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일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여성대통령은 안 된다는 말을 누가 했더라?

박근혜 대선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야당이 공세를 펴는 것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은 누가 봐도 코메디다. 새누리당 선대위 김무성 총괄본부장은 31일 선대본부 회의에서 "최근 야당에서 제기하는 여성대통령 논란은 논점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여성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인지, 박 후보가 여성이어서 안 된다는 말인지 분명히 말해 달라"고 압박했다.

그는 야당이 여성을 기존 통념에 집어넣는 성차별적 발언과 흑백논리를 펴고 있다며, 박 후보는 여성만 대변하는 친여성 대통령이 되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박 후보가 여성정치인으로서 그 어떤 남성 지도자보다 정치발전에 기여해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아직도 남아있는 남성 위주 법, 제도와 관행에서도 여성들은 탁월한 능력과 성취로 우리사회 진보에 앞장서 왔다. 가장 대표적인 남성 위주인 정치 세계에서 국민들이 선택한 여성대통령 그 자체로 여성 권익을 위한 이정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한다는 것은 가장 큰 변혁이고 정치 쇄신이라 생각한다. 박 후보가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영국의 대처 총리 못지않게, 아니 더 잘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이 “여성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인지, 박 후보가 여성이어서 안 된다는 말인지 분명히 말해 달라”고 한 것은 난독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되는 얘기였다. 말을 만들어서 시비를 걸려는 저의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의 말을 받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이정현 공보단장의 어거지가 그 증거라 하겠다.

이 단장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이 박 후보에게 '여성성이 없는 후보'라고 연이어 얘기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여성 전체를 비하하고 모독한 것이고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대한민국 여성을 죽이는 것"이라고 비판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는 "문 후보는 이 부분을 지나가는 식 말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민주당은 대한민국 여성의 적이고 앞으로도 소수나 약자의 편을 드는 위선과 가식의 말을 국민들은 믿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공보단장에 입에 거품을 물만큼 민주당의 비판이 문제투성이였을까?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가 30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후보가 과연 여성의 사회진출과 정계진출을 위해 무엇을 했고 새누리당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평가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박 후보가 생뚱맞게 여성 우대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성대통령이 안 된다는 말도 아니고 박근혜가 여성이라서 안 된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질 않는가. 이참에 한 가지 더 따져둬야 할 것은 건 민주당에서 박 후보에게 ‘여성성 없는 후보’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자꾸 했다고 하니 그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말했다고 치자. 그런데 설사 그렇더라도 어떻게 그게 대한민국 여성전체를 비하하고 모독한 것이라는 얘기며, 왜 민주당이 여성전체의 적이라는 얘긴지 도통 모를 일이다.

이날 박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과거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통해 여성의 장관직, 정·재계 진출을 위해 많은 쿼터제를 적용하고 여러 인센티브 제공도 했다. 현재 19대 국회에서 지역구 공천 여성 비율을 보더라도 앞서가는 여성정책을 쓰고 있는 민주당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박 후보에게 국민은 속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여성을 위한 일을 더 많이 한 것은 민주당인데 박 후보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뿐인데 마치 여성비하나 한 것처럼 하고 있으니 자가발전도 정도껏 해야 하는데 가관이다.

뭘 사과할 게 있어서 지나가는 식 말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라는 것이며, 왜 박근혜 개인도 아닌 여성계 전체에 사과해야 하는 것인가? 뭐가 여성계 전체를 비하하는 일이고 뭐가 대한민국 여성을 죽이는 일이란 말인가? 진보정의당이나 안철수 후보 캠프가 한 비판을 듣기는 들었는지 들을 말 안 들을 말 가려듣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지난 29일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저서 '생명의 정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진보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그동안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와 싸워온 다수의 여성을 모독했다"고 평가했다. 심 후보는 "박근혜 후보는 권위주의의 태내에서 태어나 한 번도 정치적 여성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여성들이 박빙의 삶을 살 때 억압했던 대표주자"라며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여성이었어'라고 커밍아웃하고는 정치쇄신이니 혁명이니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혁명이 아닌 역사의 반역"이라며 "언제가 됐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진보정치에서 책임지겠다. 강금실의 꿈, 그리고 생명의 정치철학과 감수성까지 가슴에 담고 생명의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측 박선숙 선대본부장도 29일 종로구 공평동 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후보에 대해 "오랜 정치 활동 과정에서 여성을 대변하고 대표해서 활동해오신 것이 있는지 좀 더 되짚어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단지 그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라며 "혁신은 내용으로 이야기해야지 어느 한 사람의 성별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 사실은 이 공보단장이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에게 카운터블로라고 날린 게 방향을 잘못 잡은 불발탄이라는 점이다. 남의 다리 긁은 격이라고나 할까.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에 대한 비판은 민주당만의 주장이 아니었고 다른 야권의 주장은 더 날이 서 있었다는 사실, 민주당에 앞서 다른 야권에서 먼저 비판을 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게 이런 식이다. 새누리당의 주장이나 비판은 ‘주유소습격사건’을 연상시키듯 민주당에만 집중되고 있으며, 사실관계보다는 감정선을 자극하기 위한 전형적인 침소봉대형이라 하겠다.

박 후보가 야권 단일화에 대응할 카드로 꺼내든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야권이 비난의 수위를 높여가자 이를 조기에 차단하려는 고도의 술책으로, 그리고 가장 강력한 경쟁후보인 문 후보 흠집내기를 동시에 하겠다는 저의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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