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임,시민활동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독립의 외교전, "JAPAN INSIDE OUT"

1939년에 하와이를 떠났다. 이승만의 나이 64세였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이승만은 집필에 들어갔다. 비록 늙었어도 자서전이 되기 쉬운 독립운동사나 한가로이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종내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일으키고 말 것이라는 고발을 서둘렀다.
일본내막기(표제; JAPAN INSIDE OUT)로 일본, 그 가면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독립에 한 발짝 다가서는 일이라는 굳센 신념을 거듭 확신했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예고했던 일본의 야욕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했다.

일본의 ‘한국교회핍박’을 써서 기독교를 다룬 것은, 특히 미국의 많은 기독교인의 분노를 사고 그들의 힘을 얻어내 독립을 이루는 전략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 만주에서 벌이는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려는 것도 이들과 같이 분노하고 같이 힘을 합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국기독교 105인 사건도 다시 담고, 마을 교인들을 교회 안에 몰아넣어 대형학살을 저지른 수원 제암리 교회 사건과 각국의 기자와 선교사들에게까지 가한 고문과 죽음 등 억울한 피해를 세세히 적어 넣었다.

일부는 이승만의 행동을 안일하게 몇 줄 글만 쓰고 가벼운 입만 나불거린다고 비난하지만 실상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누구보다도 일본을 자극하고 다니는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마음만 먹으면 이승만의 목숨 하나쯤이야 눈 깜짝할 일본도 아니었다. 사실 수십 번의 살해의 위기를 모면한 그였다.

치밀한 역사적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전쟁심리를 탁월하게 분석하여 일본의 전쟁야욕을 경고하고 다닐 때 “그러면 전쟁하라는 말이냐?”로 몰아세우던 사람들의 우려를 생각하여 첫머리부터 평화를 위한다는 뜻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극동의 공산세력과 일본의 세계전쟁야욕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을 견제할 ‘한국의 독립이 필수!’라고 떠들어대는 이 동양남자가 우습기만 했다.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는 하와이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1940년 일 년 내내 집필에 전념했다. 이승만의 원고를 프란체스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려 세 번의 타이핑으로 손이 다 짓물렀다.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경고는 사실로 돌아왔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것이다.
책 JAPAN INSIDE OUT는 불티나게 팔렸다.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 이승만에게 ‘최초’라는 수식어가 한 가지 더 늘어났다. 한국 최초의 세계 베스트작가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4분5열되었던 한인사회도 뭉쳤다. 국민회, 동지회 등등 9개 단체가 모여 연합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워싱턴에 외교위원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승만이 외교위원장으로 선출되어 구미위원부도 다시 살아났다.

미국은 당장 일본을 적국이라고 규정하였다. 그건 또 일본의 지배하에 사는 한국도 적국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한국인도 자의든 타의든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했고 무엇보다 일장기 아래 태극기 사라진지 30년도 훨씬 넘었다.

이승만의 외교가 처음으로 빛을 발한 것은 “한국인은 일본인이 아니다”라는 청원이었다. 이 청원을 미 법무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인에게는 따로 신분증이 발급되었다.
1941년 6월 4일자로 이승만은 중국 중경의 임시정부로부터 워싱턴 전권대사자격을 인정받아 본격적으로 외교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으로부터 임시정부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무장관에게 미국지지성명을 보내오도록 해보았지만 개인의견서에 그쳤다. 임시정부에 무기 등 군사원조를 요청했어도 그들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임시정부의 승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무부의 소련스파이 히스

1942년 1월 2일 이승만은 알저 히스를 만났다. 미국무부의 실세였다.
이승만이 말했다.

“나치스 점령하의 여러 망명정부들처럼 한국의 임시정부도 승인해주시고 원조를 부탁합니다.

코델 헐 국무장관의 특별보좌관 알저 히스는 이승만의 부탁을 이렇게 거절했다.

“당신이 한국인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종전 후 미국 관리들이 실시할 선거에서,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조건으로 대한민국을 승인해 주시오”

히스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이승만은 말을 이었다.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해 주시고 무기를 제공하면 미국은 이중으로 득을 보시게 될 것이오. 한국에서 일본을 몰아내는데 도움이 될 것은 물론이오. 일본이 물러난 다음 밀고 들어올 소련을 막는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오!”

이때 히스가 화를 발끈 내며 이승만의 말을 잘랐다.

“소련을 비난하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소! 소련은 미국의 동맹국이란 말이오! 지금은 그런 것을 논의할 때가 아니오!”

알저 히스가 소련간첩이라는 사실을 이승만이 알 턱이 없었다. 단지 젊은 미국인에게 한국 전체의 운명이 걸린 현실이 참담할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미국무부가 통하지 않자 이승만은 국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의 임시정부를 결코 승인하지 않을 방침만 재차 확인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잠자코 있을 이승만이 아니었다.
1942년 3월 1일 라파예트 호텔에서 미국인 후원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인자유대회를 열었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지금 당장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한인에게 무기를 지원해야 합니다!”

이어서 한미협회 이름으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한미협회는 미국인들로 구성된 이승만의 또 하나의 전략기구인 셈이었다. 그 또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모두 숨죽여 들었던 이승만의 단파방송

1942년 6월부터는 ‘미국의 소리(VOA)’를 통해 단파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승만입니다. 우리 2300만 동포에게 말합니다. 어디서든지 내 말을 듣는 이는 자세히 듣고 일일이 전하여 모든 동포들이 다 알게 하시오. 저 포악무도한 왜적의 철망 철 사슬에서 호흡을 자유로 못하는 우리 민족에게 이 자유의 소식을 일일이 전하시오. 왜적이 저희 멸망을 재촉하느라고 하와이 필리핀을 일시에 침략해 여러 천명의 인명을 살해한 것을 미국이 보복할 결심입니다. 왜적이 양양자득하여 세상이 다 저의 것으로 알지마는 얼마 아니해서 벼락불이 쏟아질 것이니 일황 히로히토의 멸망이 멀지 아니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것입니다. 우리 임시정부는 중경에 있어 애국열사 김구 이시영 조완구 조소앙 등 여러분이 합심하여....”

1942년 11월
이승만은 국무장관 코델 헐에게 서한을 보냈다.

[한국인들은1940년에 루즈벨트와 처칠이 발표한 대서양헌장의 자유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해방이 되면 자유선거를 통하여 국가를 세울 것이며, 그 국가는 극동에서 완충국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동양평화 유지에 기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승인을 받지 못하면 전쟁이 끝났을 때 공산정권이 수립되는 불행한 결과가 올 것입니다]

한참 후에 답신이 왔다.

[어느 약소국민이든지 자기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은 국민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어도 분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뜬금없는 답신에 이승만의 분노는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답신이 오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한길수라는 정체불명의 한국인이었다.

“임시정부는 사설단체에 지나지 않는 보잘것없는 늙은이들이 모인 곳이며 이승만은 한국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아 대변자라고 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이렇게 한국인이 임시정부 승인을 방해하고 다닌 것이었다. 승인해주기 싫은 미국으로서는 반가운 우군이었고 마땅히 이용할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한길수는 일본 영사관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받는 친일파였으며, 공산주의자였고, 좌우합작파였다. 미국무부의 뜻도 좌우합작이었다.

반소주의자이며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이 미국무부로부터 철저히 따돌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좌우합작은 이승만을 끊임없이 끝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미국의 좌우합작론은, 사실 허구헌날 같은 동포끼리 쌈질이나 하고, 지지리도 가난한 한국을 소련이 맡아주었으면 하는 의도에서 나왔다. 사실상 코델 헐의 답신은 미국인이 한국인과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려준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한국인 스스로 강대국 소련이 통치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미국으로서는 단지, 미국을 공격한 일본을 자신의 나라 섬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에 강대국 소련과 같이 손잡고 싶을 뿐이다.

일본까지 공산주의로 물드는 것이 염려스러운 것이 아니라! 소련과 일본이 힘을 합쳤을 때의 또 다른 후환을 막기 위해! 소련과 일본을 견제하는 한편, 소련과 힘을 합치는 것이야말로 미국으로서는 물러 설 수 없는 전략이고 전술이었다. 미국이 소련과 손을 잡는 한, 나약한 한국이 소련변방에 하나 더 붙는다고 해서 그들 미국으로서는 문제될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설령 땅덩이 좁고 불안한 일본이 한국을 그대로 차지하기로서니 상관없지만, 소련이 한국 땅을 저토록 원하고 한국인도 열렬히 바라는 일이 아닌가. 미국으로서도 특별히 한국 땅이 갈라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지금 미국이 누구의 편을 들것인가? 당연히 소련이다!

이승만은 러시아가 한국의 얼지 않는 항구를 얼마나 열망하였는가를 되새겼다. 이승만 스무 한살에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이권이 러시아에 넘어가려 할 때 모두 합심단결하던 때가 그리웠다. 독립협회와 더불어 언론과 웅변과 시위로 연일 폭로하여 러시아를 무릎 꿇게 하였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도움을 기대하고 공산주의를 동경하는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1942년 12월에는 한국인을 헐뜯던 공산주의자 송자문이 김구에게 임시정부가 좌우합작정부를 받아들이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다.

카이로 선언

이런 세계사의 거센 물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일이 탄생했다.
카이로 선언이다.
1943년 11월 22일 카이로에 루즈벨트 미국대통령, 처칠 영국수상, 장개석 중국총통이 모여 중요한 회담을 했다. 이들은 수많은 토론과 수정을 거쳐 이렇게 발표했다.

[...3대 연합국은 일본의 침략을 제지하고 징벌하기 위해 현재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위 연합국은 자기 자신의 영토 확장의 의도도 없다. 위 연합국의 목적은 일본으로부터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개시 이후 일본이 장악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모든 섬들을 박탈할 것과 일본이 중국인들로부터 도둑질한 모든 영토를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일본은 또한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약취한 모든 영토로부터 축출될 것이다.
위의 3대국은 한국인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과정(in due course)'을 통해 자유 독립하게 될 것을 결의하였다...]

이 카이로 선언은 대한민국 제2독립선언서나 마찬가지다. 나중에 스탈린도 이에 동의했지만 스탈린이 이 회담에 참여했다면 결코 한국인의 독립이라는 문건은 없었을 것이다. 이 선언서의 효력은 나중에 유엔에 의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게 되었다.

1945년 4월

이승만은 유엔창립총회가 센프란시스코에 열릴 때 참석하여 독립 보장을 받으려 했지만 유엔창립총회 사무총장인 알저 히스가 거부했다. 그는 옵서버 참가까지도 거부했다.
히스가 소련간첩이라는 것을 이승만이 꿈엔들 눈치 챘겠는가!
미국은 소련을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시키려고 모든 부분 소련을 위해 특별배려하고 있다는 것도 거듭 확인했다.

루즈벨트는 우파 장개석을 좌파 모택동과 합칠 것을 열망했다. 군대를 가지고 있는 모택동과 군대가 없는 장개석을 합치라는 것은 좌우합작이 아니라 좌파를 하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그리고 루즈벨트는 한국문제를 공산주의자 송자문과 의논했다. 송자문은 장개석의 제부였다. 이런 모든 분위기를 간파한 이승만은 절망했다. 대한민국이 소련에게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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