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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승만은 미국의 앞잡이고, 민족분단을 추구했던가
양동안 | 승인 2012.03.28 13:44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현대사상연구회 회장]

이승만을 미국의 앞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승만이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나 고국이 해방된 후 귀국할 때 미국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귀국 후 남한지역에 친미반공정권을 수립하려는 미국의 지시에 따라 남한지역에 민족을 분단하는 단독정부를 수립했다고 말한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미국정부의 지원을 특별히 받은 것도 없지만 미국정부와 관계가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나 2차대전종전까지의 수년간은 미국정부, 특히 미국의 한반도정책 주관부처인 국무성은 이승만의 활동을 지원하기보다는 방해했다.

각주 8)에 인용된 외교문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승만과 미국무성간의 관계가 ‘불만족스러웠던’원인은 미국무성내의 좌익관리들이 이승만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 훗날 밝혀진 바에 의하면, 히스(Alger Hiss) 특별정치국장, 빈센트(John Carter Vincent) 극동국장 등과 같은 친소·친중공인사 내지 공산주의자들이 2차세계대전 말기 미국무성에 침투해 있었고 중국과 극동문제를 담당하는 관리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있었다. 이사람들이 민족자주의식이 강하고 확고한 반공·반소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승만에게 비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을 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무성의 한국문제 담당관인 맥큔(George McCune)은 사상적인 것과는 다른 이유로 이승만에 대해 비우호적이었다. 평양에서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맥큔은 같은 평양출신인 안창호와 그의 흥사단 동지들에 대해서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흥사단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이승만에 대해 비우호적이었다.

이승만에 비우호적인 이런 관리들의 작용으로 인해 미국무성은 중국에서 활동중인 임시정부에 대한 미국 승인을 얻어내려는 이승만의 청원활동을 묵살했고, 재미동포사회에서 이승만에 도전적인 좌경인사 한길수를 가까이하고 이승만을 멀리했으며,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연합 창립총회에 이승만이 이끄는 우리 민족대표단의 참석을 봉쇄했다. 일본의 항복이 임박했을 때도 미국정부는 그러한 사실을 이승만에게 전혀 통호배 주지 않았다.

미국무성은 이승만의 귀국에 대해서마저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승만은 고국이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라디오방송을 통해 들은 직후 귀국을 서두르면서 미국무성에 여권 발급을 요청했다. 미국무성은 이승만이 귀국할 한반도가 미국의 작전지역이므로 미군당국으로부터 작전지역 여행허가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미 국방성은 이승만이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의장이라는 사실에 준거하여 그의 직업을 ‘미국주재 한국고등판무관(High Commissioner from Korea to the United States)'으로 표기한 작전지역 여행허가서를 준비했다. 미국무성은 이승만의 그 직함을 트집잡아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았다.

이승만이 국방성에 대한 고등판무관이라는 직함을 뺀 새로운 작전지역 여행허가서를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승만이 국방성으로부터 직함을 삭제한 새로운 작전지역 여행허가서를 받아가지고 국무성에 여권 발급을 요청하자, 국무성은 그가 타고 갈 비행기 문제로 시비를 걸었다.

미 국무성은 이승만의 귀국여행에 관한 비행기편 마련 등 일체의 지원을 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하면서, 그가 일본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가려면 남한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태평양지역 연합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일본착륙 허가와 이승만을 군용기 편으로 한국에 데려다 주겠다는 보장각서를 받아 오라고 요구했다.

이승만은 국방성에 그러한 맥아더의 보장각서를 발급받아 달라고 요청하자 국방성은 미국무성으로부터 그에 관한 구체적인 권한위임이 통보되지 않은 한 그의 요청을 받아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만이 다시 국무성에 국방성이 요구하는 권한위임을 통보해 달라고 요청하자 국무성은 이승만의 귀국을 위한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회답했다.

이승만은 이러한 미국무성의 ‘장난’으로 인해 고국이 해방된 지 40일이 지나서야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가 귀국을 준비하는 동안 어떤 미국정부 관리도 그의 귀국을 환송하는 파티를 개최해 주지 않았고, 그가 귀국길에 오르기 위해 워싱턴을 출발할 때도 미국정부의 관리는 단 한 명도환송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미국정부의 푸대접을 받ㅇ며 8일간의 긴 여행 끝에 도쿄에 도착했다. 도쿄에서는 다행히 맥아더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으며, 맥아더가 내준 미군용기를 타고 김포 비행장으로 귀국했다. 이승만은 기포 비행장에 내릴 때 단 한 명의 수행원도 거느리지 않았었고 김포 비행장에는 단 한 명의 출영객도 나오지 않았다.

이승만이 미국의 앞잡이라면, 미국정부가 이승만의 활동과 귀국을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그처럼 방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앞잡이가 아니라, 미국정부의 최대 경계대상이었던 것이다.

이승만이 46년 6월부터 전개한 남한지역 자율정부 수립운동도 미국의 한반도정책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의 미국의 한반도정책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정부 수립문제와 관련해서도 이승만과 미국은 대립했다.

미국은 모스크바 협정에 입각하여 소련과 합의해서 한반도 통일임시정부를 구성하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에 반해 이승만은 소련이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단독공산정권을 구성하고 토지개혁 등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조치들을 단행하고 있으며, 공산당이 헤게모니를 장학할 수 있는 통일임시정부가 아니면 통일임시정부 구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술책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미국의 정책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승만은 미국이 흥정을 통해 세계의 다른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대가로 한반도에서 소련의 주장에 양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한 판단에 따라 이승만은 남한지역에서 민주의 자주의지ㅔ 의해 민주공화제 독립정부를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승만과 미국정부의 이러한 입장차이로 인해 대하닌구정부의 수립이 확정되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이승만과 미국정부=주한미군정은 크게 갈등·대립했다. 이승만이 46년 6월 ‘정읍발언’을 통해 남한에 독자적으로 정부를 수립할 것을 천명하자 미군정은 이승만을 강력히 비난했다.

미 군정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순종적인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 세력을 미군정의 협조자로 삼고 남한에 자율정부를 수립하려는 이승만과 김구를 적대시하면서 이·김 두 지도자를 한국정계에서 퇴출시키려고 노력했다.

심지어는 남한 정계의 지도자들로 위촉하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관선의원에서 당시 남한의 가장 영향력 있는 2명의 정치지도자들인 이승만과 김구를 배제했다. 미군정은 이승만이 남한지역 정부 수립에 대한 미국내의 지지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방미외교활동을 떠날 때는 그의 출국을 방해했고, 그가 방미외교활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는 그의 정부수립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한때 이승만을 가택연금했다.

그렇다면 이승만은 무슨 목적으로 미국과 갈등 대립하면서 그토록 집요하게 남한 정부 수립을 추진했던 것일까? 이승만이 남한에 정부를 수립하려는 목적은 소련이 북한을 공산화하기 시작하고 남한까지 공산화 하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지역의 국민만이라도 공산당의 지배를 면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남한의 정부를 강화시켜 공산화통일이 아닌 민족통일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이승만이 북한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단독정권이 구성되어 토지개혁 등 사회주의화정책을 집행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남한정부 수립을 추진했다면, 그의 남한정부 수립노력은 민족분단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거나 그의 정부 수립노력으로 민족이 분단되었다고 비판받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의 남한정부 수립노력은 북한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방식을 남한 주민의 생활방식으로부터 이질화시키는 조치들이 취해진 후, 다시 말해서 민족분단이 이미 이루어진 시접에서 취해진 것이기 때문에 이승만의 남한정부 수립노력에 대한 그러한 비판은 타당치 않다.

이상과 같이 볼 때, 이승만은 미국의 앞잡이도 아니고, 우리 민족을 분단하려는 미국의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남한지역의 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며, 이승만의 정부 수립노력이 우리 민족의 분단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양동안, ‘대한민국 건국사’, 556쪽~560쪽, (서울: 현음사, 200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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