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일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지난 10월 31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박근혜 후보 캠프의 이정현 공보단장이 제안한 대선후보 사퇴방지법과 투표시간 연장법 동시처리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새누리당이 집단멘붕 사태에 빠진 것 같다.

사건의 발단은 이 단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에게 “대선 후보가 국민혈세를 먹고 튀는 일명 ‘먹튀방지법’과 투표시간 연장법을 동시에 여야가 함께 논의해 고치자. 두 개를 동시에 같이 처리하는 것을 제안한다”고 밝힌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박선규 선대위 대변인은 31일 브리핑에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개인적으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 선대위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거듭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공식입장이 아닌 이유로 “이 단장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이에 기자들이 "이 단장이 당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반박하자, 그는 "내가 선대위 대변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선대위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이해해 달라"고 식은땀을 흘리기까지 했다.

선대위 대변인의 발표만 공식의견이고 캠프의 공보단장이 공개석상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제안은 개인의견이라니 그럼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는 공식후보가 아니라 개인자격의 후보라는 말인가? 아무리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사이라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대변인이 공보단장을 폄하해서 어쩌자는 말인지, 이름이 제 아무리 바뀌어도 딴나라당은 어쩔 수 없는 딴나라당인가 보다.

아마도 그런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이 신호탄이 되었는지 1일 여의도 당사에서 잇따라 열린 최고위원회의와 선대본부회의에서는 당의 입장 번복 지적에 차단막을 치며 두 법안의 연계 처리 제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황우여 당 대표 이하 주요 당직자가 나서서 '선동수단', '정략적 악용'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등 정치도의에 어긋나는 패악질에 여념이 없었다. 새누리당 전체가 정체성을 잃은 채 날뛰는 꼴이 무슨 조폭집단 같았다.

이날 호남선대위에서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한 황우여 대표는 "선거를 치르지 않는 후보에게 (국가보조금이) 가는 것은 부당이득의 성격이 있어 법으로 제재하자는 것이고, 서로 성격이 다른 것(투표시간 연장)을 연계하자는 것은 전적인 악용"이라고 주장했다. 유기준 최고위원은 투표시간 연장 필요성에 대해 "해외 사례에 비춰 봐도 (한국의 투표시간이) 국민의 참정권(보장)에 미흡하다고 주장할 이유는 없다. 2007년 대선 이후에는 적극 주장하지 않던 민주당이 대선 얼마 두지 않은 시점에 이런 주장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후보사퇴시 선거보조금을 반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마치 희생이라도 하듯 포장하는 용비술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문 후보의 결단을 "너무 당연한 이치다. 돈 빌린 사람이 갚는 게 당연"하다고 폄하하면서 "돈 빌린 사람이 돈 갚는데 조건거는 걸 봤냐"고 따졌다. 또한 야권의 투표시간 연장 주장에 대해서는 "당연한 의무를 이행하면서 마치 권리를 포기한 양 가장하고 마치 양보라도 한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라는 것을 의심하게 한다"고 비난했다.

이날 가장 가관이었던 것은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킨 장본인 이정현 공보단장 겸 최고위원이었다. 그는 "투표시간 연장법과 먹튀방지법에 대해 제가 기자실에서 얘기할 때, 두 법안의 교환을 전제로 얘기한 적이 없다. 투표시간 연장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먹튀방지법은 예외 없이 통과시켜야 할 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명색이 대선후보 캠프의 공보단장이라는 자가 다수의 기자들 앞에서 스스로 했던 제안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는 후안무치한 작태를 연출할 수 있을까? 기자들이 증언조차 무시하고 딴 소리를 할 수 있는 무식함이 결국은 있지도 않은 녹취록을 보았다면서 함께 확인하자고 난리를 칠 수 있는 용감함의 원천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또한 선대위 대변인이라는 자가 공개석상에서 박 후보의 입이라 할 수 있는 캠프의 공보단장을 공인이 아닌 개인으로 매도하여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보단장이나 대변인이나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최소한 구두경고라도 받았어야 하는데 오히려 영웅담을 말하고 있는 새누리당이야말로 먹튀정당이라는 사실을 국민들 앞에서 잘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신들이 제안한 먹튀방지법의 당위성을 말하기 위해 돈 빌린 사람이 갚는 게 당연한 이친데 조건을 따지느냐고 한 얘기는 논리박약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런 논리를 가진 작자들이 어떻게 채무경감에 대한 법률을 만들 생각을 하는지 그 용기가 가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갚으면 되지 이자경감 조치를 해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법을 만든다면 사기 아닐까? 그리고 돈 빌린 사람은 조건 없이 갚는 게 당연한 이치라면서도 각종 이자경감조치를 해주면서 투표권을 좀 더 신중하게 행사하기 위해 시간을 더 달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만한 것도 못 해준다고 하는 억지는 무슨 논리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미 새누리당의 당 대표까지 나서서 패악질을 해버렸으니 남자가 돼 가지고 한 입으로 두 말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상에서 나온 궁금증에 답을 할 사람은 박근혜 후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왜 새누리당이 늘 박근혜 1인에 의한 1인을 위한 1인의 독선적 정당으로 비춰지는지, 왜 박근혜는 여성이면서 여성답게 대우받지 못하는지 잘 보여준 희대의 해프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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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일  solbeey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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