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어려웠던 1960년 말 1970년 초. 그때 대한민국보다 더 어려웠던 나는 꼭두새벽부터 종로5가의 여관골목을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 했었다. 당시에는 여관에서 식사를 제공했는데 누룽지가 많이 눌러 붙었다. 이때 부흥여관의 「조산댁」이라는 취사를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께서 3년여를 매일 빠짐없이 누룽지를 주셨는데 누르스름한 빛깔에 설탕을 살짝 뿌려놓은 그 맛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지금도 그 고소한 맛을 잊을 수가 없는데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아주머니의 고학생을 생각하시는 갸륵한 마음씨이다. 아직 나는 그 은혜를 갚지 못하였다.

나는 아이가 셋이 있는데, 다들 학교에 다니면서 장학금을 많이 받았다. 다른 아이에게 갈 것을 내 아이가 혹시 가로 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받은 만큼 갚는 것은 기본이고 이자에 이자까지 갚아야 한다.」「그것이 장학금을 내놓은 분의 의사이며 이웃사랑이자 사회 환원이다.」라고 가끔씩 힘주어 말하곤 한다.

나는 나라로부터는 은혜를 받지 못하였지만. 같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로부터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빚진 자의 마음」이 언제나 나를 일으켜 세웠고, 부축해 주었으며, 오늘도 나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러 학자님과 문인들이 시간과 성품을 쏟아서 얻은 성과에 힘입어 쉽게 글 나부랭이를 쓰고 있다. 이것도 「부채의식(負債意識)」에 견디지 못하여 행여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부문이 있을까 해서다.

예부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천인합일설(天人合一設」이라 하여 군주가 덕이 있어야 나라나 백성이 편안하지 군주가 덕이 없으면 기근 홍수 역병 병란 등이 발생한다고 하여 군주의 정심(正心) 정행(正行)을 왕도정치로 규정하였다. 태종우(太宗雨)가 대표적으로 군주가 단정하니 대소신료도 따라하였다. 선비정신의 원천이자 선비가 왜 곧아야 하며 매서워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지금도 이 가치는 유효하지만 하나가 더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것은 부채의식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십자가 보혈에 힘입은 대속(代贖)에 의해서 부채의식의 종교이다. 우리는 눈을 뜨면 가까이는 부모님으로부터 멀리는 자연의 바람과 비와 햇살로부터도 도움을 받는다. 하다못해 글 쓰는 사람은 문곡성(文曲星)의 도움을. 부자는 식신(食神)의 도움을. 로망적인 로맨스에는 안드로메다 별의 도움을. 오늘의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도움을 이렇게 우리는 유형 무형으로 또는 모태나 음덕으로도 받는 것이다. 빚진 사람은 큰 소리를 칠 수가 없고.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부채의식은 심지어 「선비의 나라가 망했는데, 따라 죽는 선비가 없다면 말이 되느냐?」하며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다. 부채가 많다는 것은 마치 백성이 물이라 부력(浮力)이 세서 더욱 정성스럽고 극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공직자에 치환하면 봉행의 찬미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공직자가 그나마 계몽주의 사조를 접했다면 다행이지만 제 잘난 의식을 가졌다면 국민을 깔볼 것이다. 수직적 사고에 젖었다면 국민들을 강압적으로 대할 것이고. 물욕이 많다면 토색질에 영일이 없을 것이다. 줄이나 아첨 매수 등의 엽관이라면 붕당과 작당으로 통할 것이다.

그가 「빚진 자의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국민을 대한다면 당장 대한민국의 공기가 달라지고. 산천초목에 생기가 돌며.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나 이 마음은 「호연지기(浩然之氣)」라 세상의 비급이나 비결처럼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을- 오늘 장관 대법관 총리의 화려한 이력이 소개되지만 우리의 나팔수가 부는 나팔은 예전의 그 소리는 아니다. 그 어느 얼굴에서도 빚진 자의 표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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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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