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의 핵심 기능은 라이센스 투 킬 (license to kill)
- 초등학교 교훈보다 못한 정보기관 모토 변경
- 정치권이 국정원을 음해하고 흔드는 것이 더 문제

[고성혁 역사안보포럼 대표]초등학교조차도 교훈(校訓)이 한번 정해지면 폐교(閉校)할 때까지 교훈은 그대로 간다. 교장이 바뀐다고 교훈이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국정원) 원훈(院訓)이 또 바뀌었다. 2016년 6월 10일 국정원이 창립 55주년을 계기로 “소리없는 헌신(獻身), 오직 대한민국 수호(守護)와 영광(榮光)을 위하여"로 교체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정보기관의 모토가 바뀌는 것은 전혀 바람직 하지 않다.
 
1961년 처음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가 세워질 때의 모토는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였다.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를 가장 잘 표현하였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다.

정보기관이 무슨 IT업체인가? ‘정보는 국력이다’라니? 그리고 이 말 자체도 사실상 표절(剽竊)이다. 대한 체육회의 <체력은 국력이다>의 모방일 뿐이다. 게다가 정보기관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좌파정권에서 우파정권으로 바뀌었다. 국정원의 원훈(院訓)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다시 바뀌었다. 자유와 진리? 신생(新生) 대학교 교훈으로는 딱 맞다.
 
그러나 정보기관에 무슨 자유와 진리 타령인가? 정보기관은 자유와 진리가 아니라 공작(工作)과 비밀(秘密)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무명의 헌신?’ 뭐 자선단체 구호라면 모를까? 이명박 정부도 국가정보기관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원훈(院訓)을 표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 또 변경되었다. 2016년 6월 10일 국정원이 창립 55주년을 계기로 원훈(院訓)과 문장(紋章. 엠블럼)을 새로 교체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4대 원훈은 "소리없는 헌신(獻身), 오직 대한민국 수호(守護)와 영광(榮光)을 위하여"이다. 구태의연하고 진부하다.
 
정보기관의 의미를 제대로 살린 모토는 초기 중앙정보부 시절 처음 지었던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指向)한다”가 최고다. 참고로 세계 최고 정보기관의 하나인 영국 MI6(영국 비밀정보부)는 ‘언제나 비밀’이라는 뜻의 ‘Semper Occultus’구절을 모토로 삼고 있다.
 
국정원은 아마도 “까임 방지권”이 더 필요할지도
 
007영화 영화 타이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 라이센트 투 킬(license to kill)이다. 정보기관의 가장 실질적인 의미는 ‘license to kill’이 아닐까 싶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911테러의 주범(主犯)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CIA의 추적 끝에 사살되었다. 비록 사살은 미 해군의 'SEAL TEAM SIX'가 수행했지만 추적과 의사결정은 미 CIA가 수행했다. 한마디로 미 CIA는 <license to kill>을 갖고 있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을 피로 물들게 한 팔레스타인 테러범은 이스라엘 모사드에 의해 전원 제거(除去)되었다. 이라크 오시라크 핵시설과 시리아의 핵시설, 그리고 이란의 핵과학자를 제거한 것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수행했다. 이 또한 ‘license to kill’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국정원의 기능은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을 거치면서 너무 약화(弱化)되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사사건건 국정원을 걸고 넘어진다.

심지어는 세월호를 빙자한 좌파세력은 마치 국정원이 세월호 침몰과 관계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국정원을 걸고 넘어 지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김종필 이후락의 중앙정보부 시절이었다면 언감생심 상상도 못 할 일이 현재 일상화 된 듯하다. 국가정보기관의 권위가 너무 실추(失墜)되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더이상 정치권이 국정원을 흔들고 악용하지 말라”고 주문했어야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1일 내년 대선과 관련, “국정원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권력 남용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말을 듣노라면 참으로 불쌍하기 그지 없다. 국정원의 위상이 추락해도 너무 추락했다. 국정원장이 정치권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것도 전혀 바람직 스럽지 않다.
 
오히려 이병호 국정원장은 국회의원들을 향해 “더이상 정치권이 국정원을 흔들고 악용하지 말라”고 주문했어야 했다. 과거와 달리 현재 국정원의 문제는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이 국정원을 음해하고 흔드는 것이 더 문제 아니겠는가?
 
CIA나 모사드처럼 <라이센스 투 킬>까지는 아니더라도 네티즌들이 흔히 말하는 “까임 방지권”이라도 국정원에 주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소위 정치권으로부터 “까임 방지권”이 국정원이 더 바라는 것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보기관의 방향은 일관되어야 한다
 
7월2일자 조선일보 송희영 칼럼은 ‘8명의 대통령도 안바꾼 음지의 전략가’라는 제목으로 93세까지 42년간 美 안보전략을 조언한 앤드루 마셜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는 1973년 그 자리를 맡은 이후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도, 승진도 않고, 미국의 국가안보와 관련한 전문적인 조언만을 했다고 한다.

항상 20명 이내 최고 두뇌들만으로 조직을 운영하면서 그야말로 음지에서만 일한 셈이다. 정권 교체와는 무관하게 미국의 안보정책이 일관성을 갖는 배경이 납득되는 구절이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나 영국의 MI6도 다를 바 없다. 항상 일관성을 갖는다.
 
일본도 국가 주도의 정보기관 창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일 방글라데쉬에서 발생한 IS 테러로 인해 일본인 상사 주재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일본의 정보기관 창설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정보기관 기능을 본격화 하게 되면 국제 정보기관끼리의 지형도 상당히 많이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북한 핵과 국내 종북세력의 도전 앞에 우리 국정원의 역할은 막중(莫重)하다. 단순히 모토하나 변경한다고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을 향한 <라이센스 투 킬>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국정원이 정치권으로부터 매도당하고 흔들리는 것 만큼은 이제 막아야 한다. 국정원의 일관성 여부는 전적으로 정치권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