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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의 임진왜란 이야기] 9. 제2기(1592. 6. - 1592. 10.) 조선군의 반격①
박희봉 | 승인 2019.09.13 19:53
조선군의 반격.
일본군의 조선 8도 점령 계획
 
박희봉 교수
[박희봉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일본군은 평양성을 함락한 6월부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작전명령에 따라 조선 전체를 경영하기 위해 각 부대를 조선 8도에 분산 배치하였다.

1592년 5월 13일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군 장수들에게 조선의 각도를 점령토록 하고 조세(군수물자)의 조달량을 할당하는 문서 하달에 따라 일본군은 조선 8도에 각각 배치됐다.

각 도에 분산 배치된 부대에 할당량이 정해졌고, 전체 조달량은 1,191만 6,186석이다. 이같이 한양성 점령 이후 일본군의 각 부대를 조선 8도로 배치하고, 각 지역별 조달물량까지 정한 것은 그가 한양성 점령 이후 조선 8도가 실질적으로 점령될 것이고 생각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 8도 지역별 일본군 배치 및 조세 조달량.출처@'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
실제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해 조선 백성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지시도 하였다. 그는 조선 각 지역의 농민들을 마을로 복귀케 하여 안심하고 살게 할 것, 법규를 제정해 줄 것, 군량을 점검하고 비축할 것 등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에 대한 지배는 조선백성에 대한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조선백성은 점령군에게 절대 항복한 일본인과는 전혀 달랐다. 조선백성은 수나라와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고구려백성, 그리고 세계 최강 몽골군대에 30년 이상 저항한 고려백성과 같이 침략군인 일본군에 대해 초기부터 저항하였다. 일본군은 조선 땅에서 명나라를 침공할 병력도 병량도 확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주둔지에서 조선백성과 예상하지 못한 전투를 치러야했다.
 
1차 평양성전투 이후 조선 조정의 대책
 
6월 15일 평양성이 함락된 후 국왕인 선조는 적극적으로 전쟁을 지휘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다음의 몇 가지 조처를 단행했다.

첫째, 종묘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국왕인 선조와 왕세자인 광해군으로 조정을 분조하였다. 선조와 광해군이 모두 왕권을 가지고 일본군의 침략에 대응하겠다는 의도이다. 국왕인 선조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광해군이 왕권을 이어받아 조선의 정통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선조는 의주에서 전국 각 지역에 초유사를 파견하고, 전국 지역별로 서신을 보내 조선백성들에게 거병할 것을 촉구했다. 선조의 명을 받은 초유사들은 전국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관군과 의병간의 역할을 조정하였으며, 각 지역의 병력과 병량을 배분하였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3도에서 국왕의 생사와 왕명의 내용을 모를 것을 염려하여 대사헌 윤승훈을 바닷길로 호남에 보내어 조정의 명령이 하달되도록 하였다.

셋째, 선조는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봉기한 의병 부대를 국가의 정식 군대로 인정하였고, 의병부대장은 관직을 제수하였다. 이로써 의병부대도 관군으로부터 무기와 식량을 지원받고, 심지어는 지역에 조세를 징수함으로써 병량을 자체적으로 보급할 수 있게 하였다.

넷째, 세자인 광해군은 조선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병사와 군량을 모집하였다. 또한 세자도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하여 군대를 조직화하였다. 세자는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격문을 띄우고 백성들에게 거병하도록 했다. 이때 광해군은 평양에서 임금과 작별하고 영상 최흥원 등을 거느리고 영변을 들르고 정주로 갔다. 황해도를 지나 강원도를 향하여 가다가 이천에 머물렀다. 이천에서 곡산, 강동, 성천을 거치고, 성천에서 영변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등 일본군 점령지를 뚫고 군대를 모으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조처는 병농일치의 군사제도를 시행하는 조선의 당연한 절차였다. 이 같은 조정의 대책에 따라 각 지역의 조선백성은 자발적으로 조선군과 의병에 참여하였다.

따라서 일본군에게 침략당하지 않은 지역의 고을 수령 중심으로 관군이 재편되어 대일본군 항쟁이 지속되었으며, 전국의 조선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유격대를 편성하여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지역의 사족은 거느리던 가족과 노비 중심으로 거병하고, 개인 재산을 내놓아 병량을 마련하였으며, 인근 지역의 유력인사들에게 함께 의병을 규합하자는 통문을 돌림으로써 병력을 충원하고, 인근 지역민 및 유랑민, 유랑 군사를 병합함으로써 군대가 대규모화 하였다.

이로써 임진왜란은 이로써 조선관군과 일본군의 전투로부터 전체 조선백성과 일본군 간의 전투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본 매체는 박희봉 교수의 저서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를 발췌 1주일에 두 번 연재하고 있습니다.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는 국가통합을 위한 사회자본의 역사적 상징 모델을 진주성전투에서 찾던 중 발견한 임진왜란 전사의 왜곡과 역사의 진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박희봉 교수는 조직론, 리더십, 사회자본 등을 강의하며 연구하고 있다. 특히 ‘사회자본’이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라는 관점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박희봉 교수: 한양대 행정학과,한양대 대학원,Temple University 박사,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현 중앙대 사회과학대학장 겸 중앙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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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  hbpark@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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