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과거 분단 독일은 우리와 너무 닮았다. 오늘이 한글날인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날이다. 동독은 1961년 계속되는 서독으로의 탈출을 막기 위하여 철조망을 설치하고 경비병, 경찰, 민병대와 장갑차가 배치되었다. 현대판 엑서더스가 28 년간 지속되면서 높이 1.8 m, 두께 0.4m , 길이 44.8 km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바뀌었지만 최후의 경비병이 서독의 품에 안기는 1990년 10월 3일, 우리의 개천절 날 독일은 통일 되었다.

그 중에서 냉전시기에 전 세계의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한 사진기사는 완전무장한 동독군인 ‘콘라드 슈만’이 국경수비 중 서베를린으로 철조망을 뛰어 넘는 ‘도약의 순간’이었다. 1961년 8월 15일, 광복절 날, 그의 나이 19세였다.

지난 2일 서부전선에서 18세의 북한 전사가 상관 2 명을 살해하고 마라톤 코스보다 길었을 500 m를 죽어라 달렸다. 개성공단 출입인원과 차량을 통제하는 초소에서 그는 무엇을 느꼈기에 모두를 포기하고 ‘빈털터리 자유’를 찾아 꽁지 빠지게 달렸나? 2010년 3월 이후 반가운 소식이다.

분명 서부전선 이상 있다. 여기만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동부전선에서도 탈(脫)이 난 모양이다. 북으로는 민간인, 남쪽으로는 군인, 좌우 해안으로는 어부들의 탈출 러쉬가 시작되었다. 이래저래 임수경의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닐 텐데 이를 어째? 나이가 어려 아직 술집이나 까페 출입은 안 할 테니 여의도 지날 때는 각별히 테러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동독은 인구 1700만 명의 20 %인 350만 명이 탈출하였다. 맨 몸으로 탈출하기도 하였지만 땅굴, 장갑차, 잠수정, 수중스쿠터에 심지어 열기구까지 이용하였다. 북한의 주민은 탈출기구가 열악하다. 북한에 대북 선전물을 날려 보낼 때 대형 풍선이나 열기구를 보낼 수 있다면 멋진 ‘쇼생크 탈출’이 될 터인데... 북한군은 탈출 북한군을 송환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동독이 그랬다. 자국민(?)을 돌려 보내라고. 서독은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동독 탈출민은 우리 독일인이다. 송환 요구는 내정간섭이다.”(1989.9.14 의회연설)

동독처럼 탈출이 봇물 터지듯 해야 한다. 탈출이 통일을 가져왔다. 원인은 일관성 있는 정책의 추진이다.
서독은 최초 탈출을 무시 또는 방관하다가 적극 조장, 수용하는 단계적 정책을 실천하였다.
콜 수상(기민당)은 좌파적인 사민당의 ‘접근을 통한 변화’는 ‘구걸을 통한 변화’일 뿐이라고 비하하였다. 대동독지원에는 반드시 조건을 달았다. ‘근본적 변화’라는 단서다. 마르크가 가는 곳에는 인권개선과 연계시켰다.

83년의 대규모 차관 제공 시에도 정치범 석방, 서독방문자유화, 국경 초소 자동 기관총 제거 등을 관철시켰고 동독의 한계를 들어 낼 즈음에는 ‘근본적 개혁 ’없이는 경제적, 물적 지원이나 군사협력은 불가능하였다. 작은 변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하되 철저히 ‘힘의 우위정책’을 견지하여 공산정권을 붕괴시켰다.

정상회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4 차례의 회담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밀고 나가는 뚝심과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독일은 통일이 가능하였다. 결정적 키는 동독 지도자의 교체였다. 수상이 바뀌고 의회가 새로 구성되고 언론이 변화를 거들었다. 북한의 현 지도자와의 대화는 시간 낭비다.

북한은 지금 경제적 파산상태다. 화폐개혁, 경제개혁은 더 큰 화를 불렀다. 물가가 치솟고 개인에게 잉여 수익을 보장한다고 하나 실제 남은 게 없다. 평양도 2010년 절반으로 면적을 줄이고 인구도 300 만에서 250 만으로 줄였다. 특권층 대우를 해줄 재정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배급제를 없애고 자급제를 실시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가 되고 말았다. 군부가 가장 큰 피해자다. 불법 무기수출, 마약거래, 위폐 조작 등 야쿠자 조직 같은 국제 범죄 조직으로 활동하다가 국제공조로 꼼짝달싹 못하게 된 지금 링겔을 꼽고 국제원조에 의탁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북한의 지하자원은 약 7000 조로 추산한다.(대한광업진흥공사2012년) 이를 야금야금 중국에 팔아 먹는다. (중국이 말하는 소위 ‘중조일치 전략’은 동북3성과 북한을 하나로 묶어 개발하는 전략이 있지만) 경제난으로 전국이 오염화, 황폐화되고 문맹으로 노동의 질이 떨어지고 신체 역량도 영양부족으로 부실하다. 북한군은 지하자원 개발권마저 장성택에게 빼앗겨 자급자족도 어렵다. 군부의 동요 또는 탈출이 예상되는 근거다.

그래도 구호물자에 연명하는 북한당국이 대외적으로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은 이웃 중국과 남한 내 동조세력인 종북 주의자들의 후원 때문이다. 독일이 통일 되기 직전의 처참한 동독 경제보다 북한이 훨씬 뒤떨어짐에도 버티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조지훈의 지조론(志操論)에서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권력에 팔리는 행색은 딱하기 짝이 없다”고 한 말을 임수경에게 하고 싶다. 광해군 때 폭군을 피해 많은 선비가 벼슬을 버렸다. 실직은 곧 가난이다. 그러나 “가난이 죄”라고 하는 한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선비는 그를 멀리 하였다. 왜냐하면 가난은 변절을 부추기므로. 선비는 벼슬을 찾아 나선 친구가 역모에 휘말려 사형을 당하게 되자 “소인기(少忍飢), 소인기(少忍飢)”하였다 한다.(조금만 배고픔을 참지, 하는 탄식의 소리)

그렇다고 배곯고는 못 참아 죽음도 마다않고 내려 온 어린 병사에게 “소인기”하면서 변절자의 딱지를 붙여 준다는 것도 지조 있는 교양인의 태도가 아니다. 변절은 절개를 바꾸는 것이지만 개과천선(改過遷善)은 변절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을 보려면 그 후반부를 보라고 하였다. 임수경에게 후반부를 기대한다면 변절이 개과천선으로 바뀔 여지가 있다는 말씀? 그러고 보니, 아직 젊은 김정은이를 기대해도 될까요?

독일 장벽이 무너지는 날, 마지막 경비병이 장벽을 넘으면서 독일의 통일이 닥아 왔듯이 마지막 북한 초소병이 우리 품으로 달려올 날이 가슴 벅차게 기다려진다. 그가 근본없는 변절자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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