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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전라도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정재학 | 승인 2011.07.07 15:26

[푸른한국닷컴 정재학 칼럼니스트]

[3-1.전라도 비판의 역사]

필자(筆者)가 이 글을 연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의 남남갈등 조장(助長)을 위한 공작(工作)을 막고자 함에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 내부의 분열을 노리기 위해, 오래 전부터 호남과 타 지역 간의 갈등을 조장해 온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지역감정이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발생, 심화했다는 내용을 전교조 일부 적색교사를 통하여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진보좌파 내부에 이를 확산시킴으로써,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을 폄하(貶下)하여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차단하고, 이를 이용하여 다음 차기 대선에 유력한 후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고 있다.

따라서 이 3부에서는 지역감정과 차별이 언제부터 발생하였느냐는, 역사적인 문제를 다룰 것이다. 결론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영남정권 시절을 들고 있으나 그것은 북한의 공작에 휘말려든 오해다.

필자(筆者)는 이지양의 논문 <호남선비 황윤석이 본 호남차별 문제>를 읽으면서, 참으로 오래된 숙제를 풀었다. 이 논문은 동양한문학연구 제27집에 실린 것으로 호남 선비인 황윤석의 <이재난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재(李齋) 황윤석은 필자(筆者)와 같은 고향 출신이다.

그는 전북 고창군 성내면 출신으로 10세에서 63세까지 54년간 쓴 현존하는 최대분량의 일기를 남겼다. 총 57권, 527만4,000여자에 달한다. 조선왕조실록 3분의 1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독서와 견문을 통해 박학을 획득하는 18세기 조선지식인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마다 쓰기 시작한 연대와 끝낸 연대를 기록하고 있어서 실학적인 면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학술연구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8세기는 영정조 재위기간이었다. 영조는 1724~1776년까지, 그리고 정조는 1776~1800년까지 왕위에 있었으므로, 전라도 지역감정 문제는 무려 230년의 역사에 걸친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물론 당시 상황에도 일반화되는 시간적 축적의 기간을 거치면 대략 300년에 이른다 할 것이다. 당시 이재난고의 일부를 보면서 18세기의 지역감정과 전라도 차별의 모습을 추측해 본다.

이 일기에는, 왜 지역감정이 발생했느냐는 문제를 이렇게 보고 있다.

「영남의 풍속은 굳세고 강직하며 과감하여, 뜻이 있더라도 깨뜨릴 수 없는 일이 많고, 호남의 풍속은 들뜨고 조급하며 가볍고 물러 터져, 그 뜻을 둔 일이 또한 혹 쉽게 교란되니, 이것이 시론(時論)이 영남을 두려워하고 호남을 깔보는 까닭」이라고 하였다.

또한 태인 사또 김이신이 말하기를

「 영남사람은 잘 굴복하지 않는데, 호남사람은 쉽게 굴복하며 유죄를 자복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호남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받고 많은 차별을 받는다고 하였다. 심지어 1728년 영조4년에 이인좌의 난이 영남에서 일어났어도 영남인은 차별을 받지 않는다. 조선 후기 홍경래 난 이후 서북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시작될 때도, 호남인에 대한 차별은 변함없었다.

 이에 황윤석은

「 역적이 많이 나온 지역을 따지자면, 응당 서울만한 곳이 없으며, 충청에도 몽학, 유진, 탁, 인좌 같은 무리가 나주의 두서너 흉얼(흉孼)보다 열 배쯤 되는데도 서울처럼 등용해주고, 영남 역시 정인홍이나 정희량 같은 무리가 있었지만, 오히려 충청과 비교해도 더욱 취할 만하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 황윤석은 호남차별을 세 가지로 적고 있다.

첫째, 호남인의 기질에 대한 편견이다. 영남인이 質慤謹重(질각근중)한데 비하여 호남인은 浮薄(부박)하고 분열된 기풍을 지녔다. (그러나 호남인은 부박할지는 모르나 분열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전라도 사람만큼 단결하는 지역은 없다.)

둘째, 호남은 변괴가 많이 발생한 곳이다. 여기서 변괴란 반역을 말한다.

그러나 호남에서 반란이 일어난 역사적 사건은 임진왜란 직전 일어난 정여립의 반란뿐이다.

셋째, 호남에 역적이 많이 났다.

그러나 호남에 역적은 귀양 온 귀양객들 중 정부에 항거하는 다른 지역 출신의 반골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 중 하나인 지평 윤지가 1755년에 나주목사에다 정부비판을 쓴 나주괘서사건이 있다. 황윤석은 이 점을 강조하면서 전라도인으로서 부당함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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