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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래서
박제수 | 승인 2012.08.10 19:25

[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

눈탱이 밤탱이 되도록 처절한 싸움 끝에 금메달을 움켜잡은 한국의 레슬링 선수가 태극기에 넙죽 절을 하고 나서 플로어를 한 바퀴 뛰는 광경에 감격해 마지않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일제하, 나라 없는 설움에 한이 맺힌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시상식에서 조차 올리브 월계관의 가시(?)때문인가 우울한 표정을 지은 이유를 경기장에 참석한 그들은 몰랐을 겁니다.

마을 한 가운데 울창하게 솟아 있는 나무는 꽤 오래된 그리고 큰 나무였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이 노래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 만큼 큰 나무였지요.

어려서는 나무에 올라가 놀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나무 가지에 그네를 메달아 타고 놀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열매도 따 먹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지를 잘라 집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해 하기에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땔감이 필요한 사람들은 더 가지를 잘라 갔습니다. 나무는 행복했지만 더 이상 그네를 탈 수 없게 됐습니다.

어느 날, 배가 필요한 사람들은 궁리 끝에 큰 둥치를 잘라 배를 만들어 바다로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배를 타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기쁜 얼굴로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나무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 그 이후 나무는 열매도 열리지 않고 새들도 오지 않아 더 이상 아이들도 어른들도 나무를 멀리 했습니다. 결국 나무는 시들고 병이 들어 나무 그루터기만 남았습니다. 모두 슬펐지만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다시 사람들이 찾아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배를 타고 떠난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남양군도입니다. 떠돌이 태풍들이 태어나는 고향입니다. 이차 대전을 준비하는 일본 제국주의가 스무 살 전후의 젊은이 5,800 여명을 비행장 건설, 요새 구축, 사탕수수 재배와 성노예로 끌고 간 곳입니다. 총도 없는 민간인으로 끌려가 막판에는 총알받이, 굶주림, 자폭 강요로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신혼 여행지인 사이판, 괌, 팔라우 섬들이 죽은 자의 묘지가 되고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의 원치 않는 신혼지가 된 셈이죠.

떠날 때 억지로 떠밀려 간 사람들을 그들은 돌아 올 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본토에서 강제노역 중 종전이 되고 난 직후, 8 월 24 일 12,000 명 정도를 태운 ‘우키지마’ 호는 해방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한국인 노역자들을 고이 돌려보내지 않고 수장시켰습니다.

어두컴컴한 지하 갱도에서 아우슈비츠 유대인 몰골보다 더 험하게 부려 먹은 대가가 타이타닉 호 보다 10 배되는 세계 최대 해난사고의 희생물이라니 그 영혼들이 억울해서 어디 잠들 수 있겠습니까?

가증스럽게도 한국인 노무자들을 선내로 들여보내고 일본인 승무원은 구명보트에 태워 안전하게 대피시킨 다음 , 360 톤의 돌과 함께 계획적으로 배를 침몰시킨 저 악랄한 만행을 우리는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배를 타고 떠난 후 돌아 올 수 없었습니다. 저 멀리 남십자성이 보이는 남양군도에서, 대지진이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본 앞 바다에서 저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떠돌던 영혼들이 떠돌이 태풍과 함께 제주도 앞바다까지 왔었을 지도 모르고, 바람을 타다 보면 히말라야 높은 곳까지 떠밀려 다니다가 높은 나무 기둥에 달린 오색 천 ‘타루초’를 보고 ‘아, 여기가 우리 고향이네’ 생각하고 아직도 히말라야 독수리들과 같이 티베트 하늘을 날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루터기 밖에 남지 않았던 나무는 노인들의 쉼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 나무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가지가 없다고 뿌리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지가 하나씩 생기고 잎이 나더니 줄기도 제법 굵어 졌습니다.

그네 뛰던 가지로 바퀴를 만들어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습니다.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학교로, 공장으로 , 외국으로 달렸습니다.

수시로 바람이 불어 왔지만 나무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귀신이 곡할 때 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기적’이라는 소리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 나무를 보고 ‘한강의 기적’ 이라고 곡을 했습니다.

나무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이스라엘을 보고 배웁니다.
원래 나무의 열매는 ‘한’이었습니다. 공부에 한이 맺혀 자식을 미친 듯이 공부시킵니다.
돈에 환장하여 쓰지 않고 먹지 않고 돈을 벌었습니다. 전세 설움에 집부터 삽니다.
논이 없어 배불리 먹지 못한 ‘한’은 땅을 사야 풀어집니다.

이제 새로 열릴 나무의 열매는 ‘용서’여야 합니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이번 올림픽 축구도 일본을 이겨야 하기에 4 강에서 맞짱 뛰려고 브라질에 져줬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에 묻히다 보면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한’을 이기지 못하면 용서할 수 없고 옹졸해지며, 결국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이길 수 있습니다. 과거로부터의 해방, 독립뿐 만 아니라 현재, 미래의 적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쟁취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 실질적 독립을 말하는 것 이전에 정신적으로 성숙한 독립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다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는 다시 행복해 합니다.

이번 광복절에는 남양군도 , 티베트 , 일본해의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넋이 전부 고향으로 돌아와 안식을 찾을 수 있게 나무 가지가지 마다 노란 손수건을 달아 둡시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박제수  harubang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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