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역사
살곶이 다리
장재균 | 승인 2014.10.05 19:15

   
▲ 살곶이 다리 사진@장재균 푸른한국닷컴 기자
[장재균 푸른한국닷컴 기자]오늘(5일) 오전 살곶이 다리를 카메라에 담으려 나섰다 예기치 않게 가벼운 바람결에도 지조 없이 이리저리 휘어지는 갈대를 담게 되었다.

   
▲ 살곶이 다리에서 본 성동교 휘날리는 갈대가 이채롭다.사진@장재균 푸른한국닷컴
*살곶이 다리

살곶이는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역으로, 한양대학교에서 내려다보이는 개울 부근이다. 이곳은 넓고 풀과 버들이 무성하여 조선 초부터 국가의 말을 먹이는 마장(馬場) 또는 군대의 열무장(閱武場)으로 사용되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에 다리를 만든 것은 정종과 태종의 잦은 행차 때문이었다. 세종 즉위 후 태종은 광나루에서 매사냥을 즐기고, 살곶이에 있는 낙천정(樂天亭)과 풍양이궁(豊壤離宮)에 수시로 행차하였다. 따라서 이곳의 하천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하여 다리를 놓게 되었다고 한다.

세종 2년(1420) 5월 태종은 영의정 유정현(柳廷顯) · 박자청(朴子靑)으로 하여금 비로소 돌다리 세우는 공사를 담당하게 하였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였다.

세종 4년(1422)에 태종이 죽자 이곳을 통한 행차가 거의 없어지고, 또한 세종 3년부터 시작된 도성 안 개천(開川) · 제방축조공사로 인해 도성 밖 이곳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을 이용하는 백성들로 인하여 살곶이다리를 만들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어, 성종 6년(1475) 9월 살곶이다리를 완성시킬 것을 양주목(楊州牧)에 명령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考)'에 따르면 성종 13년(1482) 한 승려가 방법을 고안하여 다리를 완공하자, 왕이 이를 치하하고 다리가 집과 같이 평평하여 마치 평지를 걷는 것과 같다 하여 ‘제반교(濟盤橋)’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장재균  wo5rbs@hanmail.net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재균의 다른기사 보기
icon최근 이슈기사
박재옥 별세,이복 동생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때문에  조문 안 할 듯박재옥 별세,이복 동생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때문에 조문 안 할 듯
추미애, 윤석열에게 최후통첩.고요한 산사에서 평지풍파 일으켜추미애, 윤석열에게 최후통첩.고요한 산사에서 평지풍파 일으켜
김호중 사과, 김호중 사과, "친모의 굿 권유 금품 요구 책임지고 해결하겠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현황,신규 63명· 해외유입이 절반 차지코로나19 확진자 발생현황,신규 63명· 해외유입이 절반 차지
icon가장 많이 본 기사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 2가 247 3층  |  TEL : 02-734-4530(代)  |  FAX : 02-734-8530  |  긴급연락처: 010-2755-6850
제호 : 푸른한국닷컴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298  |  창간일 : 2010. 07. 20  |  발행·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영준  |  마케팅이사 : 김혁(010-3928-6913)
Copyright © 2010-2020 푸른한국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ugsum@nate.com.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