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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웅을 찾아서
김성춘 | 승인 2010.08.02 17:16

春花秋月何時了? (봄꽃의 슬픔과 가을 달의 그리움은 언제 그치는가?)
往事知多少. (왕궁에서의 일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네.)
小樓昨夜又東風 (어젯밤 작은 누각으로 동쪽에서 또 바람이 불어왔지만)
故國不堪回首月明中 (밝은 달빛아래 차마 고국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겠네.)

彫欄玉砌應猶在 (조각으로 장식한 난간, 옥으로 빚은 계단은 그대로 있겠지만)
只是朱顔改 (그때의 홍안紅顔은 이제는 아니라네.)
問君能有幾多愁 (그대여, 묻노니 시름이 얼마나 되는가?)
恰似一江春水向東流.((애수)는 봄철 강물 되어 동쪽으로 흐른다네.)

☞여기에서 동쪽은 카이평의 동쪽에 금릉(왕궁)이 있음을 가리킨다.

위 시(노래가사)는 중국 남북조 시대 남당南唐(수도,금릉)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임금인 이욱李煜(937-978)의 작품이다. 그는 당시 중국을 통일한 송나라 수도 카이펑으로 끌려가 감옥생활을 한다. 음악과 그림에 정통하고 시사가부詩詞歌賦에 뛰어났던 그는 굴욕과 좌절, 분노를 시와 노래로 달래곤 했었다. 그러던 978년 죄수신세 3년째로 접어드는 어느 가을날 밤, 이욱은 처량한 심사가 고조되어 시가를 읊조린다. 이것이 바로 천고千古에 빛나는 위의 시이다. 그렇지만 이욱은 이 시가 불온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한 송태종 조광의에 의해서 독살 당한다. 이 시는 그의 마지막 시이기도 한 것이다. 시에서처럼 아마 그는 영혼이나마 동쪽 고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욱이 술과 여자 때문에 망국亡國의 군주가 되었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의자왕이나 은나라 주왕처럼 충신들을 죽이지 않았고, 연산군이나 하나라 걸왕처럼 살육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군주들은 다 향기 나는 술과 아름다운 여인을 가까이 했기 때문에 이를 패망의 원인으로 돌리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특히 이욱은 「그는 백성을 아꼈으며, 송에 끌려가서 죽자 강남사람들이 슬퍼서 숨어서들 통곡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백성을 사랑한 군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욱에게 있어, 항복은 약소국의 군주로서 백성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차선책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나라의 흥망성쇠는 시대적 진운進運이라고 봐야 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닿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욱을 오늘날 우리가 다시 살려내고, 우리가 다시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욱의 삶이 인간의 최상과 최하를 보여주었는데 우리는 거기에서 스펙터클한「인간의 모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욱은 먼저 모든 예술은 그것이 언어에 의한 것이든 악기에 의한 것이든 붓에 의한 것이든 사람의 신체기관에 의한 것이든 삶의 동기임이 드러난다. 그것은 곧 끊임없는 자기확인의 과정으로 삶의 에너지이고 삶의 의미이며 생명력 자체임을 보여준다. 이욱에게서 글자와 가락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그의 삶은 더욱 짧았을 것이며 당연히 빼어난 시들도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로「인생은 짧으나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사실임을 중명해 준다. 살았을 적 황제노릇 했던 그도 지금은 어느 집 담벼락의 흙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오늘 그의 시나 그림을 대하는 사람들은 감탄과 탄성을 자아낸다. 이 말을 한 히포크라테스는 이욱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욱은 이 말에 제일 합당한 사람이었다.

세 번째로 「구성의 역모순」을 다시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에게는 미안하고 그 사람은 고통스럽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행운이 되고 복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욱은 한 때 황제였었기에 감옥생활의 치욕과 분노는 보통사람 이상일 것이다. 트라우마(외상후 정신적 장애)도 이만저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욱은 자포자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치열했으며 결코 미적의식을 잃지 않았다. 이욱의 임금 시절의 것보다 말년의 불운한 생활에서 나온 작품들이 더 강하게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고 심금을 울린 것이다. 역시 이욱은 「창조적 소수」였던 것이다.

네 번째로 이욱은「궁이후공窮以後工」 즉, 「빼어난 시문은 곤고함에서 나온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조신시대 권필(1569-1612)이나 김려(1766-1822)의 글들이나 굴원의 초사楚辭 이탁오의 분서焚書와 장서藏書와 고호의 그림,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 등이 일관되게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그렇다면 천하의 누구라도 그 사람이 「아Q정전」의 노신이나 「황무지」의 T.S.엘리어트라 하더라도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졸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칭 타칭 (귀족)대가大家들과 그 아류나 부류들이 행세하는 나라에서는 「천고의 절창」이나 「천고의 절구」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니체가 「모든 책 중에서 나는 오직 사람이 그 피로써 쓴 것만 좋아한다.」는 말이나 박은식이 그의 저서를 한국독립운동지혈사라 한 것은 혼이 깃들지 않은 것은 거들떠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욱은 「혼」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이욱의 가치는 사람들과 종래의 인식을 같이 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인식의 경계를 허물었다는데서 더욱 두드러진다. 옛말에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이 있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자 한 나라와 맞바꿀 수 있는 미녀라는 말도 된다. 시인 롱사르는 「헬레나의 눈망울은 트로이 10년 전쟁의 가치가 있다.」고 하여 사람들의 상상력을 돋우었다. 일찍이 영국은「세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꿀 수 없다.」하여 대영제국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자부와 교양을 드러내었다. 이욱도 이렇다고 할 수 있으니 그의 시가는 과히 경국지문傾國之文이라 할 수 있고 실제도 경국지문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나라라는 것은 부수적일 수 있고 또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설사 이욱의 왕국이 500년을 더 존속했다 하더라도 이욱이 없는 나라라면 그 의미는 대단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백석의 시 한 수 한 수는 천금의 가치가 있다.」고 한 길상사의 옛 주인 자야子夜여사는 대단한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수치나 계량에 밝은 사람은 볼 수가 없다. 가시적인 사람이나 체계적인 사람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똑같은 세상에 살지만 다른 세계를 보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욱은 오늘 호화로운 압구정동이 그 옛날 권신 한명회가 정자를 물가에 세웠듯이 다시 물길이 압구정 터 앞으로 흐를 것임을 알려준다. 물론 남대문 앞도 다시 옛날처럼 큰 저수지가 생길 것이다. 이욱의 가치는 사람들이 그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데 있다.

아욱의 가치는 우리의 눈을 더 높은 곳으로 돌리게 한데 있는 것이다.

지금 누가 진시황이나 징기츠칸을 추모하는가? 지금 누가 우리들의 추모를 받고 우리를 시상에 젖게 하는가? 세상에서 진정한 영웅이고 권력자는 바로 이욱같은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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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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