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

계절이 바뀌나 보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혀다. 냉커피 주문할 때가 어젠데 벌써 핫커피가 그리워진다. 늦가을 낙엽 태우는 냄새에 커피 향을 느낀다고 했던가? 예전엔 그 맛을 몰랐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낙엽 태우면서 커피냄새 느낀다면 그건 억지다.

얼마 전, ‘좌파 문중 대연합회’가 ‘법륜사’ 포교당에서 있었다.
참석자들은 모두가 장시간의 강연으로 허기진 상태에서 허겁지겁 식당에 들어섰다.
제공 메뉴는 ‘무정란 얹은 라면’이었다. 꽤나 불만이 컸다.

상정과 시민은 식사를 마치고 반대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절약도 되고 리필 끝나면 한 잔 더 시킬 수 있으니까 늘 만나면 우선 한 잔을 시켜 나눈다.
-시민아, 점심 너무 한 거 아냐? 산채 비빔밥도 아니고 라면 너무 하잖아. 하필 무정란이야?
-이해해라. 씨 없는 화상의 한계라고 봐. 어차피 새누리당 씹을라면 노골적으로 ‘무정란’ 공격해야지 별 수 없잖아?
-대놓고 하다간 역공 당할라. 원초 싱글, 돌아온 싱글들이 만만찮은데...
-야, 커피 식는다. 어, 저기 백승우는 뭐야? 커피 심부름도 없는데.
-내가 오라고 했어. 이참에 한 잔 사줄라고.
-그래, 잘 생각했어. 씹히면 손해니까. 기사님들 조심 또 조심. 그래도 넌 뇌물 먹은 건 없잖아.
-제가 뭘 아나봐. 미국에서 ‘no cup of coffee'운동이 있었단 걸 어떻게 알았지.
-그게 아니고 커피 심부름 하다가 해고된 여직원이 복직판결 받았잖아. 그래서 막가자는 거야.
-커피가 죽일 놈이지.
-맞아. 고종도 커피에 독살됐단 소리가 있어. 히틀러군도 에바 브라운양하고 연애할 때 커피 타임을 이용했데. 장준하 선생도 죽기 직전 계곡에서 마신 것이 커피라지?
-너 제법인데. 난 식민지 ‘커피 경제학’을 연구한 사람이야. 유럽 1위 커피 소비국 독일에서 돈 없어서 마신 것이 아메리카노지.
또 에티오피아, 콜롬비아가 6.25 때 우릴 도왔잖아. 베트남도 커피 생산에 올인해서 지금 생산량으론 세계 2위야.
-도움을 준 나라도 그렇고 피해 준 나라도 여러모로 도와야지.
-커핀 인격이고 품위야.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은 사람은 새벽에 지급되는 멀건 커피 한 잔을 나누어서 그 반 잔으로 이빨 닦고 세수한 사람이라잖아.
품위있는 사람은 나찌도 함부로 못했지. 그네들은 공공연히 자기들이 죽인 건 사람이 아니라 돼지라고 우겼으니까.
-난 커피 잔에 체 게바라 사진이 찍혀 있어서 커피를 좋아하게 됐어. ‘꿇느니 서서 죽으리라.’ 아, 멋져!

이 때, 백승우가 닥아 왔다.
-전화 왔어유.
-전화기 갖고 와 봐.
-줄이 짧어유. 가서 받으세유.

-젠 왜 그래, 끝까지. 아, 여보세요?
철수다.

-선배, 왜 거기 계세요? 이쪽으로 와요.
-거기 어딘데?
-‘간단 주점’이요.
-뭐? 거긴 안 돼! 지금 난리잖아.
-단란주점 아니라니까요.
-여자 있는 거 아냐?
-시중드는 게 전부 남자예요.
-그럼, 호빠? 더 큰일 날 텐데...
-전 여자가 서빙하는 덴 안간다니깐요. 머리빡, 무릎팍이 깨져도 안가죠.
-야, 철수 너 많이 변했다. 깡이 많이 늘었어.
-그 화상 덕분에요. 파리를 못 죽이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나? 청문회, 법정에서도 갈구는 데 그 정도 쯤이야... 흐흐.

때 맞춰 그 화상이 왔다.

-니들 거기서 뭐 하노?
-커피 마셔요.
-지금도 아메리카노야? 좀 바꿔 봐.
-괜찮아요. 어르신은 뭘 마시게요?
-나야 ‘아메리칸 스타일’이지. 좋잖아. 요즘 ‘스따일’이 대세니까. 아메리카노 하면 어딘가 오끼나와 미군 냄새가 난다구.
사실 옛날 우린 ‘몸빼’ 아줌마 덕에 커피 배웠지. 우리 절에 그런 아줌마 한 분이 미군 씨- 레이션을 시주했거든. 미군 훈련장 따라 다니다가 삼양라면하고 바꾼 거래.
-가시죠. 철수가 ‘간단 주점’에서 기다린다는 데.
-알았어. 그래도 가사하고 바라는 벗어 던져야지. 주변 안목도 있고...

막 나가려는 데 철수가 왔다.
-선생님, 서두르세요.
-그래, 거기 잘 하는 건 뭐라드냐?
-‘그네타기’ 랍니다.
-‘파도타기’ 아니고? 야, 마침 잘 됐다. 너희들 이리 좀 와봐.
-뭔데요?
-너희들 다 좋은 데, 이름자가 영 아니야. 한 끗이 문제야.
-그래요?
-먼저 ‘상정’이가 뭐야? 안건 해 봐야 국회 상정이 잘 안 되잖아. 그래서 넌 ‘상징’이로 해. 여전사의 상징! 그리고 시민이, 너는 말이야, 서울 시민 지지도 못 받았잖아. 차라리 ‘서민’이라 해.
그리고 철수, 넌 사람들이 널 ‘철부지’라 놀리니까, 음 ‘칠수’라고 해라. 칠부진 없잖아?
이번 대선 출마하면 어차피 ‘기호 7번’이 될 것 같애. 미리 준비해야지. ‘준비된 자!’
럭키 세븐, 아주 좋아.

셋은 시큰둥 했다. 이 나이에 개명이라니 너무 늦은 것 아닌가 의심이 갔다.
그리고 궁리 끝에 보답으로 화상의 별명을 지었다. ‘뱀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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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수  harubang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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