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2020년 9월 서해에서 공무원 A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사건과 관련, 16일 '자진 월북'이라던 과거 입장을 뒤집고 "자진 월북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진실 규명을 원하는 유족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이날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해양경찰청이 중간수사 결과 당시 A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한 것도 군의 판단 등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군의 성급한 '자진 월북' 판단으로 초래된 혼선에 대해 1년 9개월이 지나 사실상 사과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군은 A씨 실종 사흘 뒤인 2020년 9월 24일 브리핑에서 SI(특별취급첩보) 감청과 해경이 파악한 내용을 토대로 A씨가 자진해서 월북을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A씨가 ▲ 구명조끼를 착용했고 ▲ 선박에서 이탈할 때 자신의 신발을 선박에 벗어놨으며 ▲ 해상에서 소형 부유물을 이용했고 ▲ 북한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자진 월북 시도를 뒷받침하는 사실로 제시했다.

이 중 앞의 3개는 자진 월북 시도의 '정황 증거'의 성격이며, 핵심은 북한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이다.

당시 군은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실종 이튿날인 9월 22일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이 '기진맥진한 상태의' A씨를 처음 발견했고,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북측 인원이 실종자에게 접근해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경위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군 관계자는 밝혔다.

군은 이 상황을 SI 등을 통해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그해 10월 국감에서 군이 포착한 정보에 '월북'이란 단어는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북한 선박이 육상의 해군부대에 보고한 내용을 감청한 첩보에 '월북'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도 국방부에 대한 국감에서 '(A씨가) 북한 수산사업소 부업선에 월북 얘기를 한 것이 맞냐'는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 질문에 "최초에 그 배가 발견했고 거기서 검문이나 탐문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배하고 (월북 의사를 표명한) 내용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한 바 있다.

A씨가 육성으로 '월북'을 말했는지, 아니면 북한 선박이 육상의 해군부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임의로 '월북'이란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SI에 나온 '월북' 단어를 우리 군과 정보 당국이 A씨의 자진 월북으로 속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군은 당시 '자진 월북'의 근거로 삼은 자료에 대해 이번에 해석을 바꾼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성구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근거자료에 대한 해석을 바꾼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그때 당시도 A씨가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있다고 했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정황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답했다.

당시에도 '자진 월북' 정황이 있었다고 했을 뿐이며, 그 판단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국방부는 이날 입장문에서 "국방부는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해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국방부의 A씨 '자진 월북 시도' 판단이 타당했는지를 확인하려면 당시 SI 감청 내용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유족은 이에 따라 감청 자료 공개를 요구했으나 군은 사건 당시 취득한 SI 정보가 우리 군과 미군 정보자산에 의한 것이었기에 섣불리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감청한 북한의 통신 채널이 노출될 경우 안보에 미칠 부작용도 우려해 공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국방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각하하거나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재판부가 군의 공개 불가 논리를 수용한 것이다.

대선 공약으로 정보공개를 약속한 윤석열 대통령의 결정으로 국가안보실과 해경이 정보공개청구소송의 항소를 포기했지만, 군의 감청 정보는 소송 결과에 따라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사건의 실체와 정부 대응의 배경 등을 드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보실 자료 역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현재로선 공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A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는지 등에 대한 실체 파악은 북한과의 공동조사를 통해서야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사건 발생 이후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남북 공동 재조사 등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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