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일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민주당, 색깔론과 불법사찰 의혹 제기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제기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비밀대화록 공개 요구에 이어 같은 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국정조사 요구를 하고 나선데 대해 민주당이 이를 수용하겠다고 나서면서 일대 반전이 일어날 조짐이다.

박 원내대표는 11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비공개 대화록에 관한 논란과 관련해, "단연코 단독회담은 없었고, 녹취록 또한 없다"면서, "녹취록이 사실로 확인되면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하겠다. 새누리당이 녹취록을 봤다면 공개하라"고 역공을 취했다. 아울러 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이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색깔론으로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국면전환용으로 정치공세를 펴는 것은 전근대적 색깔론"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8일 통일부 국감에서 정 의원은 남북 정상의 비밀단독회담이 있었고, 그 내용을 기록한 비밀대화록이 존재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했다면서 비밀대화록과 내용을 공개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이 비밀단독회담 자체가 없었고 당연히 비밀 대화록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현 통일부 당국자 역시 비밀대화록의 존재를 부인했음에도 이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서 NLL문제 외에도 노 전 대통령과 정권의 광범위한 종북적 행위까지 걸고넘어지면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이처럼 문제가 노 전 정권의 종북행위에 대한 검증 문제로 비화된 것은 이를 통해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을 낮추기 위한 박근혜 후보 진영의 꼼수로 보이는데 문제는 당시 비밀 단독회담이 없었으며 당연히 비밀대화록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팩트였기 때문에 그 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정 의원과 이 원내대표는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했는데, 그들로서는 일단 시작한 마녀사냥을 아무 성과도 없이 끝낼 경우 진짜 마녀사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끝낼 수 없었겠지만 그로 인해 현 정권의 전 정권에 대한 ‘불법사찰 의혹’까지 추가되는 심각한 국면이 연출되고 말았다.

정 의원이 제기한 노 전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가 비밀대화록의 존재 자체를 공식 부인했음에도 다수의 정부 관계자와 여권 관계자들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직접 봤다며 동조하는 주장을 내놓았다. 심지어 청와대에서도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발언까지 나올 정도였는데 문제는 그 자체가 심각한 불법행위라는 사실이다.

정상회담기록을 포함한 전직대통령관련 기록은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중앙기록물관리기관에 보관되며 통상 최대 15년간(사적기록은 30년간) 열람조차 금지되도록 하고 있으며, 비밀보호 기간 내에 이를 열람하려면 헌법 개정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이 경우에도 공개수준은 최소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법은 특별법적 지위를 가져 다른 법률에 따른 자료제출의 요구대상도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직 대통령 및 정부 관계자가 전직대통령의 기록을 법적 절차 없이 열람했다면 그 행위 자체가 불법인 것은 물론 전임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현 정부의 책임추궁을 금지하려는 법 취지에도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점에서 비밀대화록 논란은 이제 현 정권의 전 정권에 대한 불법사찰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큰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직시한 민주당 박 원내대표가 새누리당을 향해 국정조사를 수용하겠다고 역공을 가한 것이다. 새누리당 이 원내대표나 정 의원이 의도했던 바는 국정조사를 할 수만 있다면 노 전 정권의 종북행위 전체를 걸고 넘어지면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민주당이 비밀 단독회담이 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비밀 대화록이 만들어졌으며, 그 내용을 정 의원이 어떻게 입수했느냐, 혹시 북한과 내통한 것은 아니냐는 역색깔론을 들고 나오면서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거부할 경우에는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국정조사에 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며 재차 공격할 수 있는 꽃놀이 패 쯤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북풍설에 기초한 색깔논쟁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는데, 민주당이 이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맞받아 친 것이다. 박 후보 캠프가 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들고 나온 비밀대화록의 내용 공개 요구에 (친박계로 생각되는) 현 정부의 관계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호응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청와대를 비롯한 현 정부 관계자들이 전직대통령의 기록에 불법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드러나게 된 것을 물고 늘어지니 답이 궁해질 게 뻔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언급은 물론 확인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전직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해서는 법률로써 철저히 보호된다는 점은 알고 있다”고 말하며 한 발 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같았다.

박 후보 캠프는 더욱 비참한 꼴을 당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문제를 제기한 정 의원 자신이 2007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의 기초가 된 ‘예문춘추관법안’을 대표발의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당시 법안은 대통령 퇴임 후 각각 5년, 10년, 30년, 50년이 되는 해에 청와대 회의로 대통령기록물의 공개범위와 대상을 정하도록 했으며, 퇴임 후 100년이 되면 국가안위와 관계된 부분을 제외한 일체의 기록물을 공개하는 내용이다.

이후 정 의원은 자신의 안이 정부입법으로 마련된 현행법령의 기초가 된 것에 고무된 나머지 “특정 대통령을 겨냥해 책임을 추궁하기 보다는, 역사에 기록을 남김으로써 발언의 공공재적 성격을 명확히 하고 선정을 강제하자는 것”이라고 의기양양했었는데 불과 5년 여 만에 자신이 스스로 했던 발언을 어긴 셈이 됐다. 그것도 이제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더럽게 여겨지는 색깔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로써 새누리당의 공세가 근거 없는 색깔논쟁이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으며, 최소한의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으로서의 기본소명도 망각한 채 정 의원이나 이 원내대표의 발언을 앵무새처럼 되 뇌이며 색깔론을 부추김으로써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공신력까지 바닥날 지경이 돼 버린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의 꼴도 말이 아니게 돼 버렸으니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두 바퀴 위에서 대망을 꿈꾸던 박 후보에게도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친박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대권도 없다는 비판을 받아온 박 후보에게 충고하고자 하는 것은 친박은 단지 박정희나 박 후보 자신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 색깔론을 애용하는 것도 친박계의 습성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울러 차제에 문 후보 역시 박 후보처럼 친노 프레임을 벗어날 용기가 없다면 대권을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문 후보 캠프로서는 새누리당이 처음 비밀 대화록을 이용한 노 전 정권의 NLL포기와 보다 광범위한 종북행위 의혹까지 제기할 때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에 충분히 그랬을 개연성도 있었고, 친노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면 대권도 없다는 그 많은 충고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10.4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문 후보 자신의 행보와 연결될 때 치명적일 수 있는 문제제기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기회에 비밀 대화록이 있다 한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자신감을 갖고 대선에 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고 싶다. 주적개념이 불확실한 마당에 특전사 전투복만 입고 다닌다고 영토수호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함으로써, 그놈의 특전사 군복은 누구를 상대하기 위한 군복이란 말이냐는 비아냥거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문 후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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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일  solbeey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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