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야 신선은 아닐 것이다.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조선시대. 여류시인 허난설헌은 스스로를「여선(女仙)」즉 여자신선이라고 칭했다. 훤한 대낮에도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는 기인 정렴은「별세계에서 3천겁을 보내다가 인간세계에 귀양 온지 스무 해가 되었네.」라고 말했다.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하지장은 이태백을 보자 대뜸 이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의 의미인「적선(謫仙)」이라고 불렀다.

중국 송나라 관리 사방득은 조국이 이민적인 원나라에게 망하자 스스로를 죄 짖고 도망 다닌다는 뜻인「포신(逋臣)」이라고 했으며,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를「포인(逋人)」이라고 행세했다. 또 명나라 문인 굴대균은 나라가 만주족인 청나라에 망하자 스스로를 명나라의 남은 사람으로서 갈 곳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유민(流民)이라 자처하였다.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귀양 온 신선이라고 보거나 포인 또는 유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개 그 뜻이 고매하여서 세상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행적이 자유로워서 세상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산천을 의지하거나 바람과 달을 친구로 삼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찍이 공자는 고국 노나라 애공(哀公)때 성군(聖君)이 나타나야만 나타난다는 기린이 나타나 잡히자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기를「기린이 누구를 위하여 나왔단 말인가? 이제 나의 도는 끊어졌구나!」라고 말하며 만고(萬古)의 정론「춘추(春秋)」짓기를 멈추었다. 이는 그 당시가 왕다운 왕이 다스리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공자가 바라던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누구는「하늘 밖의 하늘」을 보기도 하고「솔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나 또 누구는 등잔 밑도 못보고 닭이나 오리의 기쁨으로 살기도 한다.「좋은 날」이나「슬픔과 기쁨」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아!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 가지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첫 번째 슬픔이 나는 다른 별에서 이 세상에 유배된 사람이라는 슬픔이고 두 번째 슬픔은 척박한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슬픔이다. 첫 번째 것이 근원적·우주적인 슬픔이라면 두 번째 것은 현상적·역사적인 슬픔이다.

첫 번째 슬픔은 절대적이고 철학적인 것으로 사도 바울이「오호라, 나는 곤궁한 사람이로다.」와 소동파가「인생의 짧음을 한탄하고. 장가의 무한함을 부러워한다.」는 것과 같이 영원을 향한 그리움에서 나왔다면 두 번째 슬픔은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이시가와 다꾸보꾸의 단가(短歌)에서「볼로딘 이라는 러시아식 이름이/ 이유도 모르게/ 몇 번이나 떠오르는 날이여,」처럼 시대경색(時代梗塞」에 대한 우려나 시대와 반목함으로써 야기된 것이다.

다시금 생각해 보면, 꼭 신선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야 신선은 아닐 것이다. 신선의 생각을 하고. 신선의 말을 하며. 신선의 향기를 풍긴다면 곧 신선일 것이다. 꼭 나라가 망하거나 왕위가 찬탈돼야만 포인이나 유민은 아닐 것이다. 나라가 부패하고 타락하거나 가치가 왜곡되고 전도될 때에도 포인이나 유민의 신세인 것이다.

내가 귀양에서 놓이는 날은 야곱이 한 밤중에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보거나 스데반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날일 것이고. 내가 포인이나 유민에서 풀리는 날은 심훈이 그의 시「그날이 오면」에서 말한 대로「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치는 그날」일 것이다. 그때까지는 옛날에 머무르거나 꿈만 꾸거나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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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위원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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