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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과거시험.결혼.배재학당, 건국 대통령 이승만 이야기
남부임 | 승인 2012.03.10 16:59

[남부임, 시민활동가]

과거시험

그러던 승룡이 드디어 과거시험을 보게 되었다. 이때 이름을 승만(承晩)으로 바꾸고 호를 우남(雩南)으로 지었다.

과거는 원래 열다섯 살 부터 볼 수 있었는데 특별히 열네 살까지 허용했다. 이유는 왕세자의 나이가 열네 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승룡의 나이는 아직 열세 살이었다. 한 살을 올리고 키가 커보이게 하기 위해 나막신까지 준비했다.

다섯 명 뽑는 데 응시자는 무려 15만 8천명이 넘었다. 과거제도는 상놈도 양반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시험을 대신 봐주는 직업까지 생겨날 정도로 부패가 심하였다. 심지어 시험지를 들고 집에 가서 해오기도 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답안지를 그 날 채점하여 그 날로 합격자를 발표하였다. 제대로 답안이 검토될 턱이 없었다.

이승만이 당연히 낙방했다.

캄캄한 밤 이미 성문은 굳게 닫히고, 굽이 높은 나막신을 신은 소년 이승만은 집에 가기위해 성벽을 타고 넘었다. 경복궁 뒤에서부터 도동골까지 힘없이 걸어갈 때 절망감은 어린 소년을 몹시 괴롭혔다.

아버지 어머니 훈장님의 얼굴이 달 속에 나타났다. 달은 이승만을 계속 따라왔고 소년과 같이 울어주었다. 이승만은 소매 깃으로 범벅이 된 눈물을 훔쳤다.

승룡의 어머니는 아랫목에 묻어두었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꺼내 밥상을 차려주었다.
아버지 이경선이 일찌감치 예감하고서도 말했다.

“어찌 되었느냐?”

“......”

“에이 이 녀석......”

그때 승만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아직 저 아이 나이가 어린데 무슨 걱정이세요?”

부패와 부정과 비리와 함께 형식적으로만 치러지던 과거시험의 합격자는 고관들의 자제들에게만 돌아갔고 수많은 응시생은 들러리였다.

이런 폐단이 사라지지 않는 과거시험을 이승만은 무려 열한 번씩이나 보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과거급제만이 망한 집안을 일으킬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그 길만이 오직 꿈이고 희망이었다.

   
▲ 사진@온라인커뮤니티
혼인

이승만의 부모는 이제 나이가 많았다.
김씨 부인이 마흔 둘에 본 외아들이라 후손이 늦어질까 걱정이었다.
이경선이 말했다.

“여보, 용이 장가부터 들여야겠어.”

“......”

“유명한 점집이 어디야?”

점집을 찾은 이경선에게 점쟁이가 말했다.

“후손을 잇고 출세하려면 며느리를 맹인으로 봐야 합니다.”

이경선은 이승만을 앉혀놓고 말했다.

“너는 봉사에게 장가를 들어야 한다는구나.

“예?!”

“그래야 출세한단다.

“......”

말은 이렇게 해 놓고서도 이경선의 심정은 이루 말 할 수없이 착잡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처녀를 찾아냈다. 오른 쪽 눈언저리에 푸르스름한 반점이 있는 박씨 성을 가진 처녀였다.
이경선은 스스로 위안했다.

‘눈언저리 반점이 액땜을 할 것이야..’

이승만은 아내가 될 처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봉사가 어떻게 다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던 이승만은 처녀를 직접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처녀의 집 근처에 숨어서 아무리 기다려도 처녀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던 날 처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이승만이 자신을 보려고 숨어있는 것을 눈치 채고 일부러 문밖출입을 하지 않았던 처녀는, 이승만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뜻밖에 처녀는 봉사가 아니었다. 이승만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더 이상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승만은 열여섯 살에 혼인했다.

혼인 후에도 열심히 공부하여 시경, 서경, 주역, 등의 경서도 거의 완전하게 익혀 열아홉 살까지 계속해서 과거를 보았다.

갑오개혁

1894년 갑오년이었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10년 후 갑오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양반과 상민의 구별이 없어지고 노비제도를 폐지했다. 인신매매를 금지하고 연좌제를 폐지했다. 연좌제는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 질에 따라 그 가족은 물론 먼 일가친척까지 같이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승만의 가족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과거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이경선은 자리에 몸져눕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승만을 앉혀 놓고 목이 메듯 말했다.

“내 스스로 과거에 실패하고 가산을 탕진한 뒤에 늦게 너 하나 얻어서 네게서나 어떻게 입신의 길이 열리는 걸 보려 했더니, 이젠 그것도 다 틀렸구나. 그러니 이제 내게 무슨 보람이 있겠느냐. 어떻게 살든 이제는 구차한 목숨들이 되었다. 내일 나는 황해도 너의 누이 집에나 다녀올까 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딴 생각하지 말고 식구들의 연명책이나 생각해 봐라”

출세 길이 막힌 선비 이승만의 식구는 죽도 거르는 날이 많아졌다.
뜨거운 한 여름 8월 1일, 일본과 청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일본의 압승으로 청나라 세력은 사라졌다.
민초들의 불만이 들불처럼 번지던 동학혁명도 갑오년 12월 전봉준이 체포되면서 마무리 됐다.

배재학당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개화로 다사다난하던 때였다. 서당과 집을 목적 없이 오가는 일밖에 할 일이 없던 이승만에게 서당 친구 신긍우가 찾아왔다.

“세상은 바뀌었어. 개화천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나랑 같이 배제학당에 나가 개화를 배우세. 일어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세. 행여 외국 사신이라도 할 수 있을지 알겠나.”

“뭐?! 그렇게 좋으면 자네나 하게, 나한테 권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게, 그런 말 하려거든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게!”

이승만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긍우는 궁핍한 이승만의 살림살이를 눈치 채고 쌀말과 장작짐을 보내주곤 했다.
신긍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승만을 찾아왔다.

“넌 반역자야! 유학을 멀리하고 천주쟁이가 되라는 건가? 왜놈의 사환이냐? 자네나 하라고! 나는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나의 어머니 종교를 저버리지 않겠네!”

“전보가 뭔지 아는가? 철도가 뭔지도 모르지?”

내로라하는 자제들이 다니는 서당에서도 월등히 뛰어났던 이승만을 떠올리며 신긍우는 이승만의 궁금증을 자극하며 애원했다.

“같이 공부하세.”

며칠 뒤 이승만은 신긍우 형제와 배재학당을 방문했다. 이승만은 신긍우 형제에게 말했다.

“절대 천주학은 하지 않을 테다! 그렇게 알아.”

이승만을 처음으로 친절하게 맞이한 교사는 윌리엄 노블박사였다.
조선말을 하며 악수를 청하는 노블을 보고 악수가 뭔지도 모르는 이승만은 미국인이 하는 이상한 짓과 생김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노블이 소개하는 교실 칠판 옆에 月火水木金土의 요일시간표가 큼직하게 있었다. 이승만은 신긍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게 뭐야. 오행(木 →火→土→金→水) 하나를 똑바로 쓸 줄도 모르고...”

금일대벽성 생구주(今日大辟城 生救主) 라는 금색 글자가 쓰인 비단 폭 아래, 고개 숙이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본 이승만은 소리 내어 웃으면서 “저게 천주학이지?”하자 신긍우는 질색하며 기도하는 것이라 말해주었다.

이승만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말했다.

“아까 노블이란 서양 사람이 조선말을 가르쳐 달라는 말을 했는데 정말일까? 월사금은 얼마나 줄까?”

“서양 사람은 거짓말은 않네. 적어도 생활비야 받겠지. 그러려면 꼭 배재학당에 입학해야 해 그래야 조선말 선생으로도 써줄 테니까.”

배재학당에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승만은 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초급 영어반 교사로 발탁되었다.

배양인재라는 뜻의 배재의 교명은 고종이 지어주면서 학당에 도움을 주었다. 학교 운영은 미국 감리교 선교부에서 보낸 4천 달러로 많은 부분 지탱했다.

이승만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던 예배실에 들어가 모든 것을 면밀히 살펴보기로 했다. 키 큰 아펜젤러가 조선말로 이야기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물론 그 말을 경청하려고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1900년 전에 죽은 사람이 나의 영혼을 구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그런 바보 같은 교리를 믿는단 말인가. 자기들은 믿지 않으면서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게 하려고 왔나보다. 그러니까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만 교회에 가는구나. 위대한 석가모니를 알고 공자의 지혜를 아는 유식한 학자들이야 어디 저런 교리를 믿겠는가...’

이승만은 이렇게 확신하고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알렸다.

“어머니 저는 그들이 하는 말을 믿기에는 너무 총명합니다. 배운 선비가 그들의 교인이 되는 거 보셨습니까?”

이승만은 영어 외에도 역사, 수학, 화학, 자연과학개론, 고대사, 물리학, 정치학을 배웠다. 처음으로 접하는 학문이었다. 오대양 육대주와 조선의 위치를 설명할 때는 정말 신기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또 두각을 나타낸 이승만은 서양 병원인 제중원의 스물여섯 살 난 의료선교사 화이팅양에게 조선어를 가르치고 그녀에게 영어를 배웠다. 서로 가르친 지 한 달이 되던 날이었다. 화이팅 양이 이승만을 불렀다.

“이거 받으세요. 한 달 동안 수고 많이 하셨어요.

파이팅양이 뭔가를 정중하게 내밀었다.
은화20달러였다.

당시 가치로는 쌀 열다섯 말을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젠 굶주리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승만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은화를 쥐고 집으로 달려가는 동안 구름이 실어주는 듯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 앞에 자랑스레 은화를 내 놓았다.
뜻밖에도 어머니는 울면서 말했다.

“아가, 굶어죽어도 좋으니 천주학은 절대 해선 안 된다”

어머니 김씨 부인에게는 장가까지 든 이승만이 여전히 아가였다.

“어머니 저를 믿으세요!”

이승만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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