전문의의 소견서 등에 의하면 김 회장은 현재 구치소 등에서의 구금 생활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호전되는 등 사정의 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으나, 조울증과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호소하며 올해 1월 구속집행이 정지됐다.

김 회장은 이후 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연장을 신청했으며, 구속집행정지 연장이 결정된 것은 지난 3월과 5월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이 오는 11월7일까지 이므로 총 15개월의 구속기간 중 2/3이상인 10개월 이상을 구치소 바깥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지난 6월 25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편에서는 지난 2002년 경기도 하남 검단산에서 머리와 얼굴에 공기총 6발을 맞은 채 숨진 하지혜 씨의 사건이 그려졌다.

영남제분 오너의 전 부인 윤 모씨는 2002년 자신의 사위와 이종사촌인 하 모(당시 22세)씨의 관계를 의심,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을 쫓게 한 윤씨는 불륜 현장을 잡아내지 못하자 1억7000만원을 주고 결국 청부업자를 시켜 하씨를 살해했다.

청부살인을 지시한 윤씨는 200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무기징역을 받은 윤 씨는 수감기간 동안 지병을 이유로 2007년 검찰의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아냈다.

이후 윤씨는 형집행정지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유방암, 파킨슨증후군 등 12개의 병명을 대면서 올해 1월까지 약 40여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하루 입원료만 100만~200만원인 VIP 병실에서 호화스런 생활을 즐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승연 회장은 구속집행정지 기간에 거주지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거지와 서울대병원, 순천향대병원 등 일부 병원’으로 제한된다.

김승연 회장은 영남제분 사모님보다 더 권력과 밀착되어있는지 아니면 돈이 많아 더 빵빵한 전관예우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몰라도 구속집행정지 기간에 가회동 집에서도 머물 수 있다.

‘북창동 술집 종업원 보복 폭행 사건’의 주역 김승연 회장과 '그것이 알고싶다-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의 영남제분 윤 모 사모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 자식은 끔찍이 사랑하면서 남의 자식은 굴러다니는 돌덩어리처럼 생각하는 ‘몰인정’, 자기 자식 사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이다.

또한 당연히 가야 할 감옥을 황금만능 사상에 젖어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소변한번 보려고 들락날락거리는 집의 화장실쯤처럼 생각하는 ‘법무시’ 다.

김 회장은 과거 관행에 젖어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려고 했을 것이다. 이제는 구속집행정치 기간 계속 연장하여 때가 되면 사면복권을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있는 자들에게 ‘경제가 안보다’라 외치고 ‘국익의 선봉장’이 되기를 바라고 ‘경제민주화의 수범’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 국민이 어쩌면 바보일지도 모른다.

경제민주화가 성공하려면 재벌 기업주에대한 ‘건정성요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선진일류국가 되려면 경제주체의 한 요소인 기업주가 변하지 않고는 될 수가 없다.

재벌가들의 ‘제왕적 경영형태’, ‘비자금조성을 통한 불법적 자금 유용’, ‘탈세’, ‘검증 안된 2세로의 후계승계’등 고쳐야 할 관행이 많다.

은행에서 국민들의 돈을 빌릴 때는 기업 돈이고 쓸 때는 내 돈이라는 인식이 고쳐지지 않는 한 기업을 통한 우리 사회의 건전성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지난 2008년 국제금융위기때 158년 전통의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졌고 그 유명한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수중에 들어갔다.

한국도 선진일류국가가 되려면 나쁜 기업주를 가진 오래된 최고기업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전영준  dugs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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