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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승룡, 건국 대통령 이승만 이야기
남부임 | 승인 2012.03.05 00:41

[남부임, 시민활동가]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능안골에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을 승룡이라 지었다.
승룡의 부모님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이웃과 친지들이 모인 돌날에 아기는 돌상에 차려진 많은 음식과 물건 중 붓을 집어 들었다.

“승룡이 큰 학자 되겠네!”

문인을 가장 높게 평가하던 때라, 이웃과 친지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승룡의 부모님은 승룡이가 태어나기 전에 두 아들을 천연두로 잃었기 때문에 승룡이 더없이 귀하고 소중했다.

승룡이 두 살 때 한양으로 이사를 했다.
승룡의 아버지 이경선은 전국방방곡곡 유람을 즐겼다. 그때는 말이나 나귀뿐이어서 한 번 여행길에 오르면 몇 달씩 걸리고 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눈처럼 새하얀 나귀를 타고 나침반을 보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나면 승룡이 공부는 이경선의 아내 김씨 부인이 매질을 해가면서 가르쳤다.

학습능력이 좋아 승룡이 여섯 살 때 천자문을 뗐다. 그리고 곧바로 동몽선습(童蒙先習;오륜과 조선 중국의 역사)을 익혔다.

김씨 부인은 승룡이에게 한시도 가르쳤다. 귀티가 흐르고 총명한 승룡이 붓을 들고 글을 쓰는 모습을 흡족히 바라보면서 승룡이 임신했을 때, 용이 품안으로 뛰어든 태몽을 떠올렸다.

김씨 부인이 말했다.

“아가, 이율곡의 어릴 때 이름이 현룡이었단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도 태몽에 용을 보았다는구나. 너도 태몽에 용꿈을 꾸어서 이름을 승룡으로 지었지. 율곡은 다섯 살 때 석류에 관한 시를 이렇게 지었단다. ‘붉은 껍질 속에 보석이 부서져 있다’ ”

승룡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듣고 있었다. 김씨 부인은 승룡의 교육에 온 정성을 쏟았다.
승룡은 열심히 글씨를 썼다.
때로 이경선은 동네사람들을 불러서 승룡이 글씨 쓰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우와! 잘 쓴다.”

이웃들도 탄성을 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을 먹고 자라난 어린 승룡은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어린 승룡이 이렇게 시도 지었다.

風無手而撼樹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뭇가지를 흔들고
月無足而行空 달은 발이 없어도 하늘을 간다

승룡이 여섯 살 때 천연두를 앓았다. 그때는 조선 천지를 천연두가 휩쓸었다. 왕세자도 그 해 천연두를 앓았다. 승룡이 다 낫는 듯해 부모는 겨우 한시름 놓을 때였다. 그런데 시뻘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눈을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 다시 승룡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린 승룡이는 두 눈을 감싸쥐고 펄펄 뛰었다.

아버지는 유람으로 집을 떠났고 어머니 혼자 몇 달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좋다는 한약재는 모두 먹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본과 강화도조약(1876년2월)을 체결하여 조선에도 개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친척 이호선이 진고개에 있는 일본인 병원으로 가 보기를 권했다.

“아이고! 으흐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양의까지 찾아야 하다니!”

승룡의 어머니 김씨 부인은 절망감에 휩싸여 통곡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어린 승룡의 눈을 흰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조그만 가마에 쇠약해진 승룡이를 태워 양의에게 보낼 때는 마치 승룡이 죽기라고 한 듯 대성통곡하였다.

김씨 부인은 가마를 뒤쫓다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한없이 눈물을 뿌렸다. 천연두로 이미 두 아들을 잃어버린 두려운 심정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듯했다.

의사는 진찰을 마치고 이경선에게 물약 한 병을 주면서 말했다.

“하루 세 번씩 눈에 넣어 주세요. 그리고 사흘 뒤에 잘 살펴보세요.”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은 승룡이 7번째 생일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승룡의 눈에 글씨를 쓰고 있는 이경선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었다. 승룡은 이경선 가까이 살살 다가가 보았다. 편지를 쓰던 이경선은 먹물이 묻을까 승룡을 멀찌감치 밀어냈다.

이때 승룡이 말했다.

“아버지 보여요!”

이경선은 못 알아듣고 쓰는 글씨를 계속 썼다.

“아버지 보여요!”

“뭐!?”

“이것이 보여? 그럼 내가 들고 있는 이것이 뭐야?”

이경선은 흥분하여 벼루 속에 있던 먹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먹이에요”

“여보! 여보!”

이경선은 아내를 큰소리로 불렀다.

“용이 눈을 떴어! 눈을 떴다구!”

부엌에서 밥을 짓던 김씨 부인이 놀라 신 벗는 것도 잊은 채, 방에 뛰어들고서야 신을 확인했다.

“이건 뭐야?”

“어머니신발이에요”

“아이구, 우리 용이 살았네! 용이가 살았어!”

이경선 부부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뻤다. 김씨 부인은 승룡을 얼싸안고 울었다.
이경선은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아들 승룡의 손을 잡고 일본인 의사에게 찾아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식이 눈을 떴습니다. 무엇으로 보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의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달걀 꾸러미를 일본인 의사에게 내밀었다.

“아닙니다. 댁의 아들이 나보다 더 달걀을 먹어야 합니다.”

일본인 의사는 극구 사양했다.

승룡은 풍물패 남사당이 나타나기만 하면 그들을 종일 따라다녔다.

“사당패 돈이야! 얼쑤~”

어느 날 신명나게 흥을 돋우던 풍물패 남사당을 집에 와서도 흉내 내던 승룡을 이경선이 눈을 부라리며 불렀다.

“용이 회초리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너라!”

아버지는 승룡을 용이라 불렀다.

김씨 부인은 문밖에서 가슴을 졸이며 어린 승룡이 매 맞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루는 친구 덕제와 함께 담배쌈지에서 몰래 담배를 꺼내 골통대를 만들어 둘이 숨어 앉아 한없이 빨았다. 저녁밥을 먹으려고 밥상 앞에 앉은 승룡이 구토를 하자 담배냄새가 났다.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에게 호되게 매 맞은 뒤로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덕제와 승룡이 같이 자다가 이부자리에 덕제가 오줌을 쌌다. 둘은 키를 쓰고 정경부인 댁에 소금을 얻으러 가야 했다.

어린 승룡은 공부할 때와 잠잘 때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밖에서 놀았다.

산과 들로 뛰어다녔다.
팽이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주사위놀이, 장기놀이, 도미노놀이, 썰매타기, 사방치기, 술래잡기, 숨바꼭질이며 각종놀이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연날리기를 하면 혼자서 몇 시간씩 하곤 했다.

승룡이 이 무렵 일곱 살 때 처음으로 서당에 다녔다. 열심히 공부했다. 의문이 나면 훈장이 귀찮아할 정도로 파고들었다.

훈장은 대신으로 퇴직한 이건하였고 그의 조카 범교를 가르치기 위해 문을 연 서당에 다니게 된 것이었다. 염동에 있는 승룡의 집에서 서당은 너무 멀어 낙동으로 이사했다.

동네 양반집 아이들 이삼 십 명이 모여 공부하는 이곳에서 승룡은 번번이 장원을 하였다.
승룡이는 어머니에게 배운 천자문과 동몽선습에 이어 통감절요를 공부했다.

“저게 건성으로 외우고 종알거리는 것은 아닐까요?”

이경선이 훈장에게 물어보았다.

“천만에요 저 아이는 중국 양태부 가의가 상소한 것뿐만 아니라 가의의 집안내력까지 알고 있소 심심하면 직접 물어보시지요”

가의(賈誼)는 중국 漢나라 문제(文帝)의 아들 양왕의 태부(스승)였다. 그는 시문(時文)에 뛰어나고 여러 학문에 정통하여 20세 최연소 박사가 되었고 文帝의 총애를 받았다.

진나라 때부터 내려오는 율령(律令), 관제(官制), 예악(禮樂), 등의 제도를 개정하고 정비하기 위해 많은 의견을 상소하였으나, 고관들의 시기로 벽에 부딪혔다. 가의는 33세로 생을 마쳤다.

범교네 서당으로 불려진 이곳에서 이승룡은 일등을, 이범교는 꼴등을 했다. 별명붙이기를 좋아했던 아이들은 승룡이를 용보(龍甫)라 불렀고 범교는 범보(凡甫)라 불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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