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중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
때는 '노무현 바람'이 휘몰아치던 2002년 12월 중순..대림동의 한 호프집에 모인 우린 마음이 다급했다.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오차 범위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재수 없으면 몇 만표 차이로 질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올 만큼 초박빙 열세였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동네 국회의원 선거야! 몇 만표 차이로 승패가 갈릴 수 있게.."낚시를 좋아하는 김모 선배는 핏대까지 세우며 젊은층의 광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노무현이 미약하게나마 밀리고 있다는 소식을 인정하기 싫은 듯했다.
"아이구 김대중 대통이 잘못했잖아여 지금 카드빚 없는 사람이 어딨어여?" 이모 선배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민심이 적잖다는 것과 은행원 출신답게 내수진작을 위한 카드 남발이 부른 서민경제 파탄이 이회창 우세로 이어진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럼 어떻해요? 갑자기 지지율이 반등할 묘안이라도 있어요?"그들 중 가장 젊은 난 체념이라도 한 듯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핏대를 세웠던 김모 선배는 "방법은 하나야! 사돈의 팔촌까지 다 설득시켜! 나도 안 나가던 동창회까지 다녀왔어!"라며 노무현 지지 독려가 유일무이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 방법 말고 부정선거를 치루지 않는 마당에야 박빙의 승부를 뒤집을 묘책은 제갈량이 부활한다 해도 불가능한 게 사실이였다.
직장이 본가와 먼 관계로 자취를 하던 난 선배들과 헤어진후 부모님을 설득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남매 모두 노무현 지지를 밝힌 만큼 문제는 부모님의 이회창 지지를 노무현으로 돌려 두 표라도 끌어와야 한다는 계산이였다. 물론,지금 생각하면 불효막심한 짓꺼리요,노사모가 아님에도 그들 이상으로 미친 얼빠진 행위였다.
누나와 형은 이미 아버지에게 전활드렸지만,"택도 없는 소리"라는 핀잔만 돌아왔다고 한다.누나는 수화기 넘어 "너 밖에 없어..부탁한다."라는 말을 전하며 전활 끊었다.난 다음날 휴무를 내서 본가에 술과 안주거리를 사들고 가 아버지와 술자리를 마련한 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대선으로 몰고 갔다.
"아버지! 이회창의 자식과 조카 보세요! 다 면제 아니면,6방(6개월 방위)이에여..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이 형이나 저나 가족에 방위 한 명 있어요? 이회창은 기득권자고,재벌편이에요..우리 같은 서민은 노무현이 구세주에요!"
그순간 수저를 상에 내려치신 아버지는 "내 이럴줄 알았다! 내 속으로 난 새끼가 이렇게 판단력이 흐려져 대통령을 해선 안될 자를 구분 못하다니..쯧쯧.. 가 임마! 너두 나 설득하러 왔지? 어림 없는 소리말고 돌아가!"
"아참..아버지..!"
"아들아! 노무현이는 국회의원으론 제격이지만,대통령감으론 아니야..! 그런 악다구니로 뭉친 사람이 허구헛날 편을 가를텐데 정상적인 국정을 운영하겠니?" 아마 노무현이가 되면 나라가 갈기갈기 찢어질 거다 두고 봐라!"
"아..아버지! 아니라니까요..!"
허나,아버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역시 부모님 설득은 어렵군.."혼자 비맞은 중마냥 중얼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선배들에게 전활했더니 대부분 실패했다는 소리와 유모 선배는 월남전 참전용사 출신인 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설교까지 덤으로 듣고 왔다며,역부족이였다는 말을 대신했다..
"그래 기다려 보자! 방법이 없네.."우린 전화를 끊으며 이틀 후 벌어질 기이한 일을 예상이나 한 것처럼 실낯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헌데 아니나 다를까 노무현을 돕던 정몽준이 동맹을 파기하는 사건이 벌어졌고,유세 마지막날 누구다 할 것 없이 투표를 독려하는 전화로 노무현 지지를 유도한 우리는 마침내 승자가 되는 기쁨을 맛봤다.
아버진 "이제 5년간 시끄럽겠구만.."하시며 밖으로 슬며시 나가셨으나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아버지의 기분을 헤아려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와 생각해도 너무 죄송하다. 물론,난 노무현 지지를 2년도 안돼 땅을 치며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고 배는 항구를 떠난 뒤였다..(2012년 1월 9일 필자의 글 "노무현을 택했던 오판을 만회하리라!" 中...)
지난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유권자의 40%에 육박하던 2030세대의 몰표라고 보는 게 정설이다. 서민 대통령을 표방하며 기득권과의 일전을 예고한 노무현 후보는 청년층이 열광하기에 충분했다.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와 5공 청문회 당시 보여준 화끈한 정의감은 재벌과 기득권 편에 설 것같은 이회창 후보와 너무도 대비됐던 게 사실이다.
물론 그 막연한 기대감이 산산조각나는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도 참여정부의 환상에서 허우적거리는 청년들이 적잖다는 점이다.
서민경제의 파탄을 몰고온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재인 후보를 노무현의 분신처럼 떠받드는 청춘을 보노라면 싸대기를 한 대 날리고 싶을 정도다.
3040의 대다수는 부모님의 의견을 무시하고 급변를 택했지만 돌아온 것이라곤 물가 불안과 집값 폭등,국민 간의 편가르기 뿐이였다.
헌데 그 실패한 정권의 후계자가 근신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또다시 정권을 달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무리 3040이 진보적 성향이 강해도 그렇지 이명박 후보에게 500만 표 이상으로 패했던 원인파악은 뒷전이고 이게 뭐하자는 수작인가!
여러 소리 필요 없다! 노무현을 메시아로 오판했던 3040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적임자가 누구인지 꼼꼼히 따져 "2002년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궤변을 선봉에서 박살내야 할 것이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정해중 jhj7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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