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

1.

오늘날의 사람들은 감격할 줄도 모르고 감동할 줄도 모른다고 한다. 이른바 3무시대( 무감동, 무감격, 무감흥)를 사는 것이다.

지난 가을, 어느 인터뷰에서 중견 배우인 주현님의 「내가 드라마에 출연 하지만, 요즈음 드라마는 감동이 없어서 아예 보지 않는다」는 코멘트는 시사(示唆)하는 것이 많다.

가장 감동을 주어야 할 TV드라마조차 감동이 없으니 다른 부문은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전체에서 감동이 없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의 변화가 재빨라 감동할 계제나 시간을 못 갖는다는 것이며.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경쟁이 치열해서 감동을 맛보고 감격에 겨워하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복잡하고 깊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즉흥적이며 찰라적인 것을 좋아하며 용이(容易)함을 따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대의 리바이던(Leviathan)인 TV나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가 상업성과 선정성을 부추기고 꼬드기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창달하며 질 높은 생활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생명의 연장이나 한낱 생명체의 반복운동을 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고상하고 고매한 정신을 갖으며 고아하고 고귀한 사유방법을 익히면서 인간성이 좋고 인간미가 넘치며 인품이 향기를 내는 인간중심의 시스템을 유지 확대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살벌하여 적개심이 도처에 넘쳐나고, 사람들이 매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면서 저 동물농장이나 수용소군도(收容所群島)로 자신들을 몰아가고 있다.

나는 역사의 발전과 인류의 진보를 믿는 사람이지만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성은 메마르고 정신을 황폐화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

우리가 감동을 못 느끼는 것은 인간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물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며, 본질보다는 현상을 쫒는다는 것이며, 고급 유물론(唯物論)이 아니라 싸구려 유물론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감동이 없다는 것은 정서가 메말랐다는 것이며 감정이 굳었다는 것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疏通)과 공유(共有)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획되고 연출된 감동에 식상했기 때문이다.

2.

감동의 부재는 인문학의 몰락과 관계가 있으며,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각축은 있으나 특출하고 걸출한 사람(奇人, 怪人)이 없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무사안일 복지부동이 힘을 얻고, 도전정신과 실험정신 모험심의 실종에서 기인한다.

감동에 둔한 것은 꿈이 없다는 것이며 꿈을 꿀 수도 없다는 것이다.

감동을 놓치는 것은 편향되고 편파적인 사고를 하고, 선입관을 갖기 때문이며 상대방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며 상대방의 우수함을 질시하며 나와 의견이 다르면 적대시하고 적이라도 지켜야 할 예의와 경의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흔했던 감동이 오늘날에는 왜 보기가 어려워졌는가?

그것은 사람들 마음이 고성(高城, 孤城)에 은거하며, 소라 같이 웅크려 마음을 닫고 가슴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감동의 화살을 쏘아도 튕겨나가고 아무리 감동의 전령사를 보내도문전에서 되돌아오기 일쑤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반듯함을 지향하고 이름을 아꼈으며 정신이 번쩍였다. 전원(田園)이 그 마음을 감싸고 의기(義氣)가 생각을 보듬었다.

지금은 때로는 억지로 때로는 값싸게 아녀자의 눈물을 자아내고 아녀자의 인(仁)을 얘기하며, 호기심만을 자극하고 지엽적인 것으로 점철한다.

나는 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것 보다 근본적인 것을 잊어버리면 다른 것도 빛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신의 위대함 생각의 원활함이 없는 글자나 그림의 나열은 신기루 같아서 끝내는 인간을 타락시키며 인성을 망가뜨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3.

나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신기한 것, 교묘한 것. 눈을 즐겁게 하는 것에 치중하다 우리가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봄직한 오징어 같은 인간 문어 같은 인간이 될까봐 그것을 두려워한다.

마음이 강퍅하고 현란한 것 요란한 것 호화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혈서(血書)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공명의 출사표(出師表)나 이밀의 진정표(陳情表)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나 효자가 아니라 말해도 그저 설교나 설법의 수준이며, 영웅적이고 역사적이고 극적인 일이라도 따분하게만 보일 것이다.

그것은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거는 것이고 개에게 화관(花冠)을 씌우는 것임을 최근에야 깨닫는다.

감동 감격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조건은 아니어도 충분조건으로서 기능한다. 그것은 삶이란 비단에 꽃을 수놓는 것이고, 삶이라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사람을 살맛나게 하고 연대감을 갖게 하며 유대감을 확인하고 동질감이 들게 하는 연결고리이자 연결 띠인 것이다.

감동은 삶의 활력소이고 윤활유이며 청량제이자 자양분이다. 감동은 인간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인간의 존귀함을 알려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감동이 생활에서 충만하고 충일한 사람은 잠시 신선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고 잠깐 하늘나라를 엿보는 것과 같다.

감동 감격은 역사를 통시적(通時的)으로 보고, 우주를 조망하면서 그 연수(年數)를 헤아리며, 뜨거운 인간애를 가진 사람만이 흠뻑 빠지고 즐겨 하는 것이다.

세상을 지식으로 보는 사람,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에게는 그것의 긴장도나 농밀함은 떨어지고 작아질 것이다.

감동은 ecstasy(황홀)이고 fantasia(환상)이자 magic(마법)이다.

나이가 많아도 언제나 젊을 수 있으며, 통주저음(thorough bass)처럼 중량감이 있으며, 갈대처럼 감성적일 수 있다.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사회에서는 넘쳐나지만 노쇠하고 무기력하며 침잠돼있고 단세포적인 사회에서는 찾기가 어려우니

지금 우리나라의 위치나 사정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은 미학(美學)을 모르니 심미안(審美眼)을 가질리 없고 탐미적(耽美的)은 오래전의 얘기일 것이다.

안다는 것이 겨우 관능미나 요염미이니 -비장미(悲壯美) 숭고미(崇高美) 장엄미 (莊嚴美) 절제미(節制美) 처염미(悽艶美)를 만나도 감동을 못 느낄 것이다.

더군다나 비밀 유지를 위해 자기 목을 친 전광이나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끄는 것을 보고 자기의 웃옷을 벗어 등을 감싸준 백락(伯樂)이나 자기를 죽이려했던 위징(魏徵)을 높게 등용한 당태종의 마음을 헤아리고 동조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하루살이가 우주를 모르듯 굳센 기상(氣像) 늠름한 기개(氣慨) 씩씩한 기백(氣魄)은 범부의 것이 아닌 것과 같다.

4.

감동은 박진감에서 오고 리얼리티(reality)에서 생긴다. 그것은 감동이 전제되고 연상되기 때문이다.

로버트 카파(R Capa)가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찍은 「병사의 죽음」사진은 전율의 극치이며, 국립박물관에 소장 되어있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의 미소는 천년이 흘렀어도 상금도 살포시 웃는듯하여 고혹적이며, 고 최순우 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바라보는 가을산의 애처로움과 사무침은 시적(詩的)이자 단연 압권(壓卷)이다.

감동은 그리움이며 애탐이고, 미어지는 마음의 발로이자 사물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맑고 깨끗한 심성에 그 근저를 둔다.

인생에서 한 번은 의로워 보려하고 한 번은 아름다워져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자진모리 가락을 들어도 흥취(興趣)가 생기지 않으며 계룡산 갑사의 단풍이나 설경을 봐도 운치(韻致)를 못 느끼며,

겨울에 피는 매화꽃이나 동백꽃을 보고도 아취(雅趣) 를 발견할 수가 없으며, 정선이나 봉평의 5일장을 거닐어도 정취(情趣)가 동하지 않을 것이며 고조(高調)라는 피치(pitch)를 올리지도 못할 것이다.

어디가나 심드렁하고 시큰둥하며 생뚱맞을 것이다.

풍류를 알 수가 없고 풍광(風光)은 물론이려니와 장관(壯觀) 경관(景觀)의 웅장함이나 수려함도 모를 것이다.

소동파(蘇東波)의 「무한한 산천을 부러워하며 유한한 인생을 서러워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고, 백낙천(白樂天)이 동정호(洞庭湖)에서 기녀의 비파소리에 눈물을 흘린 까닭은 생각조차 못한다.

5.

감동은 통념의 거부나 관행에 대한 저항, 통설(通說)에 대한 이의에서 오기도 하니  이를 고깝게 생각하거나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알거나 아주 큰일 난 것처럼 아는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감동은 또 평상에서의 일탈(逸脫)이나 파격에서 생기기도 하며 초인적인 괴력이나 「인간적인 적나라한 인간적인 데서 생기기도 한다.

반대로 정상에로의 복귀나 진실에의 접근에서 옴은 물론이다. 감동은 독기를 풀거나 오기를 가지면 가려질 수가 있다.

마음의 무장해제가 필요하며 겸손하고 겸허하여 낮아야만 임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인문학의 부흥 정신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경사되지 않은 물과 심의 균형, 영과 육의 아우름이 필요하다. 다시금 사르트르(J P Satre)가 노벨문학상의 편파성에 항의하여 이를 거부한 감동이, 「보고 싶은 얼굴」의 가인 민혜경이 가수시상식에 의상상이 웬일이냐면서 거부한 감동이 2007년 한국의 드라마, 한국의 정치에 재현되기를 기대한다.

2007년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2007년 1월 4일,관악산을 바라보며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김성춘  kimmaeul@hanmail.net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