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일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탈아입구(脫亞入區)’ 기치 아래 침몰했던 역사를 기억하라!

일본의 군국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근성을 잘 표현하는 두 단어가 바로 ‘탈아입구(脫亞入區)’와 ‘대동아공영’일 것이다. ‘탈아입구’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는 뜻이고, ‘대동아공영’이란 아시아인들이 한데 뭉쳐 서로 잘 살자는 뜻이다.

정반대의 말인 것 같지만 일본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 두 표어를 동시에 쓸 줄 알았고, 한꺼번에 쓰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대동아공영’의 기치를 내세운 채 그들은 아시아를 짓밟았고, ‘탈아입구’를 내세우면서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역사가 보여주듯 두 표어 모두 ‘다테마’였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혼네’는 우리가 추측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일본이 독도를 향해 보여주고 있는 흑심이 바로 그 일본적 혼네일 것이다. 그저 침략질을 한 것 말고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남의 땅 독도를 제 땅이라고 우기다가, 제 맘대로 침범했다는 것과 오랫동안 우긴 것만을 근거로 분쟁지역 운운하면서 ICJ에 제소할 테니 받아 달라고 하고, 그러다가 무시당하자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광고질을 하는가 하면 급기야 유엔에 들고 가는 패악질까지 했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그렇게 세계를 향해 나발을 불어댔음에도 스페인 유력일간지 ‘엘문도’는 독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독도 갈등은 일본의 정당화될 수 없는 팽창주의 욕구 때문"이라고 질타했고 프랑스 정통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도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일본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엘 문도는 지난 25일자 인터넷판에서 일본 정부가 수개월 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인 이후 독도 영유권 문제로 새로운 갈등의 근원을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새로운 팽창주의에 맞서 분명하고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지브롤터 영유권을 놓고 영국에 대응하는 스페인의 현 정부와 직전 정부의 자세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엘 문도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17-19세기 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문서에도 상당히 많이 적시돼 있는 등 역사적으로도 명백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면서서 일본 정부가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문제 삼아 새로운 팽창주의를 추구하면서 대외 관계에서 새로운 전선을 만들려는 동기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틀 뒤인 27일에는 프랑스 정통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가 인터넷판 기사에서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 뒤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독도 문제를 취급하는 일본의 태도를 질타했다. 렉스프레스 과거 독일과 프랑스와의 관계를 예로 들면서 만일 4년간 프랑스를 점령했던 독일이 지금까지 프랑스 영토인 웨상(Ouessant) 섬이나 일드레(Ile-de-Re) 섬에 대한 합병을 시도한다면 프랑스가 받아들일 수 없듯이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지만 독도 분쟁에는 더 깊숙한 문제가 감춰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렉스프레스는 한국인들에게 일본 식민통치의 상흔은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면서 강제 징용과 위안부 등에 대한 일부 경제적 보상이 이뤄지고 천황을 포함한 일본이 깊은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독일의 홀로코스트와는 달리 일본은 한국인들에 저지른 과오에 완전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렉스프레스는 독도의 경제적·전략적인 이익을 잘 알고 있는 일본은 기회를 잡기 위해 법적인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정권에 대한) 일본 국내의 여론이 부정적이면 한국에 대해 도발하면서 한 발짝 물러나고 있다는 점을 고 지적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신뢰를 잃은 일본 정부는 은밀히 민족주의적인 긴장상태를 선동하는 것이 절대 유리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렉스프레스는 또 독도문제 외에도 위안부 모욕, 독도가 있는 동해를 일본해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 신사참배 등 다른 도발 수단을 일본이 갖고 있다는 점을 분석하고,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 없이 유럽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일본과 주변국가 간 화해가 없는 상태에서 동북아지역의 통합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느냐, 독도가 일본에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본식 탈아입구가 무엇인지를 어느새 알았는지 스페인 유력일간지에 이어 프랑스 정통 시사주간지까지 일본에 대한 강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으니 탈아입구도 날 샌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일본식 표어인 ‘대동아공영’은 어찌 되었는가?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 독도를 다께시마라고 우기며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이에 제 땅이던 센카쿠열도는 댜오위다오라는 남의 땅이 되어가고 있었고 제 땅이라고 우기던 또 다른 땅 쿠릴열도는 돌아올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 듯하다.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 운운하면서 되지 못한 탐욕으로 미친개처럼 침을 흘리는 사이 중국은, 그리고 마침내 대만까지 센카쿠 열도를 지워버린 채 거기 댜오위다오를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중일 3국이 그렇게 이전투구를 하는 사이에 러시아는 쿠릴열도를 확실한 자기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지나가는 묘령의 여인에 눈길 두다 제 마누라 집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꼴이다. 분쟁 상태의 영토문제에 있어서 역사적 정당성 보다 더 우선하여 적용되는 것이 이른바 실효적 지배론이라는 사실만 일본이 망각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센카쿠열도를 댜오위다오로 분칠하는 것을 최소한 지금처럼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제 땅인 독도에 입도하든 말든 공연히 제 땅으로 알고 있는 센카쿠 열도를 도쿄도가 사들이니 국유화를 하니 하는 그런 설레발을 떨지만 않았어도 중국에 저처럼 된통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러시아가 소리 소문 없이 쿠릴열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소탐대실한 결과 정치적으로 뚜렷한 소득은 없이 한국에서는 반일감정만 부추겨 놓았고, 중국에서는 불매운동과 그보다 더 심한 일본기업에 대한 테러까지 당하는 등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동아시아의 우호관계가 뿌리째 뽑힐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동아공영은 공염불이 된 셈이다.

원래 대동아공영의 기치 아래 아시아를 우습게 알았던 그들인지라 한국의 반일감정쯤이야 애초부터 우습게 여겼을 수도 있겠지만 센카쿠열도를 놓고 중국에 당한 치욕과 분쟁지역화 해버린 센카쿠열도의 현실, 그리고 한중유착에다 아시아권의 유일한 친일국가 대만까지 들이대는 이지메 상황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아마 멘붕 그 자체일 것이다.

이쯤 되자 일본네에서도 지식인과 시민단체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와 모토시마 히토시(本島等) 전 나가사키 시장 등 일본 저명인사와 '허용하지 말라! 헌법개악·시민연락회'(대표 다카다 겐<高田健>) 등 시민단체는 28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 약 800명의 서명이 담긴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미리 공개한 호소문에서 "일본은 한국, 중국이 가장 약하고 외교적 주장을 할 수 없을 때 독도와 센카쿠 열도를 편입했다"며 "일본인은 독도가 한국 국민에 있어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시작이고 상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침략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중·일 간 센카쿠 갈등에 대해서도 "국교정상화 40주년이라는 우호 분위기를 분쟁으로 바꾼 원인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의 센카쿠 구입 선언과 이를 계기로 한 일본 정부의 국유화"라며 "중국이 이를 '영토 문제 보류'라는 암묵적인 합의를 어긴 도발이라고 여겨도 이상하지 않다. 이시하라 도지사의 행동에 대한 일본 내 비판이 약했다"고 반성했다.

지식인들은 또 "'(센카쿠 열도에)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구적인 인식을 바로잡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인접국과 갈등을 구실로 오스프리(미군 수송기)를 배치하는 등 오키나와의 부담을 증가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의 대화 제안을 "아주 냉정하고 합리적"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섬 주변 어업자원 등의 공동 개발과 공동 이용을 촉구했다.

지금도 일본 정부는 독도를 겨냥해 신형전투기를 전진 배치하고, 댜오위다오와 독도 등 영유권 분쟁을 빚는 해역 주변을 인공위성으로 감시하겠다며 분쟁을 조장하고 있지만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아시아인들의 분노만 산 채 스스로 이지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이제 세계는 20세기 초의 일본식 ‘탈아입구’나 ‘대동아공영’의 기치를 볼 때와 다른 매의 눈을 가졌다. 적어도 일본식 다테마와 혼네 정도는 알기 때문에 스스로 무덤 파는 짓을 그만 거두는 것이 일본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최용일  solbeey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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