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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빼앗긴 조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이야기
남부임 | 승인 2012.04.02 00:49

[남부임, 시민활동가]

빼앗긴 조국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 합병되고 말았다. 항상 그리던 고국의 산천이 안개로 흐려지는 듯 낙심으로 정신이 아득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두 달 뒤였다. 미국에서 교수로 안락하게 지낼 수도 있었으나 고국을 택했다.

뉴욕에서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런던 파리 베를린 모그크바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압록강에 도착했다. 이미 옛조국이 아니었다. 한국의 지배자가 된 일본 관리들에게 점검을 받아야하는 모욕을 겪어야 했다.

1910년 10월 10일 서울에 돌아왔다.
기독교청년회 일을 맡아달라는 YMCA총부 G.G.그레그의 부탁이 있었다. 이승만의 신변안전에 대한 선교사들의 권한을 일본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한 소년이 이승만에게 질문했다.

“기독교가 무엇이오?”

“하나님과 네 영혼의 대화란다.”

이승만은 서재필이 돌아왔을 때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개화사상을 불어넣고 민주주의 의식을 높였다.
일본의 감시는 더했다.

결국 일본인이 사건을 조작했다.
개신교 세력의 민족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윤치호 등135명을 체포한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은 제외됐다. 이때도 미국선교사들의 도움이 컸다. 이미 미국에 너무도 잘 알려진 이승만을 일본이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체포한 135명 중 105명에 대하여 ‘총독 살해 음모죄’를 뒤집어씌운 판결을 내렸다.
심문 도중에 3명이 고문으로 숨졌다. 윤치호와 함께 옥살이를 하게 한 이 핍박을 ‘105인 사건’이라 불렀다.
다른 나라에서 선교사들이 항의하기 위해 들어왔다.
이들은 이승만에게 권유했다.

“계몽활동을 그만두든지 한국을 떠나든지 해야 하오”

아버지 이경선은 더 적극적이었다.

“어서 한국을 떠나라!”

1912년 3월 26일 이승만은 그의 생일 날 한국 땅을 떠났다. 이승만이 다시 아버지와 이별하는 순간에는 불효에 대한 죄책감, 불안감과 슬픔으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경선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을 수평선으로 두른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아들 태산이를 미국에 묻고 한국으로 갈 때 바라보던 심정이 다시 살아났다. 또 슬픔이 복받쳤다. 이승만이 미국에 처음 발을 디디자마자 워싱턴 대학에 입학하여 혼자 버티기도 힘들 때, 아들 태산이를 홀로 미국에 보냈던 아내를 원망하며 바라보던 바다... 시아버지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아내를 미워했고, 아들 태산이 죽음을 아내 탓으로 돌리며 아내를 경멸했다.

이제 병든 아버지를 홀로 두고 떠나는 심정은 마치 태산이를 미국에 묻고 떠날 때와 같이 비통했다.
아내와는 영영 이별했다.
사촌에게 100원을 빌려 아내가 살 대책을 마련해주고 이혼 서류를 맡겨 놓은 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태평양을 지금 건너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은 지금 아내였던 박씨가 한 여자로서 참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심중을 누구에게 고백할 것인가. 그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불쌍한 여자였다.

결코 그 여자의 탓만이 아니었다. 이승만 자신과 무능하고 나약한 대한제국이 그렇게 몰고 간 현실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이승만의 가슴속은 바다같이 시퍼렇게 멍들고 바다같이 거대한 눈물이 고였다.
그때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라디오가 전했다. 불현 듯 정신을 차리고 날짜를 보니 1912년 4월 14일이었다.

105인 사건으로 한국에 왔던 감리교 책임자 해리스 감독이 세계감리교대회에 참석차 이승만과 동행하였다. 그는 서러움을 뚝뚝 흘리며 난간에 하염없이 서 있는 이승만에게 다가와 말했다.

“제발 일본을 비난하지 마시오. 일본의 한국지배를 현실로 받아들이시오. 제발..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오. 우리가 언제까지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오? 제발 그만 멈추시오.”

“비록 그렇더라도 감리교회만은 일본교회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교회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거대한 힘에 속박돼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젊은 이승만! 그나마 가능성의 한 가닥 털끝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매달리듯 말했던 것이다.
이마저도 서양인들은 반대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가진 서양인이 있었다.
이승만이 친일파라고 멀리했던 배재학당 영어교사인 노블박사였다. 세계감리교 대회에서 같은 방을 배정받게 된 노블박사는 비밀문서 하나를 보여주었다.

[요 몇 해 사이에 몇몇 선교사들이 중국에 파견되었는데 중국문맹퇴치를 위하여 한글을 보급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제 더 중요한 목적은 한국감리교회를 일본 교회에 병합시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교회를 북중국회의에 통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해리스 감독을 조심하라고 충고해 주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노블박사의 진심을 뒤늦게 알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무척 후회했다.
이승만은 미니애폴리스 세계감리교 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기독교나 민주주의 정신은 약자를 보호하는데 있습니다. 지금 일본은 무력으로 한국의 주권을 빼앗고 한국인을 지독히 탄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계의 기독교도는 모름지기 단결하여 이 피압박 민족을 하루바삐 해방시키고 아시아 평화를 이룩하며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유지에 이바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언론을 통한 계몽

돌아갈 나라도 돌아갈 직장도 마땅히 없는 이승만은 감옥동지이며 의형제인 박용만이 있는 하와이로 갔다.
하와이의 여러 섬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들을 살펴보고 충격에 빠졌다. 농장에 살고 있는 여자아이들은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 팔려가거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강요받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 중 가장 불행한 아이들을 모아 미국인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기고 한인기독여학원을 세웠다.

그런 와중에도 국민회보 편집인의 일을 보는 한편 시간을 쪼개 일본을 고발하기 위한 105인 사건을 다룬 책 ‘한국교회핍박’을 펴냈다. 세계로부터 도움을 받는 유일한 길은 사실을 폭로하는 일이다. 대한제국 최초의 독립신문 뎨국신문의 최초의 언론인 이승만이 폭로하여 성공하였던 예전의 경험을 다시 되살리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에 용기를 보태는 일이었다. 그리고 태평양주보 태평양잡지를 발간했다. 여기에 직접 그림도 그리고 편집도 하며 100페이지도 넘는 글을 혼자 썼다.

   
▲ 사진@온라인커뮤니티
기숙사를 갖춘 한국인 최초의 남녀공학 한인기독학원을 세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인기독학원 은 폐교위기에 빠졌다. 하와이정부가 공 립학교 학력만 인정함으로써 사립인 한 인기독학원은 검정고시를 봐야 진학할 수 있도록 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공립학교를 더 세우거나 유지하기 위해 가가호호 특별교육세를 거두는데 사립학교 학부모도 특별세를 내야 했다. 그 때문에 사립학교는 학력 혜택도 받지 못하면서 공립학교를 위해 세금까지 내야 한 것이다. 당연히 한인기숙학원에 보내기를 꺼려 할 수밖에 없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갑자기 사망했다.
일제의 독살설이 급물살을 탔다. 민중항쟁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2월 8일 도쿄 YMCA에서 남녀 유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문과 결의문을 낭독하기에 이르렀다. 

2월 26일부터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 3만장을 배포하는데 임영신도 분담하였다.
임영신은 독립선언서를 몸에 감싸고 흰색 상복을 입고 어린아이를 빌려 엄마로 분장하여 기차를 탔다. 임영신은 이미 일제의 요시찰 인물이었다. 임영신에게 검문 경찰이 다가왔다.

갓 스무 살 난 처녀 임영신! 얼른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당황한 경찰이 시선을 어디 둘지 몰라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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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임  namboo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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