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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을사조약.건국 대통령 이승만 이야기
남부임 | 승인 2012.03.28 20:40

[남부임, 시민활동가]

한일보호조약(을사조약)

김윤정이 차갑게 말했다.
다음 날까지 아무리 설득하고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이승만이 자지러질 듯 길길이 뛰었다.
망한 제국의 비애였다.
일본은 이미 한반도를 강점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영국 미국으로부터 동의서를 받아놓고 있었다. 사실상 중국 러시아는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전쟁까지 하였고 그들은 일본에 패했다. 한반도 점령 실패는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한국의 독립을 허용할 입장이 아니었다. 한반도를 점령할 생각이 전혀 없는 미국도 일명 ‘태프트- 가쓰라 조약’이라 일컫는 태프트 미육군장관과 가쓰라 일본수상의 대화내용에 동의했다.

일본공사관은 이승만이 국무장관 존 헤이를 만날 때부터 이미 그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11월 30일, 한일보호조약(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말았다. 비통함을 참지 못한 민영환이 자살했다.
이승만 가족의 생계까지 돌봐주던 아펜젤러가 배 사고로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감옥에서 전해 들었을 때처럼 망연자실했다. 불과 두 달 전에 민영환은 이승만에게 노고를 치하하며 130달러를 보내주던 사람이었다.
이승만은 편지를 썼다.

[아버님 전상서]
저는 매일 분주하와 동서로 뛰어다니옵나이다. 성탄일에는 태산이 가 있는 곳의 한 부인이 이원은(二元銀)을 보내어 몇몇 한인들과 조반을 같이 하라 하야 서너 사람이 회식하였사옵니다. 태산은 그날 여러 집에서 먹을 것과 장난감 등을 많이 보내 와서 뛰어놀며 날을 보낸다 하오니 다행이옵나이다. 공부는 여일하옵고, 다만 전동대감(민영환)이 세상을 떠났사와 땔감과 양식을 무엇으로 지탱하시는지 삼가 송구스럽사옵나이다. 국기 여남은 폭을 보내라고 며느리에게 부탁한 것이 도무지 오지 않으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음양력 달력 한 장 하송하시옵소서. 이만 줄이옵나이다. 1905년 12월 30일 아들 승만 상서]

1906년 2월 7대독자 태산이까지 전염병 디프테리아로 죽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국가와 사랑하는 사람과 의지하는 사람을 한꺼번에 잃었을 때의 참담함과 비통함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하겠는가.
 

몇 달 후 1906년 6월 말, 이승만은 매사추세츠주의 노스필드로 갔다. 교육이나 종교문제로 큰 모임이 열리는 이곳에 워싱턴대학교의 학생대표로 선발되어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큰 행사장 안에는 각국의 깃발이 휘황찬란하게 걸리고 남녀 3000여명의 참가자들은 각각 나라별로 특색 있는 복장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명사들의 연설과 애국가와 만세소리가 이어지면서 장내는 열기가 넘쳤다. 이어 학교별로 명단을 만들어서 순서대로 경축하게 했다. 이윽고 동양인 차례가 되었다. 먼저 일본학생들이 호명되었다. 일본학생 네 사람이 한쪽에서 대기하다가 일어나서 일본국 만세를 불렀다. 청중들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 다음은 청국학생차례였다.

청국학생 열대여섯 사람이 자기나라 옷을 입고 한쪽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애국가를 부르며 경축하자 청중들도 함께 즐거워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준비된 명단에 한국학생은 없었다. 그래서 다음 학교순서로 넘어갔다. 그때였다. 이승만이 벌떡 일어섰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강단 쪽으로 걸어나가 주최자에게 말했다.

“나는 한국 학생인데 혼자 경축하겠습니다.”

주최 측의 허락으로 이승만은 강단에 홀로 섰다.
팔을 휘두르며 힘차게 독립가를 부른 다음, 큰 소리로 세 번씩 외쳤다.

“대한제국 만만세! 아메리카 만만세!”
“대한제국 만만세! 아메리카 만만세!
“대한제국 만만세! 아메리카 만만세!”

청중들은 동양의 이 용감한 애국청년에게 일제히 박수로 환호하였고 서로 앞 다투어 악수를 청했다.

1907년 6월 5일 조지 워싱턴 대를 졸업했다. 이때도 워싱턴포스트지는 이승만을 이렇게 실었다.

[졸업장이 수여될 때 이 한국 젊은이만큼 뜨거운 박수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최근의 병세는 그의 건강을 해칠 만큼 위험했고, 그는 졸업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었다.]

곧바로 하버드대학 석사과정에 진입했다. 1년 동안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석사학위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끝내고 논문 제출만 남겨 두고 있을 때였다. 전공은 미국사와 유럽사였다.
사건이 터졌다. 

장인환이 친일파 미국인 스티븐스를 살해한 것이다.
스티븐스는 일본이 한국의 재정고문으로 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의 한국지배를 미국 각지에다 찬양하고 돌아다닌 사람이었다.
미국인들은 테러로 여겼다.

이승만이 한국에서 만민회와 독립협회와 더불어 물불을 가리지않고 계몽에 나섰을 때 무심하던 백성들이 떠올랐다. 금방 뜨거워진다싶으면 또 금방 싸늘해지던 백성들의 무관심처럼 미국민이 그를 괴롭혔다.
다음 해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다.

석사학위 논문은 더욱 냉대를 받았다. 이승만은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미국선교사들이 아니었다면 한성감옥에서 죽은 목숨이 그런 게 대수랴!

1908년 9월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과 9월 학기로 이승만의 입학 허락이 떨어졌다.
프린스턴 대학도 한국에 선교사로 와있던 어니스트 홀 목사의 노력으로 학비는 물론 먹고 잘 수 있는 기숙사비까지 제공되는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생활비걱정 학비걱정이 없으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드물게 찾아온 행복 같은 것이었다.
프린스턴대학의 총장은 우드로 윌슨이었다.
윌슨 총장은 이승만을 초대했다.

“어서 오시오.”

이승만은 빌린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반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윌슨부부와 세 딸은 매우 친절했다.
빌려 입은 양복이 다소 어색해도 위엄 있고 귀족 같은 기품이 흐르는 동양의 이 영리한 신사에게 호감과 호기심이 넘쳤다.

“저는 조선을 세운 왕의 16대손입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조국에 대한 열등감덩이를 토해낸 건지도 몰랐다.
이승만의 이야기는 너무도 재미있고 신기했다.
딸들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동양의 매력이 넘치는 귀공자를 즐겁게 해주었다.
총장 부부와 딸들은 이승만을 자주 초대했다. 손님들을 초청한 자리에도 이승만을 빼놓지 않고 초청하여 그의 기를 힘껏 살려주었다.
윌슨총장은 늘 이렇게 이승만을 소개했다.

“이 고결한 젊은 청년은 장차 한국의 독립을 되찾을 사람입니다.”

이승만이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일은 점점 흥미를 더해가고 있었다.

몇 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슬라이드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한국의 양반 부인들은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모습을 슬라이드로 보여 줄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하…….”

청중들은 박장대소했다.

   
 
“그 대신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외출한 중류층 부인의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한국을 알리는 목적은 나날이 활기를 더했다. 1907년 6월 13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라는 제목의 이승만의 이런 강연을 싣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와이, 켈리포니아 등에서 본 한인들은 멸시와 냉대 속에 살고 있었다. 이승만은 일부러 멋을 냈다.
예의를 갖춰야 할 자리에는 되도록 좋은 양복과 모자를 빌려 썼다. 테니스를 치고, 자전거로 워싱턴 거리를 돌아다니고, 모자도 일부러 비뚜로 쓰고 다니며 일류 강대국의 젊은 문화를 공유하려고 애쓰면서 캠퍼스의 자유를 만끽했다.

학생들이 수요일 밤마다 모여 여흥을 즐기는 자리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각자 한 가지씩 장기를 자랑할 때면 이승만은 항상 시를 낭독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잔잔한 바다에 떠있는 섬같이 장엄했다. 그렇게 타고난 기품은 오랜 기간 다듬어진 유교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명 연사였고 그의 목소리는 보통 이상으로 울리고 달콤하였으며, 음정의 폭과 변화가 풍부했다. 무엇보다도 정열이 특징이었다.

   
 
1910년 6월 14일 프린스턴 졸업식에서 역사 정치 경제와 국제법과 외교사를 전하여 윌슨총장으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다. 2월에는 하버드의 미국사와 유럽사의 석사학위 증서를 받아놓고 있었다.
미국의 석사 박사 과정에는 인문학도 수학(數學)을 가르쳤다.

서재필이 이승만에게 당부했던 말을 떠올렸다.

“승만군! 만일 한국 민중의 복지를 위해 바치기를 원한다면, 먼저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 교양교육을 받고 지도력을 갖출 준비를 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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