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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에 100년 넘은 한국산 제품이 있다?
최성환 | 승인 2019.06.16 23:34
홍콩 시위가 우리나라로부터 받은 영향은 그 이상이다.

[최성환 빅픽처 대표]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8년도에 대학교에서 ‘생활경제’라는 교양 수업을 듣던 일이 있었다. 교수가 처음에 다가가기 힘든 까칠한 스타일이었지만 말을 재미있게 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광우병 파동 논란으로 촛불 시위가 진행 중이었고, 현재는 홍콩 시위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국이지만 그때는 티베트에서 중국에 대항하는 독립 운동이 발발하기 시작했었다.
 
하필 그 당시 수업 내용이 수출과 수입 부분이었는데 교수님이 이와 관련해서 농담을 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교수님은 “티베트에다가 우리나라 집회 문화를 수출하면 시위가 발전할 것이다.”라며 시작을 하더니, “중국 정부에는 우리나라 경찰들의 시위 진압하는 방법을, 티베트에다가는 시위하는 방법을 수출하면 된다.”며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농민들 WTO 관련해서 전 세계를 누비며 분신도 하고 죽창도 휘두르며 모두가 관우, 장비, 조운 심지어 하후돈처럼 현지 경찰들 앞에서 무쌍을 보여주지 않는가?
 
죽창들 힘이 없으면 화염병을 던지며 황충 저리가라 할 원거리 지원 사격도 어마무시한 주몽의 후예이자 양궁 및 사격 강국 대한민국 아닌가?
 
소드마스터 척준경과 보우마스터 이성계라는 걸출한 영웅이 나왔고 현재도 각각 서양 제국주의 국가였던 프랑스, 영국이 종주국인 펜싱과 양궁에 거의 유일한 식민지 출신의 강국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닌 철저힌 준비되었던 DNA가 빛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물론 역사적으로 집회라는 가장 오래된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부터 해외에 수출된 것이 아니었다.
 
가령 구한말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컴퓨터가 가정에 상용화되기 어려웠던 에니악 시절을 연상되게 한다. 그들은 우선 스스로가 폐쇄성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단합력이 좋아서 초기에는 연전연승을 하여 당시 조선 정부와 휴전도 하였다. 그러나 외국 군대가 들어오고 전력이 강화된 관군 쪽에 비해 그저 동학 신자들 아니면 천주교 신자마저도 배척하던 그들은 결국 시대의 흐름을 뒤쫓지 못하여 우금치에서 비극을 맞게 된다.
 
10만 명이 총알을 피한다는 부적을 달고 ‘시천주 조화정’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근접 무기를 들고 돌격을 하다가 몇 만 명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주문을 외우면 총알이 피한다는 것은 마치 사이비 종교에서나 볼 법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동학농민운동은 수출하면 안 되는 불완전한 제품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당사자의 부친인 박성빈이라는 몰락 양반이 동학에 개입해서인지 몰라도 이 당시에는 동학혁명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3.1 운동 사진@온라인커뮤니티
동학이라는 단일 종교라는 한계와 농민이라는 계층의 한계를 뛰어넘어 좀 더 광범위하게 확장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벌어진 3.1운동인 것이다.
 
영화 <아이언맨 1>에서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을 만들어 전설의 시작을 알린 것처럼 3.1운동은 100년 수출품이라는 현재진행형 전설의 시작이었다.
 
3.1운동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이 참여하여 특정 종교 운동이라는 프레임에서 탈피했으며 농민층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지식인층에서부터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계층이 참석한 것이다.
 
적을 규정하는 것도 관군과 일본군 모두에서 일본으로 나라가 완전히 넘어간 이 시기에는 일본이라는 국가만 적으로 규정했기에 피아식별이 이전보다 분명해진 것이다.

이보다 바로 10년 전만해도 서울로 진격을 앞두고 신돌석처럼 양반 아닌 의병장은 빠지라느니 총대장인 누구는 갑자기 가족이 상을 당했다고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효자마냥 경조사를 치루는 등 공동체라는 의식이 없었는데 비해 이 시기부터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3.1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당시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과반은커녕 일부 수준이긴 했지만 이전에 비해 나름 장족의 발전이 있었기에 외국에 수출도 한 것이다.
 
지금도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서 3.1운동을 공부하게 되면 중국의 5.4운동과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의 독립운동 심지어는 남아시아에 영국에 대한 인도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줬다는 것까지 공부하게 된다.
 
대한민국에 아직까지 없는 노벨문학상을 이미 수상했던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아예 일본의 식민지인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칭송까지 했었다.
 
갑작스럽게 에너지를 방출해서 후유증이 엄청났는지 몰라도 3.1운동 이후에는 오랫동안 해외에 수출할만한 새로운 버전의 집회 상품은 개발되지 않았다.
 
4.19운동.사진@온라인커뮤니티
그러다 40여년이 지나서 필자의 아버지 세대가 어미의 젖을 빨거나 미토콘드리아로 뱃속에 있던 시절인 1960년에 비록 재수출하지는 않았지만 선구자적인 집회의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했다. 4.19였다.
 
4.19가 훗날 68혁명이 일어나는데 직접 영향을 줬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이 이웃나라 일본에게 까지 영향을 줬음에도 대한민국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이 뒤쳐져서가 아니었다.
 
이미 이보다 8년 전에 대한민국에서는 기득권을 뒤엎어봤기에 흔히들 주장하는 실패한 혁명인 68혁명은 뭔가 배울 일이 아니라 그냥 뉴스거리 수준이었던 것이다.
 
독립운동가에 양자를 입양하든 충성을 하든 동맹국가인 미국과 친하든 말든 투표함에 불지르는 등 선거를 방해했으면 대가를 치러야한다며 갈아 보자가 일어난 것이 4.19였다.
 
68세대와 달리 히피족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에 천만다행이었던 것이다. 휴대폰 배터리를 재충전할 때 그 안에 찌꺼기가 없는 깔끔한 기분이랄까?

잘 살아보자고 민주당 세력으로 갈아줬던 4.19가 민주당 정부 스스로가 잘 살아보자는 국민의 열망을 무시하고 내부 권력다툼으로 실망감을 안겨준 덕분에 거의 30년 동안 국지적은 쇼요 사태 외에는 전국적인 집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6월항쟁.사진@온라인커뮤니티
그러다 집회의 선구자 대한민국은 1987년 6월에 새로운 집회 수출상품을 내놓는다. 이제 점차 먹고 살만해지니 예전처럼 대통령도 다시 우리 손으로 뽑고 싶다며 호헌을 철폐하라며 전국에서 6월 항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건 마치 예전에는 소속사에서 자기들 임의대로 아이돌 가수라는 상품을 내면 알아서 선택하라는 일방적 소통에서 더 이상은 소비자로써 만족 못하겠다며 3년 전 엠넷의 <프로듀스 101 시즌1>이라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부터 시작해 이제 우리가 가수를 직접 투표하겠다며 일부 열성팬들은 지하철에다가 광고 전광판을 게시하고 거리에 피켓을 들고서 지지하는 연습생 후보를 찍어달라는 등의 쌍방향의 소통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앞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면 87년 6월 항쟁의 그 결과 대통령 직선제라는 6.29선언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는 훗날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도 영향을 준다.
 
지난 2017년에 사망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중국의 민주화운동가였던 류샤오보의 제자인 우얼카이시는 이렇게 말한다.
 
2011년 6월4일 데일리안의 <천안문 시위 주역 "서울항쟁 따라했다" 고백>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중국중앙방송(CCTV)에서 서울에서 집회하는 대한민국 상황을 현장중계하듯 보도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미국 제국주의에 지배받고 있는 작고 가난한 나라라는 편견에 있던 그들은 그 집회를 보고 자유롭고 풍요롭고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미국 제국주의를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송출했던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의 사태를 보도한 나비 날개 짓이 역으로 한류처럼 수출이 되어 중국 베이징에서 수백 명이 이상이 사망한 유혈사태로까지 번진 것이다.
 
이제 정치적 목적을 이뤘으니 더 이상 집회 문화에 대한 R&D는 끝날 것 같았지만 DNA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저질렀던 일이 목표 달성으로 안하게 되어 근질거렸던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치가 아니라 이제 다른 분야에 이를 접목시키게 된다.
 
2002한일월드컵시청앞응원.사진@온라인커뮤니티
2002년도에 한일 공동 개최로 월드컵이 열렸고 성적도 성적이었지만 거리 응원이라는 상품이 생겨난다.
 
유럽의 오페라와 다르게 한국 판소리에 마당에서 끼어드는 관중들 그 버릇 남주지 않고 저런 일까지 온 것이다. 거리에서 응원한다고 축구장에있는 선수들한테 응원 소리가 들리겠냐는 실용성만 따지면 당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생겨나거나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면 벌어질 법한 일이구나 깨닫게 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 응원에 대해서 유럽 언론에서는 나치의 재림이라느니 전체주의를 운운하였다.

그런데 4년 뒤 독일월드컵 때 독일에서 거리 응원이 수출되었다는 2006년 6월 21일 오마이뉴스의 보도도 있었다.
 
피처폰의 강자 삼성이 기술개발로 스마트폰에서도 강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비유해보면 될 것 같다.
 
2008년 광우병 시위.사진@온라인커뮤니티
이후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와 신화의 오빠들이 미국산 소고기 먹고 죽을까봐 자기 인생보다 자기의 존재도 잘 모르는 모 연예인 오빠 분들의 인생을 위하여 광우병 괴담에 일어난 시위나 미국에서 맛있게 미국산 소고기가 들어간 인엔아웃 사의 햄버거를 드시고 나서 청산가리보다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글을 미니홈피에 올렸던 연예인의 모순적인 행동을 보면 이제 집회는 정부 전복이라든가 끝장을 보자는 투쟁성보다는 진영구축이나 집회라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이 시기부터 강해진 것 같다.
 
2016년11월촛불집회.사진@YTN화면
이렇게 더 이상 새로운 목표도 없는 것 같고 연예 스포츠 부문 이후 더 이상 R&D될 것이 없었던 저출산 국가의 산부인과마냥 사양화되고 있던 집회라는 상품은 2016년 어떤 호감을 주지 못하는 외모를 가진 한 모녀에 의해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이 이전까지만 해도 극단적인 정치세력이 시너같은 위험한 것을 던지는 등의 폭력시위의 이미지가 강했던 민중총궐기 등으로 집회는 대한민국에서 단지 부끄러운 어디다가 내놓으면 안되는 상품이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후기 여당의 두 눈 뜰 수 없는 뻔뻔한 행태와 권력과 언론사의 다툼 등으로 인한 분열 사태는 기어이 이름부터 세련되지 못한 모녀를 사태의 핵심에 끌어들이게 된다.
 
이화여대에서 아이돌 노래나 부르며 학교를 점거하던 난해한 시위는 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하라며 돈도 실력이라는 발언으로 특혜를 받은 한 여자에 의해 침묵하던 대다수의 가슴에 기름을 들이 붓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계적인 선수이자 금메달리스트였던 김연아도 F 학점을 받는데 요즘 중계도 잘 안 해주는 아시안게임에서 승마라는 종목에서 언젠가 금메달을 땄다는 잘 모르는 정유라라는 여자가 자기 딴에는 시원하게 내뱉은 직설적 화법이 사양산업화 된 집회라는 상품을 되살린 것이다.
 
결국 그 촛불집회를 참석했던 사람들은 지난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를 얻어내 30년 만에 역시 ‘디스 이즈 코리아’ 집회 강국 대한민국의 클라스를 입증했다.
 
그리고 얼마 전 홍콩에서 법안에 반대하는 집회가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에 경찰 측 추산 25만 명이라는 거대한 집회가 벌어졌다. 심지어는 5.18 때 특정 진영에서 부른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홍콩에서 연주되어 불려졌다.
 
홍콩시위.사진@온라인커뮤니티
홍콩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려졌으니 광주의 정신을 지지하는 모 정당들도 이를 지지해야 되는데 ‘중국몽’에 피해가 갈까봐 아직까지 조심하는 듯하다.
 
우산 혁명이라는 14년도의 어설픈 집회를 했던 홍콩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국민의 7분의 1이 참석했다는 이번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하층민들의 집회가 아니라 현지에 변호사들이 주축이 되어 법조계까지 대거 참여한 것이다.
 
홍콩 시위에 고작 노래하나 나오고 촛불 마냥 불빛 밝혔다고 우리나라의 집회가 수출되었다고만 얘기한다면 단순히 과장일 수도 있지만은 우리나라에서 퍼져나간 영향은 사실 그 이상이다.
 
홍콩 정부가 법안 보류라며 한 발 물러난 이후 도리어 중국 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이게 다 한국 때문이라며 한국 탓을 하는 글들이 오르내리고 있다고 한다.
 
홍콩 시위 주최 측은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집회 영화를 언급하여 집회 분위기를 활활 타오르는데 활용했다는 여러 보도도 이미 국내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앞으로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정부가 완전히 통제하는 시대는 오기가 힘들겠고, 예전처럼 기만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 집회라는 상품은 강제 연구개발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공산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 인민들의 자유로의 안녕을 기원한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최성환  gogodu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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