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서적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를 펴낸 이후 ‘희망강사’로 변신해 한국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여공출신의 서진규 하버드 박사가 최근 영어판 ‘서소령의 꿈’을 펴냈다고 한다.
충북 제천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 박사는 밤마다 술주정하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서울에 살던 작은 아버지 댁으로 유학을 결심했다.
그러나 결국 오빠에게 밀려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녀는 사촌언니를 따라 가발공장 여공이 됐다. 서 박사는 "사회적으로 공순이라고 멸시받는 게 싫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71년 미국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아리랑’이라는 고급 식당에 취직하게 된 서진규는 한 달에 천 불씩 벌며 빚도 갚고 그 이1972년 뉴욕의 퀸스칼리지에 입학했다.
“언어는 어려웠지만 언제나 수학만큼은 자신있었다”는 서 박사에게 수학은 “한국에선 스트레스를 풀 유일한 출구였고, 미국에선 자존심을 살리는 반려자였다”고 고백했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시기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너무 사랑했던 남자였지만, 결혼하는 순간 남편의 폭력이 시작됐던 것. 서 박사는 “피신처로 생각한 것이 미군이었다”고 했다. 미군에서 동북아 지역전문가로 뽑히면서 하버드대학교 대학원까지 가게 된 서 박사는 “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버드대학교”라고 설명했다.
그녀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 “박사가 되면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이 계기가 되어 그녀의 꿈은 박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을 58세의 나이에 이루었다. 지금 그녀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2017년 미국의 국무장관이 되는 쉽지 않은 꿈이다.
서진규 박사는 시련이 닥칠수록 외유내강의 강인함을 키웠고 ‘분노’,‘반항’,‘오기’를 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 시켰다고 한다. 인상적인 것은 항상 박사학위를 받은 후 금의환향하는 모습,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 하버드대 박사모를 쓰는 멋진 모습들을 상상했고 이러한 상상이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한다.
서진규 박사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삶이 기회와 희망 없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걸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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