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일촉즉발의 중일 대치상황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평화의 메시지는 최고의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 그 자체다. 노벨 평화상을 받을 절호의 찬스다. 전범국가 일본에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 등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1,270명의 지식인이 호소문을 발표했다. 한국, 중국이 가장 약하고 외교적 자기주장 할 수 없을 때 독도, 센카쿠를 편입했다며 “일본인은 독도가 한국민에게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시작이고 상징이라는 점을 이해하라”고 주장했다 하니 가히 지식인 수준의 지적이다. 하나는 청일 전쟁, 하나는 러일 전쟁 중에 무력으로 빼앗은 역사의 포인트를 콕 찍어 줘 고마운데 조영남이처럼 맞아 죽기를 각오하고 자기 왕에게 대든 꼴이니 괜히 안위가 걱정되기도 하다.
우경화의 격랑 속에 당랑거철(螳螂拒轍) 신세인 이들이 과연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 있을까?

일본은 관동대지진(1923.9.1) 당시 6천명이상 만 명 정도의 한국인을 학살하였다. 이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행동을 알아보기 위하여 잡지나 신문에 기고문, 체험기, 수기, 일지 등 360 명의 글 2천여 점을 분석한 결과 무참한 학살에 편승해 이를 부추기거나 침묵을 지킨 지식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조선인 머리 부서져 나는 분노해 운다. ......이 무슨 참혹한 학살인가?” 하고 분개하였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유명한 <설국(雪國)>인지 ‘술국’인지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이후 줄기차게 이어진 지식인들의 망언은 웃기지도 않는다. 시바 료타로는 “일제가 조선에 판 것은 ‘수건과 술’뿐이다.”라 하고 유명 칼럼니스트인 이시가와 료이치는 한국의 ‘흥분 벽(癖)’을 탓했다. 철도 건설 해주고, 신교육을 시켰고, 창씨개명도 자발적으로 했다 하고, 강제 위안부는 돈을 받고 한 일이고, 일본군이 강제로 시킨 증거 가져오라고 지금껏 억지다. 다 ‘지성인 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일본인들도 이해 못하는 부분이 민족개념이라고 한다. 메이지 유신에서 기초를 다지고 청일, 러일 전쟁을 겪으며 제국의 열강에 오르고 미국, 영국과 어깨를 겨루는 위치에서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도도한 일본 역사에 자연스럽게 한국은 소거(消去)되었다.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15년 전쟁에서 우월적 차별화를 민족에 각인시켜 패전이 아닌 종전으로, 민족의식은 일본 왕실처럼 굳건한 보루가 되었다. 패전으로 전범이 사라지고 국가의 정체가 뒤바뀐 독일은 부담 없이 책임을 물어야했지만 일본은 결코 지지 않는 나라로서의 위상이 군부, 재계 , 정계 어디에도 보전되어 있었다. 미국의 철저한 보호아래. 전쟁에 대한 반성은 어림없다. 그러니 한국은 안중에 없다.

마냥 이런 부류의 단체 행동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일본 지식인들의 집단행동 사이클은 10년 주기다. 1990 년 5월에도 “대한사죄문 결의안”을 국회가 채택하도록 지식인 58 명이 성명서를 발표 했는데 이것은 1989년 ‘쇼와(昭和)’ 일왕이 사망에서 비롯되었다. 전범인 그가 죽기 전 1억 전사(戰士)의 4분의 1인 한국인에게 일본인으로 죽게 하고 부려먹은 죄를 사과하지 않은 데서 시민단체가 대신하여 국가에 사죄를 촉구하자고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우연일지는 모르나 여기에 최초로 일본군 강제 위안부 공개 증언, 노태우 대통령 방일에서 일왕의 ‘통석(痛惜)의 념(念)’, 일본 총리 방한에 맞추어 수요 집회가 1992 년 1월에 시작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더니 고노담화(93) 무라야마 담화(95)가 나왔다. 여야의 밀고 당기는 우여곡절 속에 ‘잘못된 전쟁’, ‘침략전쟁’, ‘식민지배와 아시아의 고통,’ ‘반성의 념(念)’이라는 최소한의 표현에 도달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분명 일본 내 지식인들이 불을 지피고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 갔음을 인정해야 한다. 시민단체를 이끈 ‘와다 하루키(和田 春樹)’ 도쿄대 명예 교수의 말대로 “가까스로 일본 우익에 이겼으나 궁색한 승리였고 우익이 힘이 그토록 강할 줄은 몰랐고 우리는 공포를 느꼈다”고 할 정도였다.

2010년에 ‘한일지식인 공동성명’이 나왔다. 1910년의 한일 병합을 무효화한 것이다.
이번 오에 겐자부로 등의 지식인 선언은 9월13일 독도전문가 ‘나이토’ 교수의 양심선언과는 다르다. 평화헌법 9조를 지키자는 모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이 싸움에 말려들면 일본백성이 위험하니 헌법을 개정하지 못하게 막아 보자는 것인데 단도직입적으로 영토분쟁을 해결하는 방안이 고작 ‘영토 주변 자원의 공동이용’이다. 이것이 애매하다.

주기 상으로 2 년 만에 시민단체 호소문이 나왔다는 것은 뭔가 다급해서다. 먼저 수교 40 주년을 준비하는 일본이 놀라 자빠졌다. 한국의 대통령이 독도방문하고 일왕 사과발언에 기세등등하던 그들이 ‘다오위다오’ (일본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의 반응에 기절초풍했다.

냉정하던 일본이 이성을 잃고 당황하기 시작하더니 일왕이 한국을 방문해서 사과할 용의가 있다고 잡지사를 통해 귀뜸 했다. 막후정치 좋아 하던 그들에게 재계, 정계 나설 사람 없으니 일왕이라도 나서서 진화해 보려던 차에 중국의 굴기(崛起)가 하늘을 치솟았다. 나설 사람은 지식인들 , 변호사 학자, 영혼의 거래자(?), 즉 문인들이다

주권을 분할하자는 것이 아니고 영토주변의 자원을 공동 개발하고 공동 이용하여 분배하자는 것이라니? 언뜻 보면 민간 수준의 ‘성의와 신의를 중시하는 미래 지향적 대화의 틀을 제안한 것’이라고 받아 드릴 수 있겠지만 그 “애매한 태도”가 문제다.

주권은 고유한 것이다. 상대의 영토로 인정하였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대뜸, 나누자고 안할 테니 공동으로 관리하고 분배하자는 것은 독도의 경우처럼 공동수역 만들어 놓고 디딤돌 삼아 집어 삼키려는 수작이다. 이것이 소위 지식인들이 짜낸 아이디어인가? 한국 지식인들까지 부화뇌동 했단 말인가? 대마도를 공동개발, 공동 분배하자면 하겠는가? 물론 한국의 다음 전략적 수순이 되어야 할 문제겠지만...

답은 간단하다. 분쟁을 해결하려면 물건을 빼앗은 도둑놈이 주인에게 돌려주면 될 일인데, 회견장에 웬 ‘호혜’, ‘상호존중’, ‘대화’라는 쪽지를 들고 나와서 뭐하자 짓인가? 이 팻말은 일본지식인이 들 팻말이 아니라 한국, 중국 지식인들이 할 소리다. 일본인들이 보여 줄 팻말에는 ‘사죄’, ‘용서’, ‘반성’이라는 글귀가 씌어져야 한다. 살려달라고 애원해야한다.

때린 놈이 ‘비폭력’, ‘상호존중’, ‘평화’를 내세우면 앞뒤가 맞지 않는 짓이다. 왕을 대신해서 매 맞겠다고 나선 태도치고는 생뚱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통 한국 언론은 “일본에 저런 구석이 있구나, 맞아, 우리도 저렇게 해야 지식인 소리 듣지, 역시 일본인은 일등국민이야, 저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하면서 한. 중 지식인사회에서도 공감과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호들갑 떨고 있다. 저들의 계략대로.

타이밍도 또한 문제다. 독도와의 분쟁에선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한국 지식인들은 우리 대통령의 ‘역사적 독도방문’에 대하여 일본 왕을 건드렸으니 저들이 가만있겠느냐는 둥, 독도는 몰라도 오지도 않을 왕을 건드렸다는 둥 용기를 내 세워 치하하기는 커녕, 일본인의 입장에서 일왕에 대한 무례한 행동이라고 나무랐다. 일본 내의 반응은 금방이라도 독도에 쳐들어 올 태세였다.
그러나 , 이를 진정시키려고 일본 지식인이 나서서 호소문을 낭독하는 일은 없었다.
중국인들이 물 끓듯이 일어서서 일제차를 부수고 전시장, 공장을 불 지르자 저들은 나섰다. 일본을 건지기 위한 구사대처럼.

지식인 1,270명은 일본 인구의 십만 분의 1이다. 저들의 역할은 한국과 중국을 진정 시키기 위하여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다. 관심을 딴 곳으로 분산시키려는 ‘투우사의 망토’에 불과하다. 저들이 정녕 식견과 양심이 있다면 한국과 중국을 향하여 호소할 것이 아니라 일왕과 정치인, 우경 세력들에게 사죄케 하고 덜떨어진 민족의식을 개조시켜야 할 것이다. 세계 평화인으로서 거듭나도록! 천여 명으로 시작하여 ‘싸이’의 인기처럼 국내외에서 2,3억 이상의 호응을 받는다면 전 세계인들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다. 지금처럼 각 국에서 비난받는 처지가 아닌 도덕적 국가로서 존경할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무례한 사람에게 더 이상 예를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다. 일본에 더 이상 기대하지 말란 소린가 보다. 다만 이번 액션이 ‘악어의 눈물’이 아니길 바란다.
오에 겐자부로(大江 健三郞)는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피력한 “애매한 일본”을 그냥 놔두고 주변국들에게 ‘상호존중’만을 외칠 것인가?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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