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임, 시민활동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기적

공산당 박헌영은 이승만을 주석으로 추대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이승만의 완강한 거절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때부터는 사사건건 이승만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승만도 공산당에게 설득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입장을 단호히 발표했다.

“온 세계를 파괴하는 자도 공산당이요. 조선을 파괴하는 자도 공산주의자입니다. 나는 이들과 결별을 선언합니다..”

박헌영이 반격했다.

“이승만은 민족반역자요 친일파수령입니다”

이처럼 박헌영이 이승만을 추대하여 한반도에 공산국가를 세우려했던 노력이 실패로 돌아서자 새로운 전술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6년 1월 11일 그는 하지 장군을 찾았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신탁통치반대 집회를 중지시켜 주십시오!”

하지 장군이 거절했다.

“반탁데모와 미군정은 무관합니다. 공산당이 방해 작전만 쓰지 않는다면 시위는 평화적으로 끝날 것입니다”

공산당의 활동자금 마련과 남한 경제의 교란을 목적으로 정판사에서 약 3백만 원의 위조지폐를 찍어 유포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은 이 사건의 주범인 조선공산당 간부를 체포했다. 정판사는 조폐공장이었다.

5월에 있었던 위조지폐사건 후 스탈린은 소련군정의 최고책임자인 정치사령관 스티코프와 평양의 로마넨코, 서울의 샤브신, 김일성과 박헌영을 불렀다. 절대 비밀이었다.
먼저 김일성과 박헌영의 간단한 남북한 정세보고가 있었다.
스탈린의 오른 쪽 상석에 앉은 김일성에게 스탈린이 말했다.

“소련군정의 협력을 받아 북조선의 소비에트(마르크스식 사회주의)화 정책을 조기에 실현하도록 투쟁하라!”

이어 스탈린은 박헌영에게 말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분투하는 그대의 혁명투쟁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스탈린이 질문했다.

“공산당이 사회민주당 또는 노동당을 표방하면서 가까운 장래의 과제만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인민들과 상의를 해보아야 합니다.

그 말에 스탈린이 격앙했다.

“인민이라니? 인민이야 땅 가는 사람들이다! 결정은 우리가 해야지”

스탈린은 명령했다.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3당을 통합하라!”

“신 전술을 실행하라!”

그리고 레닌의 혁명이론을 숙지시켰다.

“계급투쟁에는 정치투쟁, 경제투쟁, 사상투쟁 세 가지가 있다. 정권탈취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투쟁에는 폭력투쟁이 가장 높은 형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레닌의 생각과 같은 발언이었다. 조선공산당의 산하조직인 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당의 명령을 받들어 10월에 총파업을 결의했다. 10월은 추수기여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면 농민들이 호응해 줄 것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9월로 앞당겼다. 왜냐면 미 군정청이 적자해소를 위해 운수부 인력 25%를 감원한다는 구조조정을 단행키로 한 것을 호기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 무렵 북조선 인민위원회는 이승만 장택상 등 남한의 중요인물을 암살하기 위해 11명의 프락치 대를 서울에 보냈다. 그러나 이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검거되었다.
스티코프는 파업이 시작되기 전 9월 9일 일기장에 썼다.

[박헌영이 조선공산당은 사회단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라고 물었다]

박헌영은 이때 체포령으로 지하에 잠복 중이었다.
9월 28일 평양주재 소련군 민정사령관 로마넨코는 파업자금으로 조선공산당에 200만 엔을 지급했다.

맨 먼저 총파업은 대구에서 10월 1일 시작됐다.
처음에 공산당은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2~3백 명의 시민들에게 식량배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도록 선동했다. 이들을 해산하기 위해 무장경찰관 수십 명이 현장에 투입되자 경찰관이 폭행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경찰의 위협발포로 시위자 한명이 사망하자 시위대원들은 그 시체를 매고 대구 시가지를 행진했다. 시위자들은 대구경찰서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한 뒤 경찰서장 지서장 경찰관 군수 면장 행정관리와 그 가족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기 시작했다. 대구 시내에서만 경찰관 38명이 살해당했다.

폭동은 삽시간에 확대되어 연말에는 전남 전북 경기 강원 등 전국 73개 시군까지 퍼졌다. 미군정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지만 사망자는 피살된 경찰관 2백여 명을 포함한 1천여 명, 행방불명자 3천6백여 명, 부상자 2만6천여 명, 체포자 3만여 명에 이르는 막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정읍발언

“38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할 것입니다!”

이승만은 지난 6월 전라북도 정읍의 환영강연회에서 이렇게 연설한대로 12월 1일 김포비행장을 출발했다.
12월 7일 워싱턴에 도착한 그는 미국 정부와 언론사를 상대로 정부수립을 호소했다.
옛날의 후원자들이 그를 위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올리버 박사, 존 스태거스 변호사, 언론인 윌리엄스, 굿펠로 대령, 해리스 목사, 임병직, 임영신....
이승만은 남한에 과도정부를 세웠다가 때가 되면 남북한 자유 총선거를 통해 정식으로 통일정부를 세울 것을 호소했고 미국 여론도 무척 호의적이었다. 

트루먼도 때마침 소련을 매우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련은 45년 5월 독일항복직후 맹렬히 그 위성국을 확장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이란, 터키, 그리스로 소비에트(공산)화 망을 넓혀가고 있었다.

결국 이승만의 끈질긴 설득으로 트루먼은 한국의 총선거 실시를 지지하게 되었지만 국무부의 좌파세력은 이승만의 귀국을 방해했고 하지 장군은 한국입국허가서도 내주지 않았다.

이승만은 힘들게 도쿄로 가서 맥아더를 만나고 난징에서 장개석을 만났다. 장개석이 내어 준 중국비행기를 타고 1947년 4월 27일 어렵사리 서울에 도착한 이승만은 7만 명의 군중 앞에 섰다.

“우리가 성취한 것이 있다면 첫째 세계정세의 변천으로 트루먼 대통령의 연설로 미국정책이 전환된 까닭이며, 둘째로 우리 동포가 이같이 뭉친 까닭이오. 남조선에서 총선거가 지연되고 미군정이 실패한 것은 하지중장이 공산파와 합작을 고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정책이 공산주의와의 합작을 단념하였으므로 캄캄하던 우리의 길은 열렸습니다. 우리는 급속히 과도정부를 수립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유엔에 참가시킴으로써 자유로운 입장에서 소련과 절충하여 남북통일을 꾀해야 할 것입니다”

오후 2시 반부터 5시까지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이와 같이 연설했다.
이승만은 곧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에서 힐드링 국무차관보와 함께 정부수립 절차를 밟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 중장은 즉각 이승만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성명을 냈다.
곧바로 미 군정청은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는 동안 이승만을 가택연금 시켰다. 과격한 반탁주의자들을 되도록 제외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라디오 방송 출연은 물론 일반인과의 접촉마저도 금지되었다. 전화도 철거되고 편지도 검열을 받았다. 미국인조차 이승만을 만나기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회의는 실패로 돌아갔다.

외교 활약으로 미국의 신문들은 연일 한국문제를 보도했고 서서히 미국의 여론도 미국무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1947년 8월 14일 임영신은 뉴욕의 한 신문의 초청으로 기자회견한 내용이 기사화 됐다.

[한국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소련이 거부하고 있으므로 남한만의 임시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우리는 이 길만이 한국의 독립과 통일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드디어 한국문제가 유엔의 손에 넘어가다

결국 하지 장군이 물러나고 윌리엄 딘 장군이 군정장관에 임명됐다.
9월 17일, 새로 국무장관이 된 마셜은 한국문제를 유엔에 부치기로 했다.
한국문제가 유엔에 상정되자, 논쟁은 본회의장에서 몇날며칠 계속됐다.
소련대표 비진스키는 신경질을 내더니 단상에 올라 임영신을 가리키며 야만적으로 소리쳤다.

“저런 시골뜨기 같은 보잘 것 없는 뚱뚱한 여자를 밖으로 나가게 하라!”

가만있을 임영신이 아니었다.
당장 ‘음흉한 시베리아의 곰’이라고 쓴 메모지를 오스틴 미국 대표에게 건넸다. 그러잖아도 비진스키의 무례함이 못마땅했던 오스틴 대표가 메모지를 들고 말했다.

“방금 시골뜨기 같은 뚱뚱한 나라 없는 대표로부터, 음흉한 시베리아의 곰에게 보내는 메모지가 도착했습니다.”

뜻하지 않았던 반격에 폭소가 터졌다.

11월 14일, 유엔총회는 유엔의 감시 하에 자유선거를 통해 남북 통일정부를 세울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여기까지는 이승만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었다.
소련은 유엔의 결정을 불법이라고 맹비난했다.

1948년 1월 8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인도, 시리아, 프랑스, 호주, 캐나다, 필리핀, 중국, 엘살바도르, 이렇게 8개국으로 구성되어 서울에 도착했다. 이들은 공산통일이든 자유통일이든 통일을 결정지을 표결 단이었다.

또 커다란 고비가 닥친 것이다. 왜냐면 필리핀, 중국, 엘살바도르 빼고는 좌우합작정부이거나 공산국가여서 소련이나 공산주의자들의 편을 들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을 선거에 부치기를 원한 이승만으로서는 대단한 난관이 아닐 수 없었다.

의장인 인도 대표 메논은 완전 친소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였다. 부단장인 시리아의 무길도 메논과 비슷한 성향의 인물이었다.

이승만과 한민당의 김성수, 미 군정청의 조병옥, 수도경찰청장인 장택상은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을 구성하여, 1948년 1월 26일 저녁 7시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환영위원회를 마련했다.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환영장에서 이화여자전문학교 출신들로만 조직된 낙랑클럽의 여류 시인 모윤숙이 약과 접시를 손님들 앞에 돌리고 있을 때였다.

김활란 박사와 조병옥 박사가 메논의장에게 모윤숙을 한국의 여류시인이라고 소개했다.
문학을 좋아하는 메논 의장이 모윤숙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미스 모! 사로지니 나이드를 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오우, 아신다구요.”

사로지니 나이드는 인도의 간디와 함께 항일(抗日) 운동을 한 유명한 여류시인이었다.
모윤숙은 조용히 사로지니 나이드의 시 한 수를 낭송했다.

“숲새에 종달새 이슬 머금고 있을 때
나는 너와 함께
조국을 위해 기도하노라...”

“오우, 원더풀, 원더풀!”

메논은 한국의 여류시인이 자기 나라의 자랑스러운 시인의 시를 암송하는 데에 몹시 감격했다. 그는 영국의 명문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인도 외교관이었다.
환영회가 끝나자 메논이 모윤숙에게 말했다.

“미스 모, 당신 집까지 바래다 드리고 싶습니다.”

메논이 그의 차에 모윤숙을 태우고 달리자 헌병 백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따랐다.
모윤숙이 늦게 잠자리에 들었을 때 메논의 비서 나일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주무시는데 실례가 많습니다.”

“이렇게 늦게 무슨 일로 오셨나요?”

“메논 의장께서 호텔 바에서 미스 모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밤중에요?”

밤 열두시가 넘었다.
중국대표 호세택과 양주를 들고 있던 메논이 모윤숙에게 말했다.

“한국의 지도적 여류 시인과 만나서 느낀 감격을 더 즐기고 싶었습니다.”

“한국 여성은 과찬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윤숙은 말을 이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3.1운동 때 우리에게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총과 칼을 던지는 일본인들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
코리안이여! 조용히 칼을 받고
무저항으로 그들을 저항하라.”

고요히 낭독한 모윤숙에게 깊이 매료된 메논이, 간디와 함께 인도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도의 자랑 타고르도 3.1운동을 동정하여 쓴 시 “동방의 등불”을 나지막이 읊었다.

“언젠가는 그 등불 다시
아시아의 어둠을 밝히리라”

밤 1시가 넘자 아쉬워하는 메논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있던 모윤숙에게 이화장에서 전화가 왔다.

“아침 일찍 할아버지께서 웬일이세요?”

이승만은 나이가 어려도 모두에게 높임말을 썼다.

“나 어젯밤 메논과의 얘기 다 들었습네다.”

“네에?”

“지금은 자주 독립을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입네다. 메논과의 우정에 금이 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 주시오. 그런데 내가 메논에게 과일 한 상자를 선사하고 싶은데 윤숙이한테 보낼 테니까 잘 전달해 주시오.”

“네.”

모윤숙은 얼떨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메논의 검은 세단이 모윤숙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이웃의 수많은 시선이 꽂혔다.
곤혹스러워하는 모윤숙에게 소설가 춘원 이광수가 설득했다.

“영운(모윤숙), 지금은 영운에게 숙명적인 시간이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활약할 때가 온 거야. 모든 것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면 두려울 게 없을 거야. 나를 보라고. 나는 지금 친일을 했다는 약점으로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 하는 처지인데 영운은 여자의 처지로도 나라를 위해 활약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니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선생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모윤숙은 목이 멨다.
이승만은 수도 청장 장택상을 이화장으로 불러 간곡히 말했다.

“모윤숙의 활동을 공적으로 지원하도록 부탁합네다.”

모윤숙은 자택으로 메논의장과 호세택을 불러 조용한 파티를 열었다. 대화는 주로 자주 독립에 관한 문제였다. 토론이 무르익을 무렵에 모윤숙은 자작시 ‘38선의 밤’이라는 시를 영어로 번역하여 낭독하였다. 모윤숙은 영어과 출신이었다.

메논의장은 한국의 비극적 운명을 슬프게 읊는 모윤숙의 시에 감탄하고 동정해마지 않았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호소했다.

“우리 민족은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야만 합니까? 고향이 있어도 고향을 떠나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신세 도대체 당신들 유엔 한국위원단은 무엇하러 이 한국에 왔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저 38선을 무너뜨려서 우리를 북한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네 의장님!”

메논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가 조국의 실정을 왜 모르겠소. 그래서 우리가 도우러 온 게 아니오. 우리 인도는 종교문제로 두 나라로 갈라졌지만 한국의 상태는 너무 비참해요.”

“그러니까 어서 남북을 한 나라로 만들어 주세요. 우리는 조상을 같이하는 단일민족입니다. 인도처럼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무수한 민족이 있는 혼합국가가 아닙니다. 혈연도 언어도 문화도 똑같은 단일민족이란 말이에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메논의 마음을 회유하고 설득하기 위한 대연회를 마련했다. 유학파와 기생들이 모였다.
떠들썩한 분위기를 피해 메논과 모윤숙은 밖으로 빠져나와 한강으로 달렸다. 메논의 마음을 꽉 움켜잡으라고 간절하게 부탁하던 이승만의 말이 떠올랐다. 모윤숙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왜 한숨을 쉬어요?”

메논이 염려되어 물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니 마치 여러 나라가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거 같군요. 메논의장님께서 유엔 본부로 가실지도 모른다면서요?”

“시인은 달과 별과 사랑만 생각하면 됩니다.”

“시인도 이 나라의 백성이고 이 나라의 시인이에요. 어찌 나라와 민족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겠어요. 공산당들이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이 위급한 판국에 유엔 위원단이 우리나라를 통일독립 시켜 준다고 왔으나 이미 공산정권이 세워진 북한이 협력을 완강하게 거절하여 속수무책인데, 앞으로 위원단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통일정부를 세워 줄 수가 없으니 그대로 빈손으로 돌아가겠단 말씀인가요?”

메논은 뉴욕으로 갔다.
유엔본부에서 소총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사회주의적인 성향의 캐나다와 호주는 남한만의 선거는 분단을 고착시킬 것이라면서 극력 반대했다. 대신 미국과 영국은 선거에 찬성했다.
메논이 뉴욕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안 모윤숙은 매일 격려와 위안의 전보를 보냈다. 모든 전문은 이승만이 직접 작성하였던 것이다.

1948년 2월 19일 뉴욕 소총회는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표결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메논이 한국으로 돌아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선거 실시안을 받아들이도록 끈질기게 설득했다.

1948년 3월 12일, 찬성4표 반대 2표 기권 2표로 드디어 선거 실시안이 통과되었다.
메논이 찬성표를 던졌고, 시리아와 프랑스가 기권표를 던진 것이었다.
메논이 한국을 떠나면서 말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였는지 나도 모르오. 네루 수상한테서 빨리 오라는 전보를 몇 번이나 받고도 이렇게 머물고만 있었소. 미스 모, 인도에 언제든지 오길 바라오.”

메논과 모윤숙의 눈가는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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