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일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정부당국도 없다면 북한에서 입수했다는 얘긴데…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2007년 10월3일 오후 3시 백화원초대소에서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단독회담 내용을 녹취한 통전부가 비밀합의 사항이라며 녹취된 대화록을 남측 비선 라인과 공유했다고 주장하면서 비밀 대화록의 실체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정 의원는 대화록에는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북방한계선)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한 구두 약속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재단 측은 시종일관 "단독회담은 없었고, 당연히 '비밀합의사항'을 받은 것도 없다"고 반박한 뒤 “(당시) 단독회담은 없었고 당연히 '비밀합의 사항'을 받은 것도 없다"고 반박하면서 “정 의원은 면책특권 버리고 ‘비밀 대화록’ 주장을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통일부 역시 "관련 대화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9일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는 "정문헌 의원이 주장한 대화록을 통일부는 보관한 적이 없으며 현재 보관하고 있는 것도 없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비공개 대화록을 통일부가 아닌 다른 정부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당시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분들의 증언도 있고, 노무현 재단 측에서도 언급했지 않았냐"고 말했다.

당시 공식수행원단이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 등도 10일 오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 의원이 주장한 '남북정상 비공개 녹취록의 존재와 노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 등을 반박했다.

그러나 당시 수행원이나 노무현 재단, 그리고 심지어는 현 정부의 관계자까지 나서서 비밀 대화록의 존재를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새누리당까지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논란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며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나선 새누리당은 NLL문제에 한술 더 떠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전반도 함께 조사하자며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10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영토주권 포기 등 대북 게이트에 관련한 국정조사에 민주당이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10ㆍ4 공동선언 관련 비공식 녹취록 존재 여부뿐만 아니라 NLL 관련 발언 내용, 북한의 입장을 크게 대변한 문제, 주한미군 철수 문제, 대규모 북한 지원 등 남북한 전반에 관한 내용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조사 범위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또 "(당시 청와대에 있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당시 비서실장으로 녹취록 존재를 인지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지금은 어떤 입장인지 밝힐 것을 요구한다"며 "평소 10ㆍ4 선언의 적극 이행을 수차례 반복했는데, 녹취록에 있는 식의 약속도 이행할 생각인지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최근 새누리당 박 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빠진 것은 대통합을 내세우면서도 캠프 내의 소통 하나 못 시키는 자가당착 때문이었고 그 내분의 한 당사자가 이한구 원내대표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번에도 역시 이 대표가 한 건 올린 것 같다. 왜냐하면 정 의원이 제기한 대화록의 내용이 사실 노 전 대통령이 했음직한 말들로 이뤄진 것 같기는 하다. 또 이 대표 말대로 민주당의 문 후보가 최근에도 10ㆍ4 선언의 적극 이행을 강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당시 수행했던 전직 주요 각료들이나 노무현 재단, 그리고 현 정부의 당국자까지 없다는 비밀 대화록을 들이대며 그 내용이 뭐라는 둥 카더라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색깔논쟁을 통해 세상물정 모르는 일부 국민들이나 무조건 지지층의 맹목적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특히 그런 점에서 “비밀 대화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과정이 선거 때마다 등장한 북풍(北風) 공작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노무현 재단이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되더라도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정 의원이 만약 비밀 녹취록을 봤다면 그 자체가 위법이라는 이재정 전 장관의 주장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정상회담은 공식적으로 합의해서 양측이 함께 녹음한다. 그 녹취록은 누구도 볼 수 없다. 나도 그 녹취록을 못 봤다"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보복을 막으려고 후임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의 녹취록을 볼 수 없게 돼 있다. 그게 대통령 기록관의 원칙"이라며 "정문헌 의원이 녹취록을 봤다는 그런 거짓말을 왜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한 이 전 장관의 말은 그대로 사실관계에 입각한 주장일 것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국방위원장의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발언을 담은 ‘면담록’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 각각 1부씩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7년 당시 조명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비서관이 10월 3일 두 번에 걸친 정상회담 대화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기록했고, 이후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 등의 감수를 거쳐 최종 면담록으로 정리됐는데, 1급 기밀문서로 분류된 이 면담록은 노무현 정부 내에서도 일부 인사만이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 것은 비밀대화록은 있지도 않다고 하고, 공식 면담록은 당연히 보지도 못했을 정 의원이 확신범처럼 주장하는 비밀대화록의 내용은 어떻게 된 것일까? 만에 하나 정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북한의 통전부로부터 받은 내용이라는 얘기니 북풍설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북한과 접촉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있지도 않은 비밀대화록을 근거로 그것도 NLL뿐 아니라 다른 종북적 행위까지 몰아서 국정감사를 하자는 억지는 심각한 정신병적 작태가 되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이른바 보수운운하면서 수구적인 색깔논쟁에 재미를 붙인 일부 언론들의 불난 집에 부채질 이상의 기름 붙기를 하고 있는 웃지 못 할 작태일 것이다. 지난 8일 정 의원의 국감 질의가 있자마자 조선일보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盧 ＂NLL, 영토선 아니다＂… 재임중 軍과 계속 갈등>, <＂NLL, 땅따먹기 하듯＂ 발언> <＂盧대통령, 김정일 만나 NLL 주장 않겠다고 말해＂> 등과 같은 제하의 연속 보도를 통해, 그리고 심지어는 TV조선까지 동원하여 <노무현, 김정일에 NLL 주장 않겠다…북핵 보유, 내가 대변인>이라는 아주 적나라한 제하의 보도를 하면서 장단을 맞추었다.

중앙일보 역시 <NLL 양보, 대북 퍼주기 …>라는 제하의 보도와 <노 전 대통령 NLL 발언 반드시 규명돼야>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서, 그리고 문화일보도 <NLL 포기 의혹 등 ‘從北 과거사’ 규명 절실하다>는 사설을 통해 정 의원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일부 되지 못한 보수언론들이 북풍을 색깔논쟁으로 바꿔버렸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인터넷언론인 뉴데일리와 독립신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각각 <안철수, NLL 양보하면 서울 빼앗긴다! 알고 있나?>, <안철수, NLL에 대해 답하라!NLL 무너지면 수도 서울 무너진다!>는 등 누가 봐도 이번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애꿎은 안철수 후보에까지 선홍색 덧칠을 해댔다.

정 의원으로부터 시작된 북풍설이 이 원내대표라는 수구꼴통 정치인을 거치면서 색깔논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을 응원하는 짝퉁 보수언론이 바라는 바가 또한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이쯤 되면 민주당에서 국정감사 주장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비밀대화록이 있는지 정부의 각 부처에 제출을 요구하되 그에 앞서 정 의원이 비밀대화록의 내용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혹여 북한과의 내통이 없었는지 그 경위를 밝히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리고 왜 이 원내대표는 뜬금없이 NLL 얘기에서 광범위한 노무현 정권의 종북행위까지를 국정감사 범위로 삼겠다고 했는지, 정 의원의 주장을 빌미로 종북논쟁을 일으키기 위한 고도의 음모가 새누리당 고위층이나 박 후보 캠프에서 전략적으로 논의된 것은 아닌지 그것을 파헤치는 국정감사가 돼야 할 것이다.

왜 정치학자들과 평론가들이 박근혜 후보의 문제점은 친박 프레임에서 사로잡힌 것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친박 프레임은 바로 일단 시작한 마녀사냥은 끝을 봐야 한다는 종북 알레르기에 다름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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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일  solbeey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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