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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탁통치를 받아들였어야 했나②
양동안 | 승인 2012.03.20 03:19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현대사상연구회 회장]

북한공산당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고, 임시인민위원회의 이름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토지가 없거나 극히 적게 가진 빈농들에게 무상 분배함으로써 새로 토지를 가지게 된 농민들은 공산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을 것이 당연하다.

또한 46년 봄부터 북한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을 비롯한 이른바 민주개혁으로 인해 공산당과 좌익에 반대하는 북한지역 주민들은 거의 모두 남한으로 피난했으므로 북한 지역에서 공산당과 좌익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으로 인해 우익세력이 좌익세력에 대한 초기의 열세를 크게 만회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좌·우진영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가 거의 비슷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승만과 김구는 지도자로서 대중의 존경을 받았지만 좌익정당들의 토지개혁을 비롯한 정강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가 높아서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대중의 존경이 우익진영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로 바로 연결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신탁통치가 실시되게 되었다면 좌익세력은 폭동공세와 같은 지지율하락을 초래할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도파는 미미하나마 약간의 대중적 지지를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정치세력들의 대중지지도를 고려할 때, 통일임시정부가 구성되고 그 임시정부에 의해 선거가 실시되었다면 한반도 전체에서 좌우진영이 과반수에는 미달하지만 최대다수 득표를 획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익진영은 좌익진영과 비슷하지만 좌익보다는 약간 적은 득표를 획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중도파는 미미하지만 일정한 득표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엣 좌익과 중도파 및 우익의 김구-임정계가 참여하는 연합세력이 집권연합을 구성하게 되고 이승만과 한민당은 야당이 되었을 것이다.

좌익+중도파+임정계의 집권연합은 신탁통치가 종료된 후에도 계속되었을 것이고, 그 집권연합은 북한에서 46년에 실시했던 것과 동일한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를 남한지역까지 확대 실시했을 것이며, 따라서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이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45~48년 기간에 전개된 소련과 미국의 한반도정책을 비교해 보면, 양자가 크게 대조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소련은 소련군이 점령한 북한지역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단독 공산정권의 지배하에 반드시 사회주의화 하고 가능하다면 한반도 전체에 좌익지배정권을 수립하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에 반해 미국은 한반도 전체는 고사하고 남한에서만이라도 우익지배정권을 수립하려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지 않았고 미· 소 합의에 의해 한반도 통일임시정부를 조속히 수립하고 빠른 시일 내에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하려 했다.

소련은 미국과 모스크바 협정 이행 곧 신탁통치 실시를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개최일정을 합의해 놓고도 그 공위가 개최되기 전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단독정권을 수립하고, 토지개혁, 중요기업 국유화, 사회주의지향 교육개혁 등 사회주의화 정강을 마련했다.

미국과 소련은 46년 1월 16일부터 2월 5일까지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의를 개최하고 46년 3월 14일부터 미소공위를 개최키로 합의했다(실제로는 3월 20일부터 개최되었다). 소련은 이처럼 신탁통치 실시를 위한 미소공동 개최에 합의해놓고도 46년 2월 8일 북한지역의 단독정권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소련은 또 서울에서 미소공동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는 3월 23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로 하여금 북한을 사회주의화하기 위한 ‘민주개혁’이 포함된 ‘20개조 정강’을 발표하게 했으며 토지개혁 등을 비롯한 ‘민주개혁’조치들을 실시했다.

뿐만 아니라 평양학원을 개설하여 공산주의사상으로 무장한 군간부들을 양성했다. 공산당의 군간부를 양성했다는 것은 곧 북한의 전체 군대가 공산당의 군대가 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소련은 이처럼 한편으로는 북한에서 사회주의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서울에서 진행중인 미소공동위원회에서는 통일임시정부의 구성에서 우익진영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소련의 이와 같은 행동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시 말해서 한반도에 신탁통치가 실시되건말건 북한지역만은 사회주의화하고 가능하다면 한반도 전체에 좌익지역(우익 배제)정권이 수립되도록 하려는 소련의 확고한 정책방향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은 미소공위가 개막되기 전인 46년 2월말부터 격렬한 반탁운동을 전개한 이승만과 김구 및 그들을 중심으로 한 우익세력을 자기들의 한반도정책 실천에 대한 장애물로 간주하여 그들을 배제하고 중도파세력을 육성하여 그 중도파가 남한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도록 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미국의 이러한 계획은 그후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좌우 합작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미국은 또 남한지역을 미국에서 전략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군사전략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지역인 데다가 궁극적으로 공산화될 지역으로 평가하면서, 국방예산을 대폭 감축해야 할 시점에 그러한 가치 없는 지역에 매일 1백만 달러 이상의 막대한 경비를 들여서 미군을 오래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소련과 합의하여 한반도 통일임시정부를 구성해 놓고(그것이 안되면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해 놓고)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정책을 집행하고 있었다.

미국은 그러한 정책을 따리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남한 우익세력의 반탁운동을 문제 삼아 남한 우익세력을 통일정부 구성에서 배제하려 한 데 반해 미국은 그보다 휠씬 중요한 문제인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단독정권 수립과 사회주의화정책을 문제삼지 않고 통일정부 구성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이처럼 소련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북한지역만은 사회주의화하고 나아가서는 한반도 전체에 좌익지역(우익배제)정권이 수립되도록 하려는 정책을 확고하게 추진하는데 반해, 미국은 남한지역의 궁극적으로 공산화될 것으로 예측하면서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남한주둔 미군을 철수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신탁통치가 실시되었더라면 북한지역의 사회주의화는 기정사실로 인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신탁통치 실시가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남한의 정치적 운명도 소련이 원하고 미국이 예측했던 바대로 공산화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한반도가 인접해 있는 중국의 정치상황도 신탁통치를 수용한 후의 한반도의 운명을 공산화로 귀결짓는 작용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49년에 이루어진 중국대륙의 공산화는 조만간 한반도에 공산화의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70년 후반 베트남의 공산화가 베트남에 인접한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공산화를 초래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반도에 신탁통치가 실시되고 있고 남한지역에 확고한 반공정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신탁통치 종료와 함께 공산화의 길로 급전직하했을 것이다.

40년대 후반의 소련과 미국의 한반도정책과 중국의 공산화를 고려하면, 신탁통치 하에서 설사 우익진영이 다수파로서 정권을 장악했었다 할지라도 신탁통치가 종료되면 한반도는 내전과 공산화의 길로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우익세력이 세력을 크게 확대하고 미국이 남한의 공산화를 방지하지 위해 적극 개입했을 경우에는 한반도가 내란을 거쳐 분단되었을 것이다.

이상 같이 볼 때,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 통일을 좋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신탁통치의 수용이 우리 민족에게 복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므로 신탁통치를 수용했어야 했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고, 남한만이라도 공산화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탁통치의 수용은 우리 민족에게 복된 결과를 초래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남한만이라도 그것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 옳았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양동안, ‘대한민국 건국사’, 5551쪽~555쪽, (서울: 현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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