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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시절(落花時節)은 가고 있다
김성춘 | 승인 2020.05.26 22:05
올 5월은 유달리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거세다.

이 비바람에 그나마 이 산 저산 마지막까지 피어있던 꽃들마저 져버릴 것을 생각하니 이제 봄도 막바지에 온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우리나라의 봄은 「고향의 봄」 노랫말에서 보듯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가 산야山野)를 물들였다. 겨우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매화가 피었지만 흔한 꽃이 아니었기 때문에 봄은 꽃의 계절이 되었고, 봄꽃은 지는 줄 모르게 지는 것 아니라 비바람의 심술에 지기 때문에 봄날은 낙화시절(落花時節)이 되었던 것이다,
 
낙화를 보면 사람들의 근심이 커진다.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시인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거니까.
낙화는 또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그것이 조지훈의 「똑똑 떨어지는 낙화」든 이형기의 「분분한 낙화」든」-
 
나는 오늘같이 낙화시절이 되면 옛 가락 옛 향기에 취해서 잠시 눈 감고 뒤뜰을 거닐고, 자연스레 「낙화시절」이란 시어(詩語)가 나오는 두보의 시 한 수를 떠올린다.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다. 江南逢李龜年 」라는 제목의 시다.
 
기왕의 저택에서 그댈 자주 보았고      岐王宅裏尋常見
 최구의 집에서도 몇 번 노래 들었지요. 崔九堂前幾度聞
 지금 강남은 화려한 봄빛                  正是江南好風景
 낙화시절에 또 그댈 만났군요.            落花時節又逢君
 
 어찌 여인의 아름다움만 눈멀게 하고. 어디 일성호가(一聲胡歌)만 장부의 애를 끊는단 말인가. 낙화시절도 사람을 눈멀게 하고 장부의 애를 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시만큼 인생유전(人生流轉)을 잘 드러낸 시도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때가 있고, 어느 한 시기가 있으며, 어느 한 시절이 있으면 그 반대도 있는 법.
 
이 시는 기승전결로 이루어지는 오언절구의 형식을 빌렸고. 두보는 이 시를 지은 다음해 서기 771년 나이 59 세로 강을 오가는 배위에서 죽는데 , 자기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해서 더욱 읽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이 시의 진수는 비평가들이 얘기하듯 호풍경(好風景)과 낙화시절(洛花時節)이라는 언어의 병렬과 대립을 통해서 긍정하고 부정하고 또 긍정함으로써 영광 끝의 비애, 찬란한 슬픔에 빠지게 하고, 언밸런스의 가중과 모순의 확대로 인해 사람이 복합적 상념에 잠기게 한다는 것이다.
 
과연 노가객(老歌客)과 노시인의 만남은 어땠을까. 아직도 옛 명성에 집착하는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꽃이 피면 지듯 순명(順命)하는 것이었을까.
 
「부유한 늙은이, 가난한 젊은이보다 못하다.」고 후대(後代) 시인은 말했는데, 두 사람은 부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늙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두 사람은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임을 뼛속 깊이 느꼈을까?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의 경우, 작가가 사람들을 얄궂게도 스쳐 지나가게 장치를 하는데,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이 시는 글자 밖의 글자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이 하필 낙화시절인 것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것처럼.
 
어느 누구는 「우리가 과학을 추구하는 목적은 사물의 진면목을 되돌려주는데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시야말로 가장 이 말에 부합하면서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장르이리라.
 
비록 내 앞에서 낙화시절은 지나가지만 마음 속 낙화시절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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