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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의 임진왜란 이야기]22.알려진 역사, 알아야 할 역사 ②
박희봉 | 승인 2021.07.18 02:43
사진출처@'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
2. 일본군 사망자는 어느 정도일까?
 
[박희봉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임진왜란 중 참전 일본군수와 사망자수를 살펴볼 때 일본군은 임진왜란 전쟁 과정에서 얼마나 큰 손실을 보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표 6-5>는 임진왜란 중에 조선에 건너온 기록이 분명한 일본군의 수를 바탕으로 1592년 4월부터 1593년 6월까지 1년 2개월 간 사망한 일본군수를 부대별로 추정한 것이다. 지역은 이 기간 중 일본군 부대가 주로 전투를 벌인 지역이며, 해상은 일본 수군이 사망한 지역을 나타낸 것이다. 물론 해전에서 수군뿐만 아니라 육군도 전사했다.

하지만 이 표에서는 부대 편제를 중심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해상에서 전사한 육군의 수는 나타나지 않고, 각 부대별로 산정하였다. 기타는 조선에 건너와 전투는 벌인 기록은 있지만 어디에 주둔했는지가 불분명한 부대로 10번대에서 15번대와 번외2번의 나고야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알려진 예비부대이다. 이 예비부대의 일부는 경상도 지역에서 전투를 벌인 기록이 있는 부대도 있고, 전투를 벌인 장소의 기록은 없지만 지휘관이 조선에 참전한 기록이 있는 부대도 있다.

이렇게 조선에서 확실히 참전한 기록이 있는 일본군수는 22만 4,774명이고 이들 중에서 임진왜란 초 1년 2개월 동안 사망한 일본군은 10만 86명에 달한다. 전체 파병 인원의 44.52%에 달한다. 지역적으로는 임진왜란 초기부터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됐고, 2차 진주성전투가 치러졌던 경상도에서 가장 많은 일본군이 사망했다.

사망률로는 부산성전투를 비롯하여 4차례 평양성전투를 치른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한 일본군 1번대가 60%가 넘었다. 또한 일본군의 사망자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나타난 것은 조선 8도 전역에서 조선군이 국가와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하게 일본군에 대항했던 사실을 잘 보여준다.
 
<표 6-5> 지역별 일본군의 참전수와 사망자수 (1592년 4월 &#8211; 1593년 5월, 1년 1개월 간, 2차 진주성전투 이전까지).출처@'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
더욱이 1593년 6월에 벌어진 2차 진주성전투를 감안하면 일본군의 사망자와 사망률은 더 증가한다. 즉 2차 진주성전투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3만 8,000명을 더하면 13만 8,086명이 되며, 이것은 임진왜란 참전이 확실한 일본군 22만 4,774명의 61.43%가 된다.

22만 4,774명의 임진왜란 참전 일본군 중에 2차 진주성전투가 끝난 후에 사망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도 살아서 일본 땅으로 돌아간 일본군은 8만 6,688명에 그친다.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군의 인적, 물적 피해도 엄청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 6-6> 임진왜란 일본군 사망자 (1592년 4월 &#8211; 1593.출처@'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
이상의 임진왜란 중 일본군 사망자의 추정치는 2차 진주성전투가 끝난 지 3년 6개월 후에 재차 발생한 정유재란에서 동원된 일본군 총수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즉 1593년 6월 조선군과 일본군 간의 전투가 사실상 종결된 후 살아남은 일본군 병력수는 8만 6,688명, 나고야에 대기하고 있던 예비대 병력수는 6만 2,066명으로 이를 합하면 14만 8,754명이다. 1597년 1월 정유재란에서 동원된 일본군 병력수는 141,490명이다.

정유재란이 3년 6개월 동안의 휴전상태 이후에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 동안 성인이 된 일본인을 더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화의조건에 대해 불같이 흥분하여 전군을 최대한 동원한 병력수가 임진왜란에서 살아남은 병력과 예비 병력을 합한 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임진왜란 과정에서 실제 사망한 일본군수가 더 많았음을 방증한다. 즉 본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위해 동원한 본대와 예비대의 전병력 286,840명 모두가 조선에서 전투를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에서 살아남은 일본군수 8만 6,000여명을 감안하면 임진왜란에서 사망한 일본군수는 20만명에 이른다.

이러한 일본군의 사망자수는 임진왜란 과정에서 조선군과 조선백성이 얼마나 치열하게 침략군에 대항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일본 입장에서는 무모한 임진왜란을 일으켜 이웃 나라를 침략함으로써 국력을 소진하고 민생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군과 백성은 임진왜란 과정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본군은 평화로운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엄청난 사망자를 내며 퇴각한 것이다.
 
박희봉 교수는 조직론, 리더십, 사회자본 등을 강의하며 연구하고 있다. 특히 ‘사회자본’이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라는 관점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주요이력: 한양대 행정학과,한양대 대학원,Temple University 박사,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현 중앙대 사회과학대학장 겸 중앙대 행정대학원장.[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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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  hbpark@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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