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가또 가쓰야 전 산께이 신문 서울지국장이 그의 책에서「한국은 대통령의 의중과 감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나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우리나라를 폄하하는 일본 극우성향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21세기에 우리나라가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사실이든 아니든 창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프랑스 루이 14세는「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했는데, 그 당시 프랑스가 루이 14세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국가였다. 군주가 나라의 공론(公論)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군주 한 사람의 말이나 행위가 공론이 되는 나라가 중세국가인 것이다. 따라서 온 나라의 백성들이나 대소 관리들이 군주 한 사람의 좋고 싫음을 그들의 좋고 싫음의 기준으로 삼고. 군주 한 사람의 옳고 그름을 그들의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는 나라인 것이다.

옛날 제환공이 보랏빛 색깔을 좋아하자 모든 신하들이 보랏빛 색깔의 옷을 입었고. 초장왕이 가는 허리의 여인을 좋아하자 온 나라의 여자들이 허리를 가늘게 하고자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이야기는 이의 단적인 예다.

중세국가에서는 이같이 군주 한 사람의 뜻이 기준이 되고 준거가 되는데, 군주 한 사람의 기분을 위해서 모든 백성이 영합하고. 군주 한 사람만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의 모든 사람이 손해 보는 구조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중세국가란 것이다.

유신시대. 헌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권력구조가 대통령중심제인 국가는 미국을 빼고서는 모두 독재국가라고 배웠을 것이고. 이것을 미화시키기 위해서「신 대통령제」라고 언어를 조절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만치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 쉽고 그 제왕적 대통령은 중세시대의 군주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제왕적 대통령(미국 대통령을 뺀)을 비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시대역행적이기 때문이다.

칸트는「권력은 이성의 자유로운 판단에 해가 된다.」고 했고. 중국 당나라 문종 때의 대신 이각은 당시 개원과 천보 연간의 정치를 논하면서「군주가 아무리(현종과 같이) 명철하더라도 처음과 끝이 같기는 어렵다.」고 말했는데,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와 감정이나 생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의 제왕이나 대통령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고 그의 말만 기다린다는 것은 가히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 같이 즉위하자마자「간언하는 신하와 글 읽는 선비는 죽이지 말라.」는 것과 같은「이성의 빛」은 역사에서는 드물고. 학문이 신하들 보다 더 나은 조선의 세종이나 정조 임금 같은 호학(好學)과·호문(好文)의 군주는 몇 백 년에 한 명씩 나오기 때문에 개인의 총명과 성품에 기대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중세 군주나 오늘날의 대통령의 기쁨은 한 번 부르면 천 사람이 대답하고. 두 번 부르면 만 사람이 대령하는 것인데, 이런 군주나 대통령의 기쁨을 빼앗고. 지시에 이의을 달며, 심지어는 거역하면 그 누구도 무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배신의 정치」나「진실한 사람」이라는 대통령의 말에서 충분히 알고 있다. 대통령에게 대든다는 것은 그야말로「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인 것이다.

그러나 두보가「이별하며(贈別)」라는 시에서「주렴 걷고 찾아봐도 당신만한 사람 없어라！卷上珠帘總不如」라고 말한 것처럼 국가가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존재 가치를 높인다면 그 나라는 좋은 나라이면서 아름다운 나라인 것이다.

한 사람이나 몇 사람만을 위한 나라. 가난한 사람만이거나 부자만을 위한 나라. 이는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가 종세국가인지 우리가 중세에 사는지 아닌지는 지금의 대통령이 중세국가의 군주와 같은지 아닌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