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산물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쓰고 선거 때만 되면 유독 더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바로「진보」와「보수」라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라가 아예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고 갈라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대부분의 나라, 특히 후진국에서는 이 말을 쓰면 안 된다.

이 말을 그래도 쓴다면 그 사람이나 집단은 지식이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무슨 저의가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가 미국을 빼고서는 제왕적 또는 독재적 대통령제라는 것을 헌법을 공부한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후진국에서는 진보와 보수라는 것은 애초에 없는 것이다.

후진국에서는 오직「개혁세력」과「수구세력」만 있을 뿐이다. 진보와 보수란 일정수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현상으로서 이것을 확보하고 향유하는 나라나 사회에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후진국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말을 쓰는 것은 개혁적이지 못하면서 현상타파 쪽이 진보를 표명하고.

개혁적이지도 못하고 현상고수 쪽이 보수를 표상하기 때문인데, 이래야 자신들의 위신이 올라가고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무릇 진보와 보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 자유, 평등, 민주주의. 평화. 인권. 공동선 등을 추구하는 것은 똑같다. 다만 먼저 앞장 사느냐 아니면 뒤따라 오느냐하는 시제의 차이일 뿐이다.

후진국에서는 일어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현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조차도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에 합당하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담론은 개방과 관용, 다양성과 상대성 등이 형성된 풍토에서나 자라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개혁 대(對) 반개혁 또는 개혁 대(對) 수구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후진국이 진보와 보수로 자기를 규정했다면 그것은 날개도 돋지 않았는데 날려고 하는 것이고, 개고기를 양고기로 파는 것이다. 후진국은 사람들의 의식이 경직되어 있고, 시스템도 경화되어 있어서 후진국인데, 그것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 개혁이고. 적폐가 산처럼 쌓이고 모순이 끓는 물 같은데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개혁인 것이다.

개혁은 소수이기 때문에 외롭고 힘든 것이다. 그러나 개혁세력은 위로를 얻을 수 있으니 비록 그것은 낙엽이되 천하에 가을이 옴을 알리는 오동잎이고. 제비가 몰고 온 박씨로되 그것은 봄을 부르는 박씨인 것이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개혁세력이 천신만고 끝에 길을 닦아 놓으면 나중 길을 탄탄히 하는 것은 그의 반대세력인 것이다.

진보와 보수는 공동의 승리를 추구하지만 개혁과 수구는 존망(存亡)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산물이다. 개혁과 수구는 상호 대체하지만 진보와 보수는 상호보정한다. 진보와 보수는 성숙한 탐미적인 접근이고 기술적·정책적 조합이며, 갈등의 해소국면이라면 개혁과 수구는 양립불가이고 대척적·배척적이며 갈등의 야기단계인 것이다.

탁월한 사회과학자인 에밀 뒤르켐이나 막스 베버가 다시 살아나서 후진국에서 진보와 보수 행세 하는 것을 보았다면 고개를 가로 저을 것이다. 나라나 사회가 원대한 뜻이 없고 고상한 뜻이 없다면 비록 21세기를 산다고 해도 저 굴원이 살던 초나라 말기나 최치원이 살던 신라말기와 다름없고.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담사동이 무술변법을 일으킨 시대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앞에서 살펴본 것 중에서 어느 쪽일까. 진보와 보수의 국면이라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아직도 개혁과 수구의 단계라고 보아야 하나.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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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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