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일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지난 25일 오후 새누리당은 선진통일당과의 당대당 합당을 공식 선언했다. 대선의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다는 충청권의 표심을 얻었다면서 야권의 지지부진한 후보단일화를 비웃었지만 왠지 씁쓸해보였다.

이날 합당에 대해 박 후보는 "함께 힘을 합해줘서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드린다"고 말했고 이인제 대표는 "세 후보 중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건강하게 국가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켜야 되겠다는 당면 목표를 위해 합당을 했다"고 화답했지만 양 당 모두 내부 반발이 큰 것 같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이 대표의 대권욕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정치역정 탓일 것이다. 경기도지사 시절이던 19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하자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제3후보로 나섰다.

당시 500여만 표를 얻으며 선전했으나 보수 표를 분열시켜 김대중 정부 탄생을 도왔다는 보수 진영의 원성을 샀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국민신당 세력을 이끌고 새천년민주당에 합류해 '이인제 대세론'을 만들어내며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으나,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뒤 민주당과 결별했고, 이후 자민련으로 옮겼다.

19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 기간 중 대권욕에 취해 보수 진영에서 진보진영으로, 그리고 다시 보수진영으로 회귀하는 등 처절한 기회주의적 행보를 보여주었던 그의 기행은 2007년 대선 기간 중 완벽하게 재현된다.

2007년 17대 대선이 시작될 당시 국민중심당에 몸을 담고 있던 이 대표는 재차 탈당하여 민주당에 합류하여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은 그 이전이나 지금의 민주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군소정당이었고 그 또한 선거 결과 6위라는 참담한 결과를 기록하며 낙선을 했다.

대권욕은 이루지 못한 채 군소후보로 전락했음에도 이 대표의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추한 정치역정은 계속된다. 2008년 민주당과 대통합 민주신당이 통합한 통합민주당에 합류했으나 그 해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또 다시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하여 당선된 그는 2011년 자유선진당에 입당한 그는 지난 4·11총선에서 6선에 성공했다. 두 번째 보수진영으로의 회귀를 통해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무소속과 소속당의 당명 개정까지 합하면 12번째 당적변경이 되는 이번 합당을 통해 친정으로 복귀한 셈이다. 그는 이 기간 중 보수에서 진보, 진보에서 보수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역주행을 2번씩이나 하는 모태철새본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철새도래지의 완결판"이라고 비꼬았다. 자신이 몸담았던 당이 공중 분해된 이후에도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 준 그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자신을 불태운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피닉스(불사조)'에 비유하는 인사도 있다.

그런 그가 합당 일성으로 내뱉은 말이 뭔고 하니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야합이라는 주장이었다. 26일 KBS 라디오에서 출연한 그는 "안 후보의 지지자들은 낡은 정치를 배격하고 혁명적으로 정치를 바꿔보자는 것인데 안 후보가 민주당의 낡은 틀과 단일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면서 "새누리당과 선진당의 합당은 다르다. 큰 틀에서 가치와 노선을 공유하는 두 정당이 손잡는 것이어서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라고 자평했다. 그런 위인과의 합당에서 무엇을 취하겠다는 것인지 가관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양당 합당에 대해 이회창 전 선진당 대표의 반발이다. 이 대표는 합당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이(회창) 전 대표님께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셨다는 말씀을 드린다. 또 심(대평) 전 대표님께서도 아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계신다"고 말했지만 이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전폭적 지지 표명'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이 전 대표가 합당 기자회견을 한 것을 보고 화가 난 상태"라고 전했다.

'선진통일당 정상화를 위한 전국 당원협의회'는 이날 새누리당과 선진당의 합당 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다고 밝히는 등 선진당 일각의 합당 반대 움직임이 이 전 대표와 관련돼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박 후보 캠프에서도 선진당과의 합당을 통해 이인제의 지지를 얻은 것만으로 충청권 민심을 모두 끌어들일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종필(JP) 전 총리와 이회창ㆍ심대평 전 선진당 대표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며, 이들 모두가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할 때 합당 시너지 효과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세 축의 하나이지 가장 강력한 축인 이 전 대표가 양당 합당에 반발하면서 또 다른 충청권 맹주를 자임하는 정운찬 전 총리와 연대하여 안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당과 통합하여 이 대표를 끌어들인 것은 동교동계 출신인 한광옥을 영입하여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앉힌 것과 더불어 연타석 안타쯤은 돼 보인다. 아울러 이런 연타석 안타에 고무된 박 후보는 득점과 연결시키기 위해 회심의 카드를 들고 나왔다.

25일 박 후보는 ‘대한민국 선진화 전진대회’에 참석한 것이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선진화시민행동은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인사들이 주축이 된 단체로 상임대표인 서경석 목사와 상임고문인 김진홍 전 뉴라이트 상임의장은 현 정부 내내 박 후보와 일정 거리를 둬 온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또 다른 상임고문 박세일 교수는 4ㆍ11 총선 직전 보수성향 중도신당인 ‘국민생각’을 창당하면서 박 후보와 정치적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비박계 주축세력이다.

박 후보는 행사에 앞서 이들과 가진 티타임에서 "국가비전에 대해서도 그렇고 교육을 통해서 변화를 이룩한다는 신념도 그렇고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요청했고, 이들은 "좌파정권을 막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화답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스스로는 꽤나 낙관론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았다.

이와 동시에 박 후보는 민주당내 비노계 인사들을 추가로 영입해 국민대통합 드라이브에도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박 후보의 행보를 보건대 민주당내 비노계의 한 축인 한광옥을 영입한 데 이어 충청권의 맹주를 자처하는 선진당과 이인제까지 영입하고, 또 보수진영내 비박계ㆍ친이계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선진화시민행동까지 우호세력화 함으로써 보수대연합에 야권 비노계(非盧系)를 아우르는 국민대통합의 큰 그림이 그런 대로 갖춰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뭔가 2%쯤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한광옥 영입 당시 먼저 영입된 안대희와의 갈등은 두 사람 사이의 겉으로는 구원관계가 문제인 듯 했지만 도덕적 가치관의 충돌이었다는 점에서 박 후보가 내세우는 정의와 원칙에 철저히 위배되는 흠결이라는 평이다.

보수대연합의 기치 아래 이뤄진 선진당과의 통합은 대권욕에 찌들대로 찌들어 보수와 진보를 아무 생각 없이 넘나들던 이 대표의 정치역정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 이인제의 처절한 대권욕에 박 후보의 대권욕이 투영되는 게 아니냐는 의미심장한 비판을 허투루 듣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미 통합과정에서 선진당의 창업자인 이회창의 본심을 파악하거나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다 이해하고 적극 찬동했다는 식의 공작정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내홍이 커지고 있는 것도 박 후보가 내세우는 신뢰에 먹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마지막으로 서경석, 김진홍 등 뉴라이트계열 인사를 만나 당내의 비협조적인 친이계를 아우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도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 당내 친이계의 핵심은 이미 선대본부에 참여하고 있는 임태희나 정몽준도 아니고 서경석, 김진홍도 아니다.

구시대 인물로 치부되는 서경석, 김진홍보다는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며 신당을 창당한 박세일이나 대선후보가 되겠다는 정운찬 정도의 영입이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정치행보에 있어서 이인제와 너무도 많이 오버랩되는 정몽준이나 함량 면에서 그다지 큰 그릇이 아닌 임태희보다는 경선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비협조적인 이재오 의원의 선대본부 참가는 돼야 할 것이다.

모든 그림은 마지막 붓터치가 중요한 법이고 대권을 상징하는 용 그림이라면 화룡점정이 제 맛인데 그 점에서 애는 쓰고 있지만 그 때마다 한 가지쯤 내세우는 가치관이 훼손되고 있다는 느낌을 박 후보의 행보에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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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일  solbeey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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