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

우주식품 김치를 우주에서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

[이종호 과학국가박사]‘위대한 프랑스’를 기치로 걸었던 드골 대통령이 프랑스를 통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불평하면서 ‘400가지가 넘는 치즈’를 만드는 다양한 국민성을 들었다. 다양성에 관한 한 한국은 프랑스보다 한 수 위이다. 한국은 집집마다 특색 있는 김치를 담가 먹기 때문에 한국의 인구를 5,000만 명이라고 하면 적어도 1,000만 이상의 다양한 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다양한 입맛이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세계적인 청과기업이 한국 소비자를 시장 반응 테스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한국네슬라가 웰빙 커피를 한국에서만 출시했고 코카콜라에서도 ‘칼로리 제로’를 미국, 호주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내놓았다. 세계적인 식품 기업들이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그만큼 다양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입맛에 관한 한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라는 말이 그 증거다. 한국인들의 이와 같이 가히 전문가적인 입맛 즉 유행에 민감하고 입맛은 아주 까다로운데 모든 가정에 다양한 김치의 맛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김치는 냄새 때문에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에겐 김치에 얽힌 에피소드를 한둘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다. 김치 냄새 때문에 아파트에서 쫓겨난 것은 기본이고 경찰서에 불려가기까지 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김치 냄새는 외국인들에게는 참기 힘든 냄새로 알려진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을 깔볼 때 쓰는 말은 ‘김치 냄새나는’이라는 단어였다. 야만인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김치가 현재 세계적인 식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물론 김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던 일본인들조차 김치 냄새에 관대해 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치가 시어지면서 해로운 균이 번식하고 영양분도 떨어진다. 김치가 익고 난 뒤 젖산균도 스스로 생산한 유기산에 견디지 못해 사멸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김치 속의 효모나 곰팡이가 다시 자라기 시작해 김치의 맛이 변한다. 이때 김치에서 군내가 나고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모든 과정에 있는 김치는 발효, 즉 썩는 과정을 거친 것이므로 냄새로만 따지면 좋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사람이 냄새에 대해 느끼는 것은 대체로 일치한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대부분 김치 냄새를 싫어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유의 식생활 때문에 이를 의식적으로 좋은 냄새로 분류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쌀 위주의 식생활에 채소를 즐겨 먹었다. 그러나 삼한사온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기후는 계절 변화가 뚜렷하여 겨울에는 채소들이 생산되지 않고 저장 또한 어려웠다. 따라서 건조 처리나 소금 절임에 남다른 슬기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김치가 등장하는 요인이다.

이곳에서 김치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지만 김치는 한마디로 소금에 절인 배추와 무, 고추, 마늘 등 여러 가지 향신채를 소금으로 간을 해서 발효시킨 ‘모듬야채발효식품’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김치의 담금 원리는 양념류가 삼투압에 의해 수분이 교환되고 배출되는 것이다. 소금 절임은 우리 조상들만 생각해냈던 것은 아니지만 김치가 여느 나라의 저장 식품과 달리 자극적인 맛을 지니게 된 것은 채소를 절인 후에 갖가지 향신료와 양념, 젓갈을 혼합하고 고추 등으로 색깔과 맛을 가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치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자적인 발효식품이라는 뜻이다.

김치는 저열량 식품으로 식이성 섬유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장에서 섭취된 음식과 소화 효소가 잘 섞이도록 도와주며 특히 아세틸코린 등은 장내 청소 작용을 하므로 변비 예방에도 좋다. 뿐만 아니라 김치에는 펙틴질을 비롯하여 고분자의 복합 다당류들이 친수성 콜로이드를 형성한다. 또 채소에 들어 있는 포도당이 젖산균에 의해 포도당이 중합된 덱스트린을 형성하는 작용을 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비해 장암 환자가 적은 이유로 꼽는다.

불가리아가 장수국으로 유명한 것은 발효 식품인 요구르트를 많이 먹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구르트는 우유를 유산균에 의해 발효시키는데 영양소가 풍부할 뿐 아니라 정장작용과 항암 효과가 있으므로 장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김치는 이보다 더 훌륭한 발효 식품이다. 그것은 김치의 발효과정 중 유기산이 생성될 때 항암 및 정장 작용을 나타내는 유산균의 보고임에도 알 수 있다. 김치 특유의 상큼한 맛을 내는 주된 요인은 ‘류코노스틱 시트리움’이란 유산균인데 갓담근 김치에서는 1밀리리터 당 1만 개체 안팎이 존재하지만 김치를 저온숙성으로 발효시킨 후 영하 1도에서 보관하면 6300만 개체로 6000배 이상 증식한다. ‘류코노스톡’은 장내 산도를 낮춰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하며 장운동 촉진과 면역력을 증진시켜 주며 항암작용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김치는 채소 발효 식품으로서의 영양성과 기호성은 물론 장수성까지 보장하는 뛰어난 건강 식품이다.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에서 이런 내용을 알기 때문에 김치가 갖고 있는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김치에 대한 인식을 180도 바꾸어 김치의 세계화 즉 수출에 앞장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조차 김치 냄새에 대한 인식이 변한 것은 김치의 세계화의 여파라 볼 수 있지만 인간의 후각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비강 내에 있는 약 2.5세제곱센티미터 면적에 불과한 후각표피에는 약 5만개의 후각 수용기가 분포돼 있어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가지 화학물질들을 구별한다. 공기 중의 화학물질 농도(자극의 강도)와 우리가 느끼는 감각의 세기는 베버-페크너 법칙이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악취물질을 99%제거하더라도 1%의 악취물질이 남아 있으면 30%의 악취강도를 느끼게 한다.

후각은 ‘선택적 피로현상’이란 특성을 갖고 있어 동일한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매초 2.5%씩 후각의 민감성이 감퇴돼 1분 이내에 약 70%의 민감성을 상실한다. 또한 후각의 능력이 피로와 순응을 통해 특정냄새에 대해 둔감해진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도 김치의 냄새를 많이 맡으면 김치 냄새에 대해 심각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치 발효는 기본적으로 혐기성 발효이므로 김치 용기의 뚜껑을 자주 열면 정상적인 맛이 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김치가 과도하게 발효되면 신맛이 강하고, 조직이 연화된다. 가장 맛이 좋을 때의 김치는 pH가 4.0～4.5로 알려져 있으며, 김치에 있는 미생물은 계속적으로 발효해 pH가 떨어지므로 알맞게 익은 김치는 냉장고에 보관해 저장하는 것이 좋다. 여러 가지 연구의 결과를 보면 익은 김치를 2～5℃에 보관하면 그 품질을 약 1개월간 보존할 수 있다.

한국은 2008년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을 우주 공간으로 보냈다. 10여 일 동안의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때 우주식으로 개발된 김치, 라면, 수정과 등 한국 음식들이 이소연과 우주정거장 동료들에게 제공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치이다.

우주식품은 집에서 먹는 일반음식과 큰 차이가 있다. 우주선에는 중력이 없으므로 지구와 같은 조건에서 먹을 수는 없다. 더욱이 일반음식에는 식중독균, 발효균, 부패균 등 다양한 미생물이 존재하는데, 아무리 우리 몸에 이로운 젖산균이라 할지라도 우주공간에서는 위협적인 존재로 변화할 수 있는 등 많은 제약 조건이 있다.

사실 우주공간처럼 열악한 인간의 생활공간은 없다. SF영화에서는 지구와 다름없는 환경의 우주선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이소연의 경우 국제 우주정거장(ISS)와 도킹할 때까지 폭 2.1미터, 길이 4.7미터 정도의 좁은 캡슐 안에서 지구 궤도를 계속 돌았다. 우주정거장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주선보다는 다소 규모가 커 화장실, 식당, 침실이 갖춰져 있다지만 모듈은 길이 13미터 지름 3-4미터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공간에서 장기간 머물게 되면 건강에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정선된 우주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발효식품인 김치의 장점을 생각하면 우주식으로서의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우주식품 김치를 우주에서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 우주식품의 장점인 부피가 작고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도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면 지구에서도 호평 받지 않을 리 없다. 김치캡슐도 한 방법이다. 식사시간도 모자랄 만큼 바쁜 사람들의 불평은 식사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언제 어디서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영양가 있고 사용하기 쉬운 휴대용김치캡슐이 개발된다면 그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김치캡슐 속에 인간에게 필요한 비타민 등 필수 요소들도 함께 넣어준다면 현재 복용되는 수많은 건강 보조제 역할도 담당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전세계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냄새 때문에 외국인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김치가 근래 들어 피자나 햄버거에까지 가미될 정도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사실 요구르트의 냄새도 만만치 않지만 건강에 좋다는 여러 가지 연구보고와 요구르트의 다양화로 세계인의 식품으로 부각된 것이다.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들이 일본이 ‘기무치’라는 상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는 것은 김치의 장점 즉 맛과 영양가가 김치의 냄새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김치의 종주국으로서 김치가 세계의 식품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김치의 냄새마저 세계인의 구미를 당기는 좋은 냄새로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과장하면 김치향수도 김치캡슐과 마찬가지로 미래인들의 필수품이 될지도 모른다.

참고적으로 미국의 건강전문잡지 <헬스>는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 중에 하나로 선정했다. 5대 식품은 한국의 김치, 일본의 콩. 스페인의 올리브오일, 그리스의 요구르트, 인도의 렌틸콩이다. 그런데 콩의 원산지는 한국이다. 콩의 원산지는 야생콩의 자생지역이면서 야생콩, 중간콩, 재배종 등 콩이 가장 많은 곳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런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곳이 만주 남부이다. 만주 남부는 본래 맥족의 발생지이며 고조선의 옛 영토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2개가 한국산임을 알면 김치와 콩에 대한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참고문헌
「스타벅스는 왜 한국에서만 녹차라떼를 팔지?」, 김경준, M25, No 31, 2008.

『과학 카페(인체와 건강)』, KBS <과학 카페> 제작팀, 예담, 2009
『과학 삼국유사』, 이종호, 동아시아, 2011
「우리것이 힘, 전통발효식품」, 『갑신년, 설특집』, 국정브리핑, 2004 

■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1948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 취득. 1982년 과학기술처의 유치 대상 해외 과학자로 선정돼 프랑스에서 귀국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기. '노벨상이 만든 세상',‘로마제국의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85권의 과학 도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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