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임,시민활동가]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야지”

1960년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사오입개헌이라는 불신과 장면이라는 야당 부통령은 자유당의 걸림돌이었다. 미국의 원조가 57년부터 줄어들어 경제성장률이 4.8%에서 2.5%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국민들의 마음속 영원한 대통령이었다.
이기붕은 부통령자리를 반드시 차지하겠다고 계획했다. 이승만의 나이 만으로 85세. 만약 변고가 발생하는 날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 후보와 이기붕 부통령 후보로 1년 전부터 지명하고 있었다.
민주당은 신파와 구파로 분열돼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1959년 11월 26일 대통령 후보로 ‘구파 조병옥’, 부통령 후보로 ‘신파 장면’을 선출했다.
그런데 1960년 2월 15일 조병옥 후보가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갔다가 워싱턴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정말 희한한 일이 연거푸 발생한 것이다. 지난 번 56년 선거에서도 대통령 후보가 돌연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이승만이 저지른 테러라는 억측까지 나돌았다.

이 일로 2월 28일, 또 대구에서 시위가 맨 먼저 발생했다. 민주당의 유세장에 고등학생들을 참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등교를 시켰다. 이에 항의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났던 것이다.

3월 15일 선거일에 이승만은 960만 표, 이기붕은 180만 표를 받은 장면을 누르고 830만 표 얻어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통령 득표율을 지나치게 조작하여 95% 99%가 나올 판이었다. 득표율을 줄여 개표하도록 할 정도였다.

전국적으로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규탄시위가 잇달았다. 사망자가 26명 부상자가 86명에 이르렀다.
그런 가운데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 위로 떠올랐다.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최루탄 사망이었다. 이승만과 이기붕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4월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에 가담했고, 4월 19일에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다시 선거하자!”

구호를 외치며 경무대로 달려갔다. 시위대는 경찰의 발포로 1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엄청난 사태로 접어들었다.
이승만은 서울대학 부속병원으로 4.19부상학생들을 찾아갔다.
이승만을 보자마자 다친 학생들은 “할아버지!”하며 울었다. 이승만도 따라 울며 말했다.

“학생들이 왜 이렇게 됐어? 부정 선거를 왜 해? 부정을 보고도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야. 나도 젊었을 때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시위에 앞장섰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해.”

현황을 대충 파악한 이승만이 이기붕을 크게 질책하자 그제야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다. 그런데도 성난 민심은 멈출 줄 몰랐다. 다음 날 25일은 미국의 뜻에 따라 대학교수단 데모가 벌어졌다.

26일 아침 동대문운동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가 2~3만 명 정도 되었다. 고려대학을 휴학한 학생 유일라는 질서를 잡고 범국민혁명으로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학생 교수 시민대표를 선출했다. 대표 다섯 명과 같이 참여할 사람을 합쳐 30여명은 육군본부의 도움으로 군용트럭과 지프차에 나눠 타고 ‘하야 권고 대표단’이라는 플래카드를 차에 붙이고서 경무대로 달렸다.
9시 30분경, 입구에는 계엄사령관 송요찬 장군이 나와 있었다.
다 들어갈 수 없어서 대표 다섯 명만 경무대로 들어갔다.

이승만은 애견 해피를 안고 나타났다. 박찬일 비서실장 곽영주 경호실장 허정 외무장관 김정렬 국방장관 그리고 대표단 다섯 명이 앉았다. 계엄사령관 송요찬만 뒷자리에 서 있었다. 모두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이승만이 먼저 입을 뗐다.

“자네들은 누군가 무슨 일로 온 건가?”

모두 입이 굳어버렸다. 그때 유일라가 말했다.

“국민으로서 각하를 뵈러 왔습니다.
“그래,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곳이지 잘 왔어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하러 왔는가?”

곽영주 경호실장이 위압적인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오히려 유일라는 용기를 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19일의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승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며칠 전에 다친 학생들 있는 병원에 나도 다녀왔어”

“부통령으로 당선된 이기붕 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후계자로 생각한 건 사실이야 그러나 민주법치국가에서 부정으로 당선되었다면 그건 안 되지”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던 학생 200여명이 죽었습니다.

깜짝 놀란 이승만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죽었단 말이냐!?”

모두 얼음이 되어 있었다.
이승만은 다시 물었다.

“누가 누구를 죽였단 말이냐?”

“경찰이 학생을 죽였습니다.

이승만은 망연자실했다
그때 이승만에게 하야를 권유한 미국 매카나기 대사가 황급히 들어와 면담을 요청하였다. 그는 어제 교수단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유일라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각하께서 하야하시는 길만이 나라를 구하는 일입니다”

정말 얼떨결에 나온 말이었다.
“어떻게 하라고?”

이승만은 되물었다.
이때 곽영주 실장이 귓속말로 “step down"이라 했다.

“하야라니 그러면 날더러 물러나라는 얘기야? 또 날더러 저 하와이나 외국으로 가서 살라고?”

이승만은 얼굴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안고 있던 해피도 놓쳐버렸다.
유일라는 더욱 단호하게 외쳤다.

“국민이 원합니다."

이승만은 잠시 생각하더니 체념한 듯 되뇌었다.

“국민이 원해?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야지. 이 나라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야지.”

“각하 정말 죄송합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은 유일라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유일라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또다시 용기를 냈다.

“바로 하야 성명을 발표해 주십시오.”

“알겠다. 잘 왔다. 젊은이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나도 젊었을 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많은 일을 했지. 이제 나가서 내가 하야한다고 말해도 되네. 가보게”

이승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국의 하야 압력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이승만이었다. 비로소 국민의 뜻을 감지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박찬일 비서실장을 불렀다.

“내 부를 터이니 받아쓰게.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냈으나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원한이 없다...공산주의에 대하여는 부단한 주의를 하라.”

매카나기 대사는 이승만에게 외쳤다.

“각하께서는 미국의 건국대통령 워싱턴과 같은 위대한 영웅이십니다!”

유일라 대표단이 경무대를 나온 시간은 1960년 4월 26일 오전 10시였다. 10분 후 10시 10분경 라디오에서는 이승만의 하야 성명이 흘러 나왔다.

1960년 4월 28일 프란체스카는 얼른 주방으로 내려가 이승만이 쓰던 수저와 식탁에서 읽던 성경과 반쯤 남은 차병을 핸드백에다 챙겨들었다.

이승만은 직접 국민과 만나보고 싶었다.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걸어서 가기를 원했지만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가던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눈물 흘렸다.

이기붕 일가는 이승만이 경무대 떠나던 날 새벽 36호 별관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대통령의 하야까지 불러온 자신의 부정선거를 감당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큰 아들 강석은 후손이 없던 이승만의 양자였다. 이승만은 강석이를 특별히 귀애했다. 그의 나이 24세, 남동생 강욱 21세, 아버지 이기붕 65세, 어머니 박마리아 55세였다. 육군소위였던 강석은 부모와 동생을 먼저 쏜 후, 젊은 생명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승만은 전쟁 때 일화가 떠올랐다. 대구 거리에서 강석과 강욱에게 줄 참외를 사며 덤으로 하나 더 달라고 하자 참외장수는 “할아버지 싸게 드렸는데 덤까지 가져가면 순사가 잡아가요”하며 이승만의 손에 든 참외를 뺏었던 일이다. 피난살이 행색이 남루하고 경호원도 없었던 이승만과 서울시장 이기붕을 알아볼 수 없었던 건 당연했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오면 항상 강석이 것을 남겨두라 했고, 강석이 현관에 들어서는 모습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여느 아버지처럼 기뻐하였으며, 목욕하는 강석이 등을 밀어주겠다고 문을 두드리며 장난치던 이승만이었다. 강석이 이승만의 건강까지도 빼앗아 간 듯 그의 몸과 마음이 다 무너져 내렸다.

지인과 친척들은 이화장에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자주 찾아왔다.
하루는 이승만과 프란체스카가 오후 산책을 마치고 정원의 벤치에 앉아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는데 이승만 큰누나의 손녀 을생이가 이승만이 좋아하는 튀각을 해가지고 왔다. 을생이는 트렌지스터 라디오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할아버지, 그 라디오 저 주세요.

이승만은 프란체스카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이 라디오는 할머니한테 물어봐야해”

프란체스카는 이승만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잘하지 않았던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란체스카는 이승만에게 필요한 라디오를 줄 수가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이승만은 매일 기도하고 정동교회에 나가 예배를 보며 정신적 충격을 다스렸다.
식전에는 한결같이 기도했다.

“우리가 먹는 이 음식을 우리 동포 모두에게 골고루 허락해 주시옵소서.

하루 한 끼에도 감사하며 머리 숙여 기도하는 이승만을 보며 프란체스카는 목이 메었다.
이승만은 여전히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틈나는 대로 정원의 나무들을 손질하고 창틀과 문짝들도 직접 연장을 가지고 손질했다.

몹시 충격이 컸을 이승만의 건강을 위해 의사는 하와이에 몇 주 휴양을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때마침 하와이 한인동지회 회장 최백렬로부터 초청 전보가 왔다. 체류비와 여행일체의 경비를 댈 테니 하와이를 잠시 다녀가시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여행

이화장에 머무른 지 한 달 지난 1960년 5월 29일, 2~3주 정도 머물 간단한 옷가지를 챙겨 이화장을 나섰다.

“늦어도 한 달 후에는 돌아올 테니 집을 잘 봐줘”

그러나 2~3주 있다가 온다는 것은 이승만의 생각이었고 프란체스카는 이 여행이 상당히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기자들이 몰려왔다.
이승만이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떠나야 합니다.

프란체스카는 울면서 말했다.

“아이 러브 코리아”

하와이에 도착한 이승만은 조경 사업을 하는 월버트 최의 별장에 머물며 옛 동지들과 사랑하는 제자들을 만났다. 독립운동을 할 때 교회 중앙에 태극기를 걸어놓고 늘 독립을 위해 기도하던 이승만이 창립한 한인기독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도 봤다. 이승만의 기분과 건강도 한결 나아지는 듯 했다.
예정했던 하와이 체류가 한 달이 지나자 이승만은 고국에 돌아가려고 했다. 고국이 걱정되고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허정을 대표로하는 임시내각이 형성돼 있었다. 허정 내각은 민주당의 요구대로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내각책임제의 핵심인 국무총리 자리는 장면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집권여당이 된 민주당은 여전히 구파와 신파로 나눠 극심하게 대립했다.

뿐만 아니라 정권을 무너뜨린 자신감으로 꽉 찬 학생들은 그 범위를 넓혀 초등학생과 심지어 경찰까지도 시위를 했다. 학생들은 점점 더 과격해져 갔다.

“미군 물러가라!”

“장면 내각 퇴진하라”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좌우합작 통일하자”

장면의 민주당은 학생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민주당의 반공법과 데모규제법을 완강하게 반대했고, 미국의 원조에 대한 미국감독은 내정간섭이라 비난했다. 환률을 500 대 1에서 1300 대 1로 올려 극심한 악성 인플레가 일어나고 학생들은 미국에 비굴하다고 맹공격을 퍼부었다.

일본 자금을 쓰기 위해 일본 상품의 수입을 허용한 것은 말 그대로 파격적이었다. 반일감정을 건드린 것이었다. 비난이 빗발쳤다. 학생들에 의해 집권한 민주당은 걷잡을 수 없는 학생들의 요구와 비난에 군을 3만이나 줄일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국가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을 굳힌 박정희는 목숨을 걸고 혁명을 시도했다.
1961년 5월 16일, 군인 박정희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성공을 거두었다.
연로한 이승만에게 이런 불안한 국내사정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이승만을 처벌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왔으므로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더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귀

국이 자꾸만 지연되자 이승만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월버터 최의 별장에서 무한정 머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월버터 최가 팔려고 내 놓은 집으로 옮겨야 했다. 그 집은 마키키 스트리트 2033번지 침실 두 개 뿐인 작은 목조주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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