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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기쁨
김성춘 | 승인 2014.10.24 16:12

사람들은 살면 살수록 낯설기만 한 세상, 미인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세상,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진화론」에서 종(種)의 99%는 멸종이 원칙이고 1%만이 예외라고 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것이 1만 년을 갓 넘었고. 앞으로 50억년 후에는 지구가 최후를 맞을 거라 한다. 비록「대문 밖을 나서면 저승」이라는 만가(輓歌)처럼 속절없는 존재가 우리 사람이지만 그래도 지난 간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고(푸쉬킨), 한 잎 낙엽이 지고 우수수 낙엽이 지는 데서 허무를 극복하려는 사람(김용호·구르몽)도 있는 것이다.

나는 전번에(5년 전)「사람으로 태어난 기쁨」이란 글을 썼다. 그 후 이와 비슷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억제치 못하다가 오늘 또「세상에 태어난 기쁨」이란 글을 짓게 된다. 사람은 그 취향이나 기호, 인생관에 따라 누구에게는 하찮은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중요한 것이 되고 또 누구에게는 대단한 것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사소한 것이 된다. 기쁨도 이와 같아 기뻐하는 대상이 다르고. 대상이 같다고 해도 기쁨의 크기가 다른 것이다.

사람의 기쁨은 아름다운 꽃이나 절경을 보는데서 오기도 하고, 미인(美人)을 품에 안거나 장부(丈夫)의 품에 안기거나 혹은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거머쥐었을 때에도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세상에 태어난 기쁨」은 역사서 사기(史記)에서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스럽게 묘사하고, 기품 있는 사람들을 불러낸 사마천처럼 나도 사람들로부터 기쁨을 느끼고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발견하곤 한다. 책은 고전(古典)인 것처럼 그 사람들은 역시 옛사람들인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을 같은 땅(한국), 같은 시대, 인류역사상으로 구분해서 찾아보았다.

먼저 이 땅에서 내게 기쁨을 준 사람으로 월명사. 김시습. 황진이, 권필이 있다. 월명사는 신라의 승려로 그가 달밤에 피를 불자 얼마나 구슬펐으면 달이 잠시 운행을 멈추었다고 하며 죽은 누이를 기리는 향가「제망매가」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김시습은 이름 자체가 논어의 첫 구절「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의 그 시습(時習)으로 지었고. 자(字)도 그 열경(悅卿)으로 택했으며, 호 매월당(梅月堂)에서 보듯 스산하고 쓸쓸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는 생애 자체가 본질인 사람이었다.

시인 구상이「한국이 배출한 시인 중에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고 말했던 시인. 자기를 연모해 죽은 총각의 관에 속속곳을 덮어줄 줄 알았단 여인. 자기가 죽으면 주검을 들판에 버려 짐승들에게 보시하라던 사람. 천명의 남자가 그녀를 사랑했건만 오직 화담 한 사람만 사랑했던 여인! 황진이- 권필은 광해임금 때 문인으로 왕비 류씨 집안을 비난하는 시를 지었다하여 장형(杖刑)을 받고 귀양길에 동대문 밖 주막집에서 살구꽃이 흩날리는 날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죽는다. 악(惡)이 다른 악으로 대체되는 역사 속에서 의롭게 살다간 사람이었다.

둘째로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는 야스퍼스, 사르트르, 네루다를 들 수 있다. 야스퍼스는「인생의 조난(遭難)」에서「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룬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이고,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자이면서「문학은 서열화하는 것 아니다.」며 노벨문학상을 거부하였으며, 네루다는 칠레의 저항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그의 시「나는 오늘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쓴다.」는 감명적이다. 이들은 한 세기를 빛낸 지성들이며, 지금 나의 정신적 지주(支柱)이기도 하다.

셋째로 동양과 서양의 사람들인데 서양에서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 그 뒤를 잇는 세익스피어,「플루타크 영웅전」의 플루타크,「낭만주의 시인」바이런과 셸리,「우수의 시인」 릴케 등도 오늘 내 정신의 원류(源流)이지만 자세한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순서상 중국에서 선정하였다.

눈을 감으면 먼저 좌사, 도연명. 정명도, 왕양명, 이탁오 그리고 원매가 떠오른다.

좌사는 삼도부(三都賦)란 시로 낙양의 종이 값을 올린 사람으로 거실과 정원 심지어는 측간에까지 종이와 붓을 준비해 놓고 좋은 구절이 떠오르면 곧 글을 지었다고 한다. 도연명은「귀거래사」로 우리에게 유명한데, 그는 가난한 중에도 독서를 줄곧 했고,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시름을 잊으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정명도는 성리학을 체계화한 사람으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으면 한 밤중이라도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손과 발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왕양명은 양명학의 창시자로 장가간 첫날 밤 신부 집 이웃의 도관(道館)에서 도사와 담론하느라 날 새는 줄 모르다가 아침에야 신방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탁오는「유교의 이단자」로 불렸는데 그의 큰 즐거움은 책읽기로 문을 닫아걸고 온몸으로 읽었다 한다. 읽다가 역시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그는 감개하여 눈물을 흘리곤 했다.「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함」으로 유명한 원매는 어려서 가난하여 책을 살 수 없어 이웃집에서 빌려서 보았다. 그는 이웃에서 책을 빌릴 수 없는 날이면 그날 밤에는 책 빌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어찌 인물이 이 사람들뿐이고 이 사람들에 그치겠는가? 그러나 이 사람들은 살면 살수록 낯설기만 한 세상, 미인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세상, 70·80세를 살아도 자랑할 것 없는 세상에서 기쁨의 근원을 보여주었다. 내기 이 사람들을 알지 못했더라면「세상의 기쁨」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아, 나는 그들이 깔아놓은「푸른 양탄자」를 탄 것이었다. 어느 새 그들의 기쁨은 내 기쁨이 되었고, 나만이 아니라 세상에는 또 누군가 이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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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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