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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국모살해, 건국 대통령 이승만 이야기
남부임 | 승인 2012.03.12 07:41

   
 
[남부임, 시민활동가]

국모살해

“국모가 왜놈에게 살해당했어!”
“뭐?! 뭐라고!”

갑오개혁이 일어난 다음 해 1895년 10월 이었다.
이승만이 비록 동료들보다 학습능력이 뛰어났다 해도, 자유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지식을 터득하고 확립하고 정리하여 펼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허물어져가는 나라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젊은 이승만을 더 이상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민영환을 미국대사로 보낸 것도 민비를 죽이기 위한 음모였다고!”

“민비를 이불에 둘둘 말아 그 위에 석유를 뿌려 불태웠대!”

“왜놈 흑심이 너무 노골적이야!”

“조선 땅에 왜놈이 청나라 몰아낸 이유가 뭐겠어!”

배제학당의 피 끓는 청년들은 듣고 들어 닳고 닳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이승만은 굴욕감과 분노의 화염에 휩싸였다. 이 사실을 맨 처음 이승만에게 알려왔던 배재학당의 동료 이충구가 이승만을 찾아왔다.

“할 말이 있으니 우리 집에 같이 좀 갑시다.”

“국모를 손수 모시던 친위대 소속 수십 명을 우리 편으로 만들었소. 그들이 거사에 가담하기로 했소. 우리는 내일 새벽에 바로 대궐로 쳐들어가서 국모를 돌아가시게 한 친일파 내각 놈들과 그 흉악한 왜놈들을 모조리 없애고 상감을 모실 작정이오. 그러나 혹시 ...형! 만에 하나 내가 화를 당하면 내 가족을 좀 보살펴 주시오.”

이충구의 말을 듣고 이승만이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형이 하는 일이면 나도 하겠소. 형만 보내고 난들 뒤에서 어찌 편안히 앉아 있겠소!

“형을 빼고 싶어서 뺀 것이 아니라 형은 6대독자가 아니오. 이번 일을 맡을 사람은 이미 결정되었고 다만 내 뒤를 부탁할 친구만이 없소. 그러니 형은 더 큰 일에 몸을 바치시란 말이오.”

이승만은 이러한 이충구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민비가 살해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거사 당일, 러시아 공사관도 힘을 합쳤다. 이충구는 친러파였다. 러시아공사관이 병력을 대궐로 파견했다. 이충구는 이들에게 탄환 80발을 얻었다.
뜬눈으로 고스란히 밤을 새운 이승만은 이충구를 찾아갔다.

“안에서 호응하기로 한 친위대 대대장 이진호 놈이 하룻밤 사이에 변절하여 도리어 우리한테 총을 탕탕 쏘는 것이 아니겠소. 이젠 다 글렀소.”

“거사를 주동했던 임최수 이도철 이재순 안경수 윤웅렬 이들은 다 어찌됐소?”

“러시아공사관 미국공사관과 선교사들의 집으로 피신했소.”

“그럼 왜 형은 도망치지 않고 계시오?”

“도망해서 무엇 하오. 내가 달아나면 같이 일하던 사람들만 경을 치게 될 테니 내가 혼자 총책임을 지겠소.”

그 이튿날 이충구는 체포됐다. 법부대신이 이충구를 고문했다.
이충구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 역적 놈들아! 내가 성공했으면 네놈들이 먼저 죽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춘생문 사건이라 했다.
춘생문은 고종이 거처하는 곳에서 외부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문으로써 고종이 빨리 피신할 수 있는 문이었다. 경복궁의 춘생문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 남짓 만에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일 년 정도 있다가 덕수궁으로 환궁했다.
그 사이, 이승만은 여느 때처럼 제중원에서 화이팅에게 조선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집에 있던 복녀가 울면서 뛰어 들어왔다.

“서방님 큰일 났어요! 아까 윤창렬씨가 서방님을 찾아왔는데 그 뒤를 따라 순검들이 셋이나 쫓아 들어오면서 윤창렬씨의 손을 붙들고 당신이 이승만 씨요? 하지 않겠어요. 아니라고 하니까 방으로 들어와서 샅샅이 뒤지고 있어요. 마님께서는 어찌나 놀라시는지 ... 서방님 집으로 오시지 말고 어서 숨으세요. 네!”

“그래, 윤창렬 씨는 어떻게 되었니?”

“순검들이 방에 들어온 틈에 도망했어요!

“알았다. 그럼 어서 집으로 가서 마님께 잘 알아서 할 테니 내 일은 조금도 걱정 마시라고 여쭈어라.”

춘생문 사건으로 검거선풍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승만은 이충구와 같은 배제학당의 조선어 선생이었다. 이승만은 화이팅의 도움으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여자 환자로 가장하여 남대문을 빠져나와 화이팅의 친구 지킵슨 부인 집으로 가서 하루를 지낸 뒤 걸어서 평산의 누이집으로 피신했다.
이 사건으로 임최수 이도철이 결국 사형 당했다.
을미년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승만은 안심하고 오라는 화이팅의 편지를 받고 평산의 누이 집에서 돌아왔다.

단발령

충격적인 사건이 전국을 휩쓸었다.

“차라리 내 목을 잘라라! 절대 나의 머리카락은 못 자른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持父母)라 했거늘! 부모님이 물려주신 터럭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야!”

양력을 쓰기로 한, 1896년 1월 1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단발령이 내린 것이다. 국모살해와 더불어 왜놈의 뜻에 의해 내린 단발령은 오랜 세월 유교에 젖은 백성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전국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인 선교사들의 단발머리에 비해 조선인의 상투머리가 불편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긴 머리를 감거나 이와 서캐를 잡느라 촘촘한 참빗으로 긴 머리카락을 빗어내리던 어릴 때는 너무 아파 울기도 했다. 구차하고 낡은 보수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단발령이 떨어지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배제학당 학우들도 상투를 자르지 않았다.
단발령에 반대하는 관료들은 벼슬을 내던지고 낙향하며 전국이 반대로 들끓었다.

이승만은 조상님의 위패를 모셔 놓고 기도했다.

“조상님 6대독자 이승만 아룁니다. 오늘 저는 상투를 자릅니다. 상투란 불편한 겉치레이며 불필요한 관습일 뿐입니다.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해서 조선인의 정신이나 마음이 결단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조상님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에비슨 박사는 이승만의 부탁을 받고 가위를 들었다. 자나 깨나 머리에 이고 있던 상투가 이승만의 눈앞에 툭 떨어졌다. 이승만은 순간 전율했다. 보자기에 상투를 싸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이승만의 어머니가 보자기에 싸인 상투를 보자, 마치 아들의 시신이라도 대한 듯 대성통곡했다.

이승만의 어머니는 단발령이 내리던 그해 9월 2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승만의 나이 21세였다.
이참판과 윤참봉은 부의로 죽을 한 동이씩 쑤어 보냈다.
돈, 백지, 황촉, 등이 부의로 들어왔다. 화이팅이 250냥, 이충구가 200냥을 보내왔다.
부의록에 이승만은 몸이 자유롭지 못한 괴로운 심정을 시로 써 넣었다.

鞠有情恩卄二年 이십 이년을 길러 주신 어머니의 은혜로
而今身髮正軒然 오늘의 신체는 정녕 건장하구나
未奉靈柩安土宅 어머님의 영구를 유택에 평안히 모시지 못하다니
戴頭寧不愧蒼天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

독립신문과 협성회

서재필이 돌아왔다.
김옥균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서재필은 컬럼비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다가 박영효의 부탁을 받고 돌아온 것이었다.
서재필은 귀국하자마자 정부의 보조를 받아 독립신문과 독립협회를 만들었다.

“나는 정계에는 아무런 야심이 없습니다. 환국의 주요목적은 인민을 가르치고 지도 계몽하려는 것입니다”

아펜젤러와 미국인과 개화파들이 마련한 자리에서 서재필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연설했다. 이승만이 이 자리에 있었다. 전제군주제 아래 살고 있던 젊은 이승만의 가슴에 폭풍 같은 혁명이 밀고 들던 순간이었다.

“미국에서는 인민의 권리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백성이 마음에 맞는 인물을 선거해서 국회를 조직하고 백성이 정하는 대로 정치를 운영합니다.”

서재필은 수구파들로부터 보호를 위해 조선에서 쓰던 이름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제손이라 했다. 그는 갑신정변으로 부모와 형과 아내는 음독자살했고, 동생은 참형을 당했으며, 아들은 굶어 죽었다.
미국시민권 소유자인 제손이 재혼한 미국인 부인과 길을 걸을라치면 구경꾼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서재필의 강연에서 이승만은 ‘국제사회와 조선, 서양의 시민사회와 조선’의 정치현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서재필의 강연에 학생들이 모여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강연은 더욱 탄력을 받아 정기 모임을 만들었다. 토론을 통해 자발적인 개화의식을 높이는 모임의 이름을 협성회라고 이름 지었다. 여기서도 이승만은 두각을 나타내어, 우리나라 최초의 학생회 간부가 되었다.

“주시경은 한글 연구하러, 이승만은 정치하러 배제학당 다닌다.”

는 소문이 돌았다.
협성회에서 열린 토론은 이러했다.

“국한문 홍용. 양복입기. 매일 운동하기. 종교를 예수교로 하기. 노비 풀어주기. 국민 20세는 병정으로 하기. 사농공상 학교 세우기. 재정과 군권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곧 나라를 남에게 파는 것. 우체부 설치하기. 상하의원 설립하기.”

가히 근대시민사회의 필수요소를 망라했다.
이런 주제에 대하여 찬성자와 반대자를 두어 회의를 공개했다.
서재필이 말했다.

“미국에서는 남이 연설할 때 잘하면 손바닥을 마주 때려 박수라는 것을 하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보시오”

이승만이 즉시 큰 소리로 말했다.

“자 그러면 우리 박수합시다!

그러자 서재필이 핀잔을 주었다.

“좋으면 혼자서 하지 같이 하자고 할 건 뭐야!”

“하하하하하...”

강당 안은 한바탕 웃음판이 되었다. 협성회 회원은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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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임  namboo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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