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11개 시민단체는 21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개인정보 규제 완화 비판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개인정보 판매와 공유 등 독소조항이 많아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가 우려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사진@이상천 기자.

 ‘가명정보’ 도입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 “개인정보 침해 우려”

[이상천 기자=푸른한국닷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건강과 대안, 무상의료운동본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서울YMCA, 소비자시민모임, 의료연대본부,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11개 시민단체는 21일 기자회견에서 “개인정보 판매와 공유를 허용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대한 정부안이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안으로 대표 발의되자, 이날 오전 11시 이들 시민단체는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 정문 앞에서 ‘정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이처럼 견해를 밝히며 “국회에서 다음과 같은 독소 조항이 수정되지 않으면 개인정보보호법 통과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첫째, “정부안이 개인정보의 정의를 변경, 지나치게 협소한 개인정보 개념으로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의 IMEI 번호나 IP 주소와 같이 개인정보처리자가 직접적인 개인 식별이 힘들다고 할지라도 제삼자가 개인식별이 가능한 결합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개인정보로 보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 반면, 정부안은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을 식별할 수 없으면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수많은 개인정보가 개인정보보호법 적용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며 “유럽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의 경우에도 개인정보처리자뿐만 아니라 제삼자에 의해서도 식별 가능한 것은 개인정보로 규정하고 있고, 아울러 처리 시점에 이용 가능한 기술과 기술발전 역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둘째, “정부안은 ‘새로운 기술 · 제품 · 서비스의 개발’까지 과학적 연구 범위로 간주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기업의 고객정보를 공공기관이 결합한 후에 결합된 고객정보를 반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무상으로 다른 기업에 제공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기업들의 고객정보 판매와 서로 다른 기업 간의 고객정보 공유를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현재 다국적 기업 IMS 헬스는 빅데이터 분석을 목적으로 우리 국민의 처방전 정보를 구매하여 기소를 당한 바 있는데, 정부안은 이러한 개인정보 판매를 합법화시킬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GDPR의 경우, 가명처리를 하면 과학적 연구나 통계 목적으로 무조건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이 정보 주체의 기본권 침해보다 클 경우에 한정되며,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제공할 경우에도 ‘데이터 최소화’ 등의 원칙을 지키도록 하고 있는데 정부안에는 다른 기업에 가명 처리된 개인정보가 제공될 경우, 이러한 원칙들이 준수되는지 감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고 기업들이 자의적으로 목적 외 활용 범위를 확대하지 않도록 규정할 법적 장치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를 우려했다. 

셋째, “정부안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하고 기존의 행정안전부와 방통위의 권한을 이관하고 있다”며 “그러나 개인신용정보 활용에 앞장서고 있는 금융위원회의 권한은 그대로 놔두고 있으면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전체 업무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지 않은 것은 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언제든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정책 방향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조직 및 업무와 관련해 현행보다 후퇴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자칫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정부에 대한 감독이 아니라 개인정보 활용을 위한 알리바이 기구가 될 위험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넷째, “정부안은 개인정보의 활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정보 주체의 권리와 개인정보처리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조항이 미약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프로파일링에 대한 정보 주체의 권리, 개인정보 중심 설계 및 기본 설정(Privacy by Design, Privacy by Default), 개인정보 영향평가의 확대 등 중요한 내용이 배제되어 있다”며 “정보 주체의 권리 및 개인정보처리자의 책임성 강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개인정보의 활용 과정에서 정보 주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정부는 유럽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참조하여 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정하겠다고 했으나, 현재 발의된 정부안은 GDPR에 훨씬 미흡한 수준이어서 정부가 추진 중인 EU 개인정보 적정성 평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끝으로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개인정보보호 체계 개선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시민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의 정부안은 기업들의 고객정보 활용을 지원하고자 급급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정부와 국회는 기업들의 고객정보 판매와 공유를 허용하자는 입장인지 명확히 밝혀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윤철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의 사회를 맡아 박준우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의 ‘개인정보 정의 축소’,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의 ‘가명 정보의 활용 범위 문제’, 서채완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변호사의 ‘개인정보 감독기구 한계’ 등 각각의 법안평가에 이어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의 ‘소비자 권리 침해’와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의 ‘개인 의료정보 권리 침해’ 발언이 있고 난 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과 한석현 서울YMCA 팀장의 ‘기자회견문 낭독’ 식순으로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무분별한 개인정보의 판매와 공유에 반대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하라!”, “금융위원회의 개인신용정보 감독 권한도 이관하라!”, “개인정보 보호 없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반대한다!”, “정보 주체의 권리와 개인정보처리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라!”, “개인정보 보호 법제와 감독기구 일원화를 즉각 추진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