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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의 인내심,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한다.
최성환 | 승인 2024.01.10 22:46
영국 유력 일간지 더타임스에서 발표한 올해 스포츠계 10대 파워인물로 메시·오타니 등과 함께 선정된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 출처 : 더타임스
감격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최성환 칼럼니스트]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던 리그오브레전드 최대 축제인 2023 롤드컵 결승전에서 한국리그(LCK) 소속의 2시드의 T1(SK스퀘어와 컴캐스트 합작 회사)이 중국리그(LPL) 소속의 4시드의 웨이보 게이밍을 상대로 3:0으로 이겨 우승했다. 당시 경기장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치인을 비롯해 연예인, 인플루언서 같은 유명인사들이 참석했었고 경기 후에 우승했던 T1을 축하했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에서도 축전을 보냈다.
 
필자처럼 예선부터 대회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마터면 한국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4강에 중국리그 팀들로 가득찰 수 있다는 아찔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4시드의 디플러스 기아는 16강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한국리그 팀 중 가장먼저 탈락했다. 가관은 1시드로 가장 기대했던 젠지 e스포츠(삼성 갤럭시 후신)는 8강에서 코치진과 선수들의 안일한 밴픽 전략(바둑의 포석, 스타크래프트의 빌드 개념)으로 중국리그 2시드인 빌리빌리 게이밍에 패해 탈락했다. 다음 날 같은 8강에서 3시드의 KT 롤스터는 중국리그 1시드로 우승 유력후보였던 징동 게이밍에 분전했지만 기본 체급 차이는 어찌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래서 당시 남은 건 2022년 롤드컵 준우승과 2023년 LCK 양대 시즌 모두 준우승을 기록한 T1에 모든 희망을 걸고 중국리그 3시드인 리닝 게이밍을 이기고 롤드컵 4강이 LPL 내전이 되는 비극을 막아주길 바랐었다.
 
롤드컵에서 우승한 T1이 우승컵인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승리에 대한 간절함은 잠시동안의 비토 정서도 사라지게 한다.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다. 만약에 이준석이 대선 유력 후보가 되어 유력한 상대 경쟁자가 이재명이라면 보수성향 유권자들은 이준석을 욕했던 사람들도 이준석에 투표한다는 것이다. 이건 유승민을 대입해도 어울린다. T1은 한국에서 가장 우승을 많이한 프로팀이며 롤드컵도 단일팀으로 이번 시즌 포함 4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팀이다. 그 다음이 삼성 시절 2회 우승했던 젠지이며, LCK 소속 중 나머지 1회 우승팀은 담원 게이밍 시절 우승한 디플러스 기아와 작년 T1을 꺾으며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신드롬으로 월드컵, 한국시리즈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유행했던 페이커의 마포고 동창이자 라이벌인 데프트가 소속된 DRX였다.
 
그래서 T1은 팬도 많지만 안티도 많다. T1은 SK텔레콤 소속이었던 SKT T1으로 임요환 등이 중심이 된 스타크래프트 프로팀을 창설하였고, 2013년 리그오브레전드 프로팀을 창단하는 과정에서 아마추어 랭킹 1위였던 페이커를 창단 멤버로 영입한 e스포츠에서는 근본을 중시한 듯한 미국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같은 팀이었다.
 
최고의 인기팀을 싫어하는 요인 중에는 선수에 대한 비호감은 없는데 극성팬들의 극성맞은 행동에 질려버린 게 강했다. 필자도 해당되는 얘기다. 필자가 롤드컵에 대한 글을 이번에 처음 쓴 게 아니다. 2016년도에 자유기업원, 미디어펜에서 ‘자본이 많은 중국의 e스포츠는 왜 세계와 격차가 벌어졌나?’로 당시 중국 프로구단들의 선수영입에만 치중한 발전없는 모습을 비판하는 게 주였으며 이 당시 우승팀이었던 T1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았다. 2020년도에는 푸른한국닷컴에 ‘E스포츠 최대 축제, 롤드컵 우승이 정치권에 주는 의미’로 지난 2년 동안 중국 팀들에 넘어갔던 우승컵을 되찾은 담원 게이밍에 대해서는 크게 다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T1과 페이커의 경쟁팀과 라이벌들에 대해 응원했던 필자도 살면서 처음으로 T1을 열정적으로 응원했었다.
 
프로팀은 단일 국적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국리그는 PC방으로 다져진 자연스러운 유스시스템으로 인구 수에 비해 유망주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국내 팀에서는 주전으로 뛰지 못해 북미, 유럽, 동남아, 터키, 중남미 등으로 나가는 경우 또는 일부 중국 팀들의 좋은 선수 빼가기로 스토브리그가 유독 뜨거운 리그이다. 역대 중국리그 팀들이 도합 롤드컵을 3번 우승했는데 5:5 경기에 한국인이 2명씩 있었다. 그래서 작년 항저우아시안게임 때 전력분석관으로 참여한 전 프로게이머 김동하 선수는 과거 연습 도중 채팅창에 ‘4 chinese can’t win’(중국인 4명으로는 우승 못 한다)이라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는데 현재까지도 틀린 말은 아니다. 2시드 빌리빌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팀들은 한국리그에서도 주전으로 뛸 수 있거나 에이스였던 선수를 뽑아가는 등으로 1~2명의 용병이 있었다. 중국 공산당 정부 아래의 중국인들은 한국인을 무시하면서 자신들이 필요하니 한국 용병 영입 등 투자를 통해서 한국리그와의 격차를 좁혔고 대회가 시작한 지 8년 만인 2018년도에 처음 우승했는데 4강 4팀 모두 중국리그 팀이라면 한국 용병 핑계는 더 이상 댈 수가 없었다.
 
당시 T1은 8강에서는 3:0으로 한국인 선수가 2명 포함된 리닝 게이밍을 압도적으로 이겼다. 문제는 4강 징동 게이밍과의 경기였다. 징동 게이밍도 한국인 용병이 2명이었으며 이들은 작년 9월말에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단일국적으로 하는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과의 차이가 크게 나지만 프로팀에는 용병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T1도 페이커를 포함한 국가대표 선수가 3명 있었지만, 징동은 중국 최강팀답게 중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들도 있었다. 선수들이 다 잘했지만 최고령 노장인 페이커의 임팩트있는 활약으로 징동을 3대1로 이긴다. 이창호 9단의 상하이대첩의 재림같았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게임 캐스터를 20년 넘게 했던 전용준 캐스터는 경기 시작 전에는 선수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어 멀리서 보였는데도 인사조차 안 했다는 중계하고, 경기 이후에는 카메라가 켜진 것을 모르고, 휴지로 눈물을 연신 닦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국방TV 인기 프로그램 <본게임> 진행자로서 캐스터로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텐데 해당 경기가 간절했음을 알 수 있다. 울고 있는 손흥민 옆에 찾아가던 문재인 대통령이나 루틴을 중요시하는 메이저리그 투수 중 재기하던 류현진 선수와 공개적으로 만난 오세훈 서울시장과 비교해보는 등 여러 감정이 들었다. 웨이보와의 결승은 웨이보 자체가 중국에서 가장 약한 팀이라 경기 내용 자체는 T1의 일방적 승리라 감흥이 없다.
 
‘불사대마왕’ 페이커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얼마 전 강남의 유명한 호텔에서 한부모가정 관련된 일을 하는 지인을 만났다. 집에 할머니가 있는데 어머니가 없으면 한부모가정에 해당되냐는 질문을 했더니 해당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페이커를 알고 있냐니까 페이커를 안다고 답변했다. 한부모가정 관심 가지려면 페이커가 홍보대사같은 것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페이커의 어머니는 그때 집을 나간 것을 후회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식이 2030 세대의 살아있는 우상 중 하나인 것도 얼마나 명예로운 것인가? 그렇게 페이커 가족은 15평에 할머니, 아버지, 동생과 함께 생활하던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중학교 때도 내신 상위 1%였으며 우연히 아버지께서 구매한 컴퓨터로 즐기던 게임은 그저 취미였다. 게임에 재능있는 것을 본 고등학교 선생님이 부친을 설득해 프로게이머의 길을 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손주가 게임을 한다고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손주를 응원했으며 페이커의 독서 습관은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페이커는 신인 때부터 국내에서 제일 잘했던 상대 프로게이머를 일기토 상황에서 이기는 등 데뷔 2시즌 만에 국내리그 우승 및 첫 세계대회인 롤드컵에서도 우승하는 소위 로열로드를 걸었다. 그러나 그도 이후 2~3번의 시련이 있었다.
 
처음은 우승한 이듬해 2년차 징크스였다. 사실 페이커 본인보다 팀원들이 2013년 롤드컵 우승 이후 한국리그 팀 최초의 우승에 바로 이어진 2013-2014 윈터시즌마저 우승했으니 안일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2014년도에는 국내리그 우승은커녕 롤드컵 시드도 받지 못했다. 결국 자신들이 이겼던 경쟁팀 삼성이 와신상담하여 우승한 것을 봐야했다.
 
그러나 2015년도에 멤버 리빌딩으로 첫 시즌보다 더욱 전성기를 맞았으며 2017년도까지 지속되었으나 2018년도에 고꾸라지며 팀도 다시 롤드컵에 올라가지 못하였다. 이듬해인 2019년도에 T1은 다른 팀들의 유망주나 핵심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여 슈퍼팀을 만들어서 국내리그 우승 후 롤드컵에 출전했으나 유럽리그 최강팀인 G2에 발목잡혔으며 페이커는 이 경기에서 부진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2020년 롤드컵 우승팀인 담원의 코치였던 양대인 감독이 임명된 후였다. 감독이 능력 있는 사람은 맞으나 흔히 말하는 자기가 선호하는 옷을 강제로 맞지도 않는 선수들에게 입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경험많은 명장들은 그 팀에 맞는 전술 훈련을 하는 등 픞랜 B를 갖고 있지만, 능력에 비해 경험이 짧은 감독들의 함정이 플랜 A를 고집하다가 선수와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2021년도에는 돌림판처럼 고정되지 못한 10인 로스터 체제였다. 프로야구도 고정된 선발로테이션이 있듯이 출전 선수가 고정되지 않으면 훈련 집중도가 낮아지고 선수의 불안도 커진다.
 
T1 팬들에게는 2021년도가 가장 힘든 해였고, 해당 감독은 사퇴 후 친정팀인 담원의 전력분석관으로 복귀하여 그해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2021 롤드컵 4강에서 T1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데 기여한다. 저 당시 T1 팬들과 담원 팬들이 서로 인터넷에서 싸웠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이전 해만 해도 중국으로부터 담원 게이밍이 우승을 되찾길 기원하며 요번 롤드컵의 T1처럼 하나되어 응원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이었다.
 
2022년 선수단을 정리하고 전임 감독이 조합하지 않은 선발라인업으로 스프링 시즌 우승과 서머 시즌 준우승으로 재기한 T1과 페이커는 롤드컵 결승에 17년도 이후 5년만에 올라갔지만 필자가 응원했던 DRX와 데프트의 중꺾마 등의 기세로 인해 3:2로 패한다. 작년 양대 시즌 모두 젠지에 밀려 준우승을 했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선발이 됐지만 주전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선수가 망해가던 LCK의 자존심을 구한 것이다. 한참 선배인 임요환과 비교해 페이커의 앞서는 부분은 최고의 기량을 10년 넘게 유지하는 중이다. 페이커는 2세대 프로게이머이다. 1세대가 한국 출시 전 해외 서버에서 게임하던 고수들이 주로 프로게이머가 된 것이라면 페이커는 국내 출시 후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본격적인 선수 빼가기가 시작된 이후인 3세대와 중국 프로팀이 기어이 우승하여 한국리그의 독주를 깨고 중국리그의 메타를 받아들인 2부리그 팀들이 1부리그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의 4세대에도 페이커는 중요한 경기조차 여전한 기량이다. 선수 생명의 평균을 무시하는 그를 괜히 ‘불사대마왕’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 선수보다 못한 근래의 정치인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손학규 영입 얘기가 돌았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한나라당 측에서는 “정치가 무슨 스포츠 스카우트냐”는 비슷한 투의 반박을 봤었던 것 같다. 결국 손학규 도지사는 정당을 옮겼지만 정치권이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던 시절이다.
 
사실 스포츠 선수는 거의 대다수가 방출이나 이적을 당하는 것이지 멋대로 나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페이커처럼 입지가 구축되고 팬도 많은 선수는 방출이 쉽지 않은데 페이커는 아까 말했듯이 슬럼프에도 꿋꿋하게 팀에 남아서 부활한 사례다.
 
근자에 들어 정당을 쉽게 옮기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과거에는 김영삼 등 거물 정치인이 주도하여 합당이나 통합하는 일이 많았는데 현재는 쉽게 탈당하고 쉽게 입당하는 일을 많이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안철수 교수의 정치입문 이후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철수의 창당, 입당, 탈당 등으로 기존에 민주당과 보수정당 사이에는 서로 오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안철수의 제3지대 형성은 정당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무제한 와이파이가 보급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뜬금없이 탈당을 주도한 김무성, 유승민이나 오늘 이재명과 뜻이 다르다며 민주당을 탈당한 원칙과 상식이나 다들 페이커보다 못하다. 페이커처럼 내부투쟁하여 입지를 재구축하면 될 것을 둘 다 내부투쟁하기 싫어하는 게으름에서 비롯한 패착이라고 본다. 청년 정치인들이여! 페이커의 시련이 당신들보다 더했겠냐?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최성환  gogodu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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