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일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풍선 날리기도 덥석 물지 말라는 법 있나?

“만지면 만질수록 커지는 게 있다, 그것도 여자가 만지면 더 잘 커진단다. 뭐지?” 딴 생각 하지 마라. 이래 뵈도 마음만은 청순하다…

NLL문제가 자꾸 커지고 있다. 정문헌인지 뭔지 하는 정신 나간 국회의원 하나가 말도 안 되는 비밀 정상회담이니 비밀 녹취록이니 하면서 무작정 공개하라고 난리칠 때는 무슨 돈키호텐줄 알았다. 그런데 그 불장난에 기름을 통째 부으며 장단 맞추는 ‘상돈키호테’가 또 있었다.

소위 원내대표라는 자가 사실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의혹 제기에 한술 더 떠서 NLL만이 아니라 종북 논란까지 범위를 확장해버리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런 휘하 의원, 그리고 원내대표를 단 한 차례도 제어하지 않은 채 캠프까지 나서서 오히려 힘을 실어주게 한 박근혜 후보는 ‘극돈키호테’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비밀 정상회담이 없었고 당연히 비밀녹취록이 있을 수 없잖은가? 그러자 이번에는 비밀 녹취록이 아니고 정상회담 때 작성된 비밀대화록이라며 그걸 공개하란다. 여전히 비밀이라는 데 유난히 목숨을 건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개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그게 왜 비밀이냐 하면 법상 전직대통령의 기록물은 공개하지 않게 되어 있어서인데, 그건 그 법을 같이 만든 새누리당 본인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된 것인가 억지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다시 말하자면 비밀대화록이 아니라 있다면 비공개대화록인데 여전히 비밀 운운하면서 특별한 문제나 있는 것처럼 몰아가기를 멈추지 않다가 고색창연한 색깔논쟁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게 아니냐는 후폭풍을 맞고 만 것이다. 국회의원 2/3가 찬성해야 공개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내용을 알고 있다면 누군가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그건 현 정권의 전 정권에 대한 불법사찰이 된다는 후폭풍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새누리당과 박 후보 캠프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고삐 풀린 폭주 기관차 같았다. 이번에는 분명히 NLL폐기 주장을 한 것이 그 비공개대화록에 기록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이 아니라면 비공개대화록을 공개하라고 생떼를 썼다. 그런 것이 없다,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 그러니 왜 공개하라고 우기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분명히 보았다고 주장하니 어디서 본 내용인지 출처를 밝히고 그 불법행위의 책임을 지겠다고 박 후보가 확인해준다면 같이 열람할 용의가 있다는 문재인 후보의 답변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마냥 “공개, 공개 또 공개”를 외친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그런 떼를 쓰지 않는데 당과 캠프가 일사불란하게 꼴값을 떠는 게 집단적 돈키호테 증후군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에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이 있었고 NLL문제도 거기 묻히는 듯했다. 그런데 웬걸 박 후보가 딴에는 큰 맘 먹고 온갖 의혹을 불식시키고자 한 것 같은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인혁당 보다 더 패착이 된 것을 뒤늦게 인식한 박 후보가 23일 정수장학회 논란의 정면 돌파를 하겠다면서 사실상 꺼내든 카드는 NLL관련 전면전이었다.

소속의원이 NLL문제를 제기하자 기다렸다는 듯 만들었던 ‘노무현 정권 영토포기 진상특위’가 이날로 ‘노무현 정권 영토포기 및 역사폐기 진상특위’로 확대되었다. 한때는 보수였으나 편의상 극우와 (극좌까지는 아니지만) 중도좌파까지는 쉽게 넘나드는 한 신문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자료목록을 폐기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를 한 것이 큰 힘이 된 것 같았다.

국회 본회의를 소집해 NLL 관련 긴급 현안질의를 할 계획을 세운 것은 물론 대통령이 임의로 기록을 삭제하지 못하도록 대통령기록물법 개정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대변인단의 현안브리핑도 부족하다는 듯 하루 종일 논평을 이어가며 공세를 계속했다.

이에 대해 이정현 공보단장은 "외부 영입인사 문제 등 당내분란이 정리됐고 전국 선대위 구성도 마무리됐으며 과거사 문제도 박근혜 후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한 만큼 '털었다'고 볼 수 있다"며 "이제 야권 후보에 대한 검증에 돌입할 때"라고 설명했다. 일단 그렇게 방향이 정해지자 새누리당과 캠프는 마치 물 만난 고기와도 같았다.

정수장학회건으로 패착을 놓은 박 후보가 그 전면에서 솔선수범하고 있었다. 박 후보는 이날 전북지역 택시조합 방문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질문에는 "더 드릴 말이 없다"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도 자료목록 폐기지시에 관한 보도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냐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새누리당도 이날 열린 원내외 주요 회의마다 NLL과 관련해 수위를 한껏 높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날 긴급 소집된 최고위원회는 NLL 공세를 퍼부을 '새 판'을 추가로 마련하는 내용을 의결했는데, 이날 최고위 결의에 대해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그렇게 비판을 받으면서도 박 후보의 독단적 의사결정 방식은 바뀌지 않고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최고위도 최고위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늘 해왔던 것처럼 박 후보의 지시에 따라 결정된 순전히 새누리당식이었다.

당초 박 후보와 함께 호남 방문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던 황우여 대표가 '야권후보 검증에 집중하라'는 박 후보의 지시를 받고 비행기를 타기 전 발길을 돌려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둘째는 NLL문제가 의혹제기 차원을 떠나 새로운 선거 프레임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날 최고위에서는 함구령이 내려진 듯 정수장학회 관련 내용은 일절 언급되지 않았는데, 정수장학회는 덮어두고 NLL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논란으로 다시 '과거사 수렁'에 빠진 상황이지만 이를 만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까면 깔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과거사 프레임'이라는 불리한 싸움판보다는 'NLL 프레임'이 낫고, 따라서 이 판을 최대한 키우겠다는 것이다.

안보문제에 매달리다 보면 과거사는 뒷전이 될 거고, 그러니 최소한 밑져도 본전은 되는 안보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손익계산을 이미 한 것 같다. 선거 때만 되면 극우파의 단골메뉴가 되고 있는 안보문제, 말이 안보지 사실상은 색깔논쟁이 또 다시 최고의 이슈로 등장한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셋째, 문 후보와 더불어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한통속으로 몰아 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날 최고위를 주재한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무성 선대위총괄본부장은 "무슨 잘못을 했고, 무엇이 무서워 역사를 감추려 했냐", "언제까지 침묵할 것이냐, 오늘 중으로 입장을 밝히라"며 높은 톤으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싸잡아 겨냥했다.

여기서 우리는 NLL논란의 당사자로 새누리당이 지목했던 민주당 문 후보와 함께 안 후보까지 끌어들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새누리당은 안 후보를 안보프레임에만 끌어들인 게 아니라 비리문제에도 문 후보와 같은 올가미를 씌우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문 후보 아들 특혜 채용 의혹을 집중 부각시키는 동시에 안 후보에 대해서도 "반칙 정치인이자 비리 백화점"이라며 국정감사 이후 본격적인 조사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새누리당과 박 후보이 NLL에 집착하면 할수록 대선 후보로서 대선정국을 주도할 프레임 밑천이 바닥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에서 법원 판결을 잘못 이해한 것을 드러내는 등 스텝이 꼬여버렸고, 최필립 이사장도 버티기에 들어간 상황이라 박 후보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고 인정하면서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선대위 관계자의 말이 박 후보 캠프가 처한 현실적인 애로사항일 것이다.

또한 “지난 인혁당 사건 때와는 달리 이번 정수장학회 논란에서는 박 후보의 기자회견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여론조사에 놀랐다. 여기에 박 후보가 정면돌파를 선언했으니 다른 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또 다른 관계자의 말에서 박 후보의 패착에 대한 원망 섞인 눈길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일련의 박 후보 캠프 전략 수정에 대해 이 공보단장은 "야권이 박 후보의 말꼬리를 잡고 정수장학회 문제를 걸고넘어지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냐"고 항변했지만 국민적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은 넋두리처럼 생각된다.

정수장학회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소유관계나 지배구조에 대해 해명하고 정리하라고 했더니 현재 운영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동문서답을 하고, 헌납이 아니라 강탈당했다고 법원에서도 판결했다고 하니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헌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로 김지태의 친일행위를 들먹이다 박정희가 더 친일행위를 한 것 아니냐, 독재자의 강압이 문제 아니냐는 식의 반론이 제기되자 그냥 덮겠다는 식이다.

과거사를 해명하고 사과하고 스스로 절연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화답하려는 진정성을 보이기는커녕 상대방 후보에게 색깔논쟁을 제기하여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은 덮어도 그냥 덮는 게 아니라 같이 죽자는 식이다.

후보나 캠프 스스로도 아마 떳떳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얘긴데, NLL로 안 되면 풍선 날리기도 끌어들이지 말라는 법이 없어 보인다. 발목을 잘려 버리고 나서야 밤새 추던 욕망의 춤을 멈춘 소녀처럼 스스로는 멈출 수 없는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누군가 멈추게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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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일  solbeey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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